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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新팔도명물]맛있어지기 참 어렵다…산바람·바닷바람 쐬면서 땔나무 향기에 얼다 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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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바다가 주는 선물 '포항 구룡포 과메기'

◇포항 구룡포항에서 겨울 과메기가 익어 가고 있다. 이처럼 배를 반으로 갈라 말리는 과메기를 '배지기'라 부른다.

생선 눈 꿰어 걸어 말렸다 해서 붙은 이름

낮은 온도서 연기 그을리는 '냉훈법' 활용

수온 낮은 과거에는 '청어' 현재는 '꽁치'

바람·습도·온도 최적의 생산지 '구룡포'

건조 과정서 영양가 응축 원재료보다 높아

EDP·DHA 함량 높아 성인병 예방 탁월

포항의 겨울은 과메기다. 또 과메기냐고 타박을 줘도 어쩔 수 없다. 포항 어디를 가더라도 해안가마다 장대 가득 널려 있는 과메기가 겨울 바다처럼 반짝인다. 양껏 기름을 머금은 비릿한 향기는 해가 지기 전부터 술을 부르는 복병이다.

옛날 포항지역민들만의 애장품이었던 과메기는 이제 백화점이며 대형마트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충 20여년 전부터 오히려 타 지역 사람들이 겨울철이면 먼저 과메기의 안부(?)를 묻는 듯하다. 그래서 포항 사는 사람들은 요맘때쯤이면 오랜만에 연락 끊긴 친구들의 전화를 받게 된다. 덕분에 전국 각지 선물을 보내려 한동안 돈과 시간이 솔찮게 깨지게 되니 참 고맙고도 얄미운 과메기다.

◇포항 구룡포항에서 겨울 과메기가 익어 가고 있다.

■청어에서 꽁치로...과메기 변천사=과메기란 이름은 ‘관목(貫目)’에서 나왔다. 눈을 꿰어 걸어 말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포항 구룡포지방 사투리로 ‘목’을 ‘메기’로 불렀고, 세월이 지나다 지금의 이름으로 굳어졌다. 수온이 더 차가웠던 옛날 경북 동해안에는 청어가 많이 잡혔다. 이 청어의 눈을 꿰어 냉훈법이란 독특한 방식으로 얼렸다 녹였다 하면서 건조시킨 것이 과메기의 시초다.

냉훈법은 식품을 낮은 온도에서 연기에 그을려 저장하는 방법이다. 그렇다고 거창한 시설이나 기술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주로 집안 부엌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가마솥을 지필 때 연기가 빠져나가는 쪽창에 과메기를 널어두면 땔나무의 향기가 적절하게 묻어나고, 차가운 바깥바람에 또 얼어붙으며 완성됐다. 특히 소나무 가지를 태운 곳에서는 특유의 솔향이 더해져 깊은 풍미를 자랑하기에 궁중까지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파트 등이 들어서고, 가마솥 문화가 사라진 후에도 한동안 포항에서는 이 전통방식이 남아 있었다. 겨울이면 아파트 창문마다 과메기 묶음이 가득했다. 심지어 종합병원 입원실에도 몰래 창문 밖으로 과메기를 널어두다 저녁이면 한두마리 꺼내 반주를 곁들이던 환자도 있었다.

1960년쯤 청어가 거의 잡히지 않고, 덩치 큰 청어를 말리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탓에 지금처럼 꽁치 과메기가 대세가 됐다. 과메기는 보통 수분 함유량이 40% 이하가 되도록 말리는데 청어는 못해도 보름 이상은 걸린다. 꽁치는 1주일 안이면 과메기로 먹을 수 있다. 요즘은 옛날처럼 꽁치를 통째로 말리지 않고, 반을 갈라 말리기에 시간이 더욱 단축된다. 포항에서는 통째로 엮어 말리는 것을 ‘엮걸이’, 배를 갈라 반쪽씩 말리는 것을 ‘배지기’라 구분해서 부른다.

