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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홍칼럼] 이태원 참사 사과, 늦은 만큼 사태 수습이 더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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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대통령·총리·장관 7일 일제히 국민께 머리 숙여

사고 9일째 유감 표명 진정성 의심 받을 수도

정부, 감성정치 펼쳐야 국민 신뢰 회복할 수 있어

사과 빨랐다면 더 좋았을 것

무한 책임감 갖고 수습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 모두 발언에서 ‘이태원 참사’에 대해 “말로 다 할 수 없는 비극을 마주한 유가족과 아픔과 슬픔을 함께 하고 있는 국민들께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라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같은 날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사과했다. 한 총리는 이날 “이태원에서 발생한 참사와 관련해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국무총리로서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참사가 발생하고 9일 만에 처음으로 공식석상에서 사과한 것이다. 이 장관도 “제 발언이 국민이 듣기에 대단히 부적절했고 국민의 마음을 세심히 살피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바로 수차례에 걸쳐 유감의 뜻과 국민께 사과 의사를 밝혔다. 다시 한번 국민의 마음을 상하게 한 점에 대해 이 자리를 빌려 사과를 한다”고 했다.

이 장관은 ‘이태원 참사’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정부 첫 공식 브리핑에서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한 총리도 지난 1일 외신기자회견에서 웃으며 부적절한 농담을 해 비판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한 총리와 이 장관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공방과 논란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수 많은 젊은이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상황에서 부적절했던 장관의 발언이나 총리의 태도에 대한 실망과 분노 때문일 것이다. 말과 태도가 잘못됐다면 사과는 더없이 중요하다. 또 그 사과가 빠르면 빠를수록 더 좋았을 것이다. 사과의 속도가 진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탓이다.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진심이 담겼는지에 의심을 받는다. 오해일 가능성이 높더라도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메시지를 관리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심각한 리스크다. 확실하게 사태를 파악한 후 시간이 걸려도 신중한 메시지를 내놓겠다는 것이 옳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이태원 참사의 경우 사과가 늦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크기 때문이다. 이미 애도기간이 끝나고 본격적인 책임공방이 펼쳐지고 있다. 지금의 사과는 마치 여론에 떠밀려 어쩔수 없이 하는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다. 진정성은 차치하더라도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태원 참사는 156명의 젊은이들이 숨진 안타까운 비극이다. 서울 도심에서 이와 같은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은 502명이 사망했던 1995년 삼풍백화점 사고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또 단일 사고 인명피해로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최대다. 가뜩이나 나라 안팎으로 어려운 시국이다. 이런 때 발생한 대형 사고에 모든 국민의 눈과 귀가 정부로 향하는 것은 당연하다. 온 나라가 슬픔과 충격에 잠겼을 때 정부의 도리는 분명하다. 무한 책임을 지고 수습하겠다는 자세다. 경위를 조사해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는 식이라면 이는 변명으로 들릴 것이다. 대규모 참사에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유족과 국민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고 혼란을 최소화하며 실의를 딛고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5월10일 출범한 이후 6개월이다. 영국 출신 정치학자 니얼 퍼거슨은 우리는 이제 민주정치(Democracy)가 아니라 감성정치(Emocracy)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감성정치는 대중의 감성에 호소하는 정치다. 현대 정치판에서는 팩트와 이성도 중요하지만 감정과 느낌이 더 큰 영향력을 갖는다. 윤석열 정부 6개월 동안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감성이 없다는 것이다. 법과 원칙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공자는 정치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군대를 넉넉히 하고, 백성이 믿도록 하는 것이라 했다. 이 셋 중에 버릴 수 없는 한 가지가 백성의 믿음인데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제 그 믿음은 정부가 끝까지 이번 참사의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감성을 보여줄 때 회복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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