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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평창 청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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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가 그린 그림을 모아 남겨진 금강사군첩에는 금강산 및 관동8경의 절경이 담겨 있다. 그 금강사군첩 중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이 바로 평창의 청심대(淸心臺)다. 평창군 진부면 마평리에 위치한 청심대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절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이곳은 오대산 월정사와 오대산사고로 가는 길목에 있었던 까닭에 조선시대 사고에 보관된 자료를 포쇄하기 위해 왕명을 받들고 행차한 봉명사신이나 지방의 관백들이 많이 다녀갔다. ▼지난달 14일 평창문화원이 평창지역의 암각문 학술조사 성과보고회에서 오대산사고 포쇄사로 다녀간 사람들의 여정을 소개한 바 있다. 그중 동정기를 쓴 채지홍은 청심대에 들러 그 감흥을 기록했다. ‘21일 무인일은 맑았다. 새벽에 출발하여 청심대에 올랐다. 험한 100척 바위가 시냇가에 우뚝 솟아 있는데, 바위 꼭대기로 난 길은 겨우 발을 놓을 수 있다. 그 가운데 허공에 높이 솟아 있는 큰 돌을 부여잡고 앞으로 나아가서 절벽을 굽어보니 모골이 송연하다. 문득 세속을 떠나 산속으로 숨었으면 하는 생각이 일었다.’ ▼청심대는 수많은 묵객의 글과 그림도 남아 있지만 애절한 사랑 이야기도 남겨져 있다. 조선 고종 3년(1866년) 강릉부사였던 박양수와 기생 청심의 사랑 이야기다. 박 부사는 기생 청심과 청심대에서 헤어지며 한양으로 꼭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소식은 없었고 병을 얻고 절망했던 청심은 이곳 절벽에서 뛰어내려 불귀의 객이 됐다. 그 후 1927년 이곳 예기바위 아래 청심대를 세우고 사당을 건립, 청심의 절개와 넋을 기렸다고 전해진다. ▼평창은 서울과 강릉, 금강산을 잇는 곳이었고 오대산사고가 있던 곳이라 역사적 기록이 많다. 월정사, 오대산사고, 청심대와 같이 명승유적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활용 범위는 넓지 않다. 가상의 인물 춘향이 남원을 먹여 살리는데 역사적 인물 청심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도 평창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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