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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소설 속 강원도]‘첫사랑의 죽음 목격과 입맞춤'' 굴레 벗고 일상 돌아갈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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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박완서 ‘참을 수 없는 비밀’


특정 장면·상황 묘사 섬세 감탄
습관적 가출하는 버릇 달고 살아
박 작가·허난설헌 슬픈 삶 오버랩

특정 장면·상황 묘사 섬세 감탄

습관적 가출하는 버릇 달고 살아

박 작가·허난설헌 슬픈 삶 오버랩

창작과 비평(1996년 겨울호)에 실린 박완서 소설가의 단편 ‘참을 수 없는 비밀’은 특정 장면과 상황에 대한 묘사가 너무도 섬세해 한참을 감탄하면서 본 기억이 있는 그런 작품이다.

주인공 하영은 스무 살 되던 해, 오빠 친구인 첫사랑 세준의 죽음을 직접 목격한 인물이다. 그 죽음은 하영이 세준과 함께 있다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평생 떨쳐내기 힘든 정신적 트라우마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때 하영은 세준을 살리기 위해 가슴을 치고 배를 누르며 인공호흡을 했지만 세준의 체온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그것이 하영에게는 첫 입맞춤 이었다. 그것도 죽은 자와의 입맞춤이 말이다. 어쩌면 하영이 지닌 강박은 세준의 죽음보다 죽은 그와의 입맞춤에서 기인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에서는 상황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하영에게는 송장과의 그 차가운 입맞춤이 남자하고 생전 처음 가져본 육체적 접촉이었다. 그 말을 차마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믿어주고 안 믿어주고는 둘째였다. 사자와의 입맞춤이 최초의 입맞춤이란 사실은 얼마나 참을 수 없는 비밀인가.” 그런 일을 겪은 하영은 세월이 흘러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습관적으로 집을 뛰쳐나오는 버릇을 달고 산다. 이번 가출에서 그가 정한 목적지는 강릉. 몇년 전 남편과 함께 온 곳이다.

하지만 하영은 하얀 운동화를 신은 어느 젊은이의 죽음을 목도하게 되고 일면식도 없는 젊은이의 주검 앞에서 그만 울음을 터트려버린다. 세준을 떠올린 것이다. 익사가 아닌 자살이라는 말에 자리를 떠난 하영은 횟집에 들러 술을 들이켠다. “그 무색 투명한 액체는 목구멍을 넘자마자 따뜻한 장밋빛으로 변하면서 곳곳에 길을 낸다. 그 느낌이 하도 자릿하고 황홀해 하영은 부르르 진저리를 친다.” 소설 속에는 지금은 혼자 그리고 그때는 남편과 함께한 초당두부집이 나오고 오죽헌, 허난설헌 생가, 대관령 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오죽헌을 구경하면서(중략)허난설헌 생가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마 오죽헌을 그렇게 잘 꾸며놓지만 않았어도...”처럼 허난설헌에 대해 애정을 드러내는 대목도 나온다. 그의 또다른 단편 ‘환각의 나비’에서 지방대 교수 영주가 학위논문으로 선택한 것이 ‘허난설헌의 시 연구’라는 점, 단편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에서 박 작가와 허난설헌의 슬픈 삶이 오버랩 된다는 점 등도 생각하면서 글을 읽으면 더 재미있는 책 읽기가 될 듯싶다. 하영은 과연 스무해 전 그 일의 굴레를 벗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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