취향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비릿한 맛이 적고 쫀득한 식감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수분 함량이 25~30% 정도 되는 것이 인기가 많다. 손가락으로 꾹 눌렀을 때 흐물거리지 않고 약간의 탄력이 있는 것들이다. 배지기의 경우 밭고랑처럼 살결이 선명하고, 기름칠한 것처럼 반짝이는 과메기를 고르면 큰 실패가 없다. 당연히 맛은 덕장(과메기를 말리는 곳)이 바다 근처인 것이 좋다. 적당히 염분을 머금은 날선 바람과 습도, 온도 등이 맛을 결정하는 주요 원인인 탓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포항에서도 남구 구룡포항 주변이 과메기의 원조로 불린다. 겨울철 구룡포에서는 백두대간을 넘어온 북서풍과 짠내 나는 바닷바람이 밤낮으로 교차하며 270도 전방위에서 다툰다. 산바람이 수분을 날려주면 다시 바닷바람이 염분과 습기를 더하는 셈이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불면 꽁치가 겉마르게 되고, 한쪽 방향에서만 불면 골고루 건조되지 않아 맛을 버린다. 여기에 온도도 아주 큰 요인이다. 너무 높으면 기름이 수분과 함께 빠져나오고, 반대로 너무 낮으면 그냥 얼린 꽁치가 될 뿐이다. 영하 4~5도에서 영상 10도를 유지하는 구룡포는 말 그대로 과메기 생산의 최적지다.

◇요즘 과메기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초밥과 구이 등 다양한 변주가 인기다.

■초밥·무침 등 레시피 도전기=과메기는 DHA와 오메가3처럼 등푸른 생선이 가진 영양분을 원재료인 꽁치보다 더욱 풍부히 가지고 있다. 건조되는 과정에서 영양소가 응축되기 때문이다. 필수 아미노산과 아스파라긴산까지 포함하니 괜히 애주가의 벗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다. 고혈압, 동맥경화, 뇌졸중 등의 성인병을 예방하고 숙취 해독, 피부미용, 노화 방지 및 빈혈에 매우 효과적이다.

특히 고도불포화 지방산인 EDP와 DHA 함량이 매우 높아 혈관확장작용, 혈소판 응집억제작용, 혈압저하작용, 혈액중 중성지방저하작용, 혈액중 저비중 콜레스테롤저하작용, 혈액중 고비중 중성지방저하작용, 혈액점도저하작용, 심근경색 방지, 뇌경색 방지 등 성인병 예방의 기능을 한다.

과메기는 보관할 때 가급적 냉장고 가장 아래칸에 두는 편이 좋다. 제일 차가운 기운이 내려앉기에 맛을 지켜준다. 일반 냉장고에 보관하면 3~8일까지는 문제가 없지만, 열흘 이상 보관한다면 가급적 김치냉장고나 아예 냉동실에 둬야 한다.

보통 과메기는 껍질을 벗긴 뒤 생미역, 마늘, 실파, 풋고추, 초고추장 등과 함께 김 혹은 알배추에 싸서 먹는다. 포항 사람들 중 소위 맛고수라 자청하는 이들은 간혹 묵은 김치를 씻어서 싸 먹거나 쌈장과 초고추장을 섞은 장에 찍기도 한다.

오랫동안 유명해진 음식이다 보니 색다른 변주도 많다. 구이, 초밥, 무침, 튀김 등 대중적인 요리부터 냉파스타, 또띠아롤, 피시버거 등 퓨전음식 레시피가 마니아층 사이에서 활발히 공유된다.

허영만 작가의 대표작 ‘식객’에도 과메기를 즐기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엮걸이’ 과메기를 소개한 해당 화에서는 초고추장과 함께 된장까지 갖춰 놓았으며, ‘술 한 잔 하고프다’라는 작가의 본심까지 코멘트로 달렸다.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과메기문화관 전경.

■박물관까지 지어진 과메기의 마을 구룡포=2007년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은 재정경제부로부터 ‘과메기특구’에 지정됐다. 전통방식을 탈피해 대규모 현대식 가공공장과 냉동창고가 건립됐고, 과메기문화거리도 조성됐다.

특히 2017년 11월 포항구룡포과메기문화관(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길 117번길 28-8)까지 지어지며 명실상부 과메기 본고장의 위상을 자랑한다. 지금껏 소개한 과메기의 역사가 기록돼 있고 관련 연구센터, 해양체험관 등 각종 즐길 거리가 많아 주말 나들이에 적격이다. 언덕 구릉지에 지어진 문화관에서는 어업전진기지인 구룡포항과 아름다운 동해 바다를 한눈에 담아갈 수 있다.

다음 달 3~4일에는 구룡포 아라광장 일원에서 ‘제23회 포항 구룡포 과메기 축제’가 열린다. 과메기는 물론, 대게와 오징어 등 전국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는 구룡포지역 특산물이 가득하다. 여기에 지역 고유의 전통놀이와 인기가수 초청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된다.

아직 과메기를 잘 모른다면 축제기간 현지인들이 제공하는 무료시식회로 맛의 지평을 열어보자. 이 밖에도 제철 수산물과 과메기 할인 경매가 열리니 풍성한 겨울 경북 동해안의 바다를 싹 쓸어 갈 기회다.

매일신문=신동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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