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호등]일회용품 규제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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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봉투는 역설적인 발명품이다. 스웨덴 출신 엔지니어 스텐 구스타프 툴린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비닐봉투를 만들었다. 종이봉투 제작을 위해 수많은 나무가 베어지는 모습을 보고,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비닐재질 쇼핑백을 고안한 것이 시작이다. 플라스틱의 발명 배경도 비슷하다. 미국의 화학자 리오 베이클랜드는 상아 재질 당구공 제작을 위해 희생되는 코끼리 숫자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플라스틱을 발명했다. 하지만 현재, 비닐봉투는 나무를 죽이고 있고 플라스틱은 야생동물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환경보전을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 오히려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정부의 일회용품 규제 정책도 이와 달라보이지 않는다. 손바닥 뒤집듯 휙휙 바뀌는 정책은 역설적으로 친환경에 대한 자영업자들의 반발과 불신만 사고 있다. 당초 정부는 오는 24일부터 식당, 카페, 소매업 등에서 플라스틱빨대와 비닐봉투와 같은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지난해 시행령이 개정돼 1년의 유예를 둔 만큼 계도기간 없이 시행일부터 단속을 시작한다는 방침이었다. 그런데 제도 시행을 2주 가량 앞두고 돌연 정부는 1년 간 '참여형 계도기간'을 두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정부가 일회용품 관련 규제를 뒤로 미룬 것은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지난 4월1일부터 카페 내 일회용컵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지만, 시행 이틀 전 정부는 코로나19 유행이 잠잠해질 때까지 단속을 유예하겠다고 말을 고쳤다. 2년 여 준비 끝에 지난 6월부터 시행 예정이었던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12월로 6개월 미뤄진 것에 더해, 전국 시행이 아닌 세종, 제주 두 지역에서만 시범시행하는 것으로 축소됐다.

오락가락하는 정책에 자영업자들의 신뢰는 사라진 지 오래다. 일회용품 규제를 앞두고 취재했던 빵집을 최근 다시 방문했다. 카운터에 붙어있던 '다음 달부터 비닐봉투 대신 종이봉투가 제공됩니다'라는 안내문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중단했던 비닐봉투 발주를 다시 시작했다는 사장은 "제도 시행에 맞춰 준비를 다 해놓으면 미뤄지는 일이 반복되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 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비단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책 소식이 들릴 때마다 취재를 나가보면 친환경 규제 자체에 피곤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늘어간다.

이같은 상황을 초래한 것은 정부의 일관되지 못한 태도다. 정부는 일회용품 규제를 비롯한 친환경 정책의 노선을 바로잡아야 한다. 환경보호를 위한 것이라며 '일단 규제'를 선언해놓고, 업계 반발을 고려했다며 '단속 유예'로 한 발 물러나는 방식을 반복한다면, 정책 목적을 이루기는 요원할 것이다. 지금 정부가 취해야 할 태도는 일관성과 소통, 그리고 설득이다. 미래 세대를 위해, 당장 우리가 기후위기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불편을 감수할 때가 왔다고, 규제 시행 목적을 명확히 알리고 설득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불만이 나오면 단순히 규제를 유예할 것이 아니라 의견을 수렴해 대안을 찾아야 한다.

현장에서 만난 자영업자들은 친환경을 위한 규제 때문에 점포 운영에 어려움이 커진다고 하면서도 대부분 정책 필요성에 공감했다. 자영업자들에게 던졌던 비슷한 질문을 정부에게도 하고 싶다. 정부는 과연 친환경 정책을 추진할 의지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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