문화일반

[2022 만해축전 전국고교생 백일장 수상작]시 문체부장관상 - 은밀하게 자라난 비밀이 한뼘 길어질 때 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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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우(안양예고 1년)

잇몸이 흠뻑 젖은 채로 잠에서 깨어나요 이가 빠졌다 자라는 나이부터 나는 풍선껌을 씹었죠 풍선은 불지

못하고 단물만 쪽 빨면서 뚱뚱한 상상을 해요 선생님이 무얼 먹느냐 물으면 혓바닥 아래 비밀을 꾹꾹 눌러 숨

겨요 방학마다 찾아오는 일기장엔 한여름의 습기가 가득 차있어요 크고 축축한 글자들 사이로 비밀이 푹푹

곪아가는 계절이죠

지붕 끝에 앉아 씹고 싶은 건 사실 껌이 아니에요 온갖 것들을 씹어서 바닥에 찍찍 뱉어내고 싶어요 노을이

붉은 흉터처럼 지붕 위를 휩쓸고 다니면 층계를 오르다 툭, 떨어뜨린 열매들이 굴러가요 터질듯이 부풀어 오

른 내 비명을 누가 밟기라도 해봐요 비밀은 요란하게 터지면서 온갖 냄새를 풍기는 걸요

은밀하게 자라난 송곳니는 입안에 상처를 내요 여기저기를 찌르다 보면 모두 내 곁을 떠나가죠 울어야 하

는 순간에 왜 웃음이 터지는 건지 모르겠어요 식탁 위에는 이름 모를 그늘이 고여있고, 바닥엔 흠뻑 쏟아진

내가 사방을 더럽히는데요 은밀하게 자라난 비밀이 한 뼘 길어질 때마다

치렁치렁한 치부를 싹둑 잘라내고

잇몸을 드러내며 씨익 웃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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