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강원논단]영재 교육 대책 세워라

 1811년 10월 25일 프랑스 파리 교외 부르 라 렌에서 태어난 에바리스트 갈루아의 유년 시절은 딱 한 가지만 빼놓고는 행복했다.

 '산만한 수업 태도. 도저히 파악하기 힘든 성격. 재능은 있는 것 같지만 도대체 어떤 재능인지 알 수 없음. 결국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재능임.’

 낙제생 갈루아에 대하여 교사는 가정통신문에서 그를 학습 지진아라고 평했다. 사실 아무리 어려운 수학 문제라도 암산으로 해치우는 갈루아의 비상한 재능을 평범한 교사와 시험관이 알 리가 없었다. 머릿속에서 연구하는 갈루아와 답안지에 늘어놓는 시험은 애초에 어울리지 않았다.

 갈루아는 갈수록 학교에는 흥미를 잃게 됐지만 독학으로 기하학을 정복했고 기존 대수학을 무시하고 새로운 대수학의 체계를 정립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12세. 갈루아는 16세가 되자 최고 명문인 파리 에콜 폴리테크닉에 입학시험을 치렀으나 떨어지고 만다.

 그럼에도 갈루아의 연구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2년 후에는 순환연분수에 관한 최초의 논문이 나왔고 주요 논문을 정리해 프랑스 과학원에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논문은 심사관이 요약분마저 분실해버렸고 에콜 폴리테크닉 입학시험은 또 떨어졌으며 아버지가 사망하는 사고가 잇달아 일어난다. 이듬해 갈루아는 “많은 수학자의 연구를 단념시킬 연구”라며 3편의 논문을 다시 보냈지만 이 역시 없어지고 만다. 사회를 향한 갈루아의 증오는 극에 달했으며 결국 그는 과격 공화주의자의 길을 걷게 된다. 교장의 기회주의를 비난하는 글을 실어 학교에서 퇴학당하자 군대에 입대했다.

 공동묘지에 아무렇게나 매장된 갈루아의 묘는 이제 흔적도 없다. 하지만 시대를 앞서간 천재의 생은 수학사에 변혁을 가져왔다. 갈루아 이론은 그가 죽고 난 뒤 완전히 이해되는 데만 70년이 걸렸고 기하학 대수학의 획기적인 발전과 함께 첨단 과학인 핵물리학과 유전공학의 토대가 되고 있다.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유명한 아이작 뉴턴은 소년 시절 다니던 학교의 교장 헨리 스토크스가 아니었다면 농장에 파묻혀 지낼 뻔했다. 스토크스는 뉴턴의 비범함을 일찌감치 꿰뚫어봤다. 뉴턴의 모친이 뉴턴에게 농장을 맡기려 하자 한사코 반대하며 그를 케임브리지대에 보내는 데 성공했다. 18세의 뉴턴이 케임브리지로 떠나던 날 스토크스는 전교생 앞에서 그를 칭찬하며 작별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비슷한 도움을 받았다. 그가 1916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을 때 유럽 과학자들은 별로 알아주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인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는 감정론도 앞섰다. 하지만 영국의 물리학자 아서 에딩턴은 그 중요성을 깨닫고 자국 과학자들을 집요하게 설득했다. 그 결과 왕립협회는 '빛은 공간의 만곡을 따라 진행한다'는 아인슈타인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18년 서아프리카에 개기일식 관찰단을 파견했다. 이때 그는 단장을 맡았다. 결국 왕립협회는 이듬해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옳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가우스, 오일러와 함께 하늘이 내린 3대 수학자로 꼽히는 인도의 스리니바사 라마누잔(1887~1920)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떤 문제도 한번 보기만 하면 척척 답을 냈다. 그러나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해서인지 증명하는 데 서툴렀다. 쓱 봐서 알면 됐지 성가시게 증명할 필요는 없다는 투였다. 그래서 그를 인정하지 않는 학자도 많았다. 그를 영국으로 불러 지원을 아끼지 않은 사람이 수학자 고드프리 하디였다. 자신은 라마누잔의 발끝에도 못 미친다며 라마누잔의 이론 전파에 힘썼다.

 천재, 수재, 영재…. 이들은 발견되지 않은 천재는 없다고 한다. 이들을 발견하고 키워주는 선구안을 가진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모두 주위에서 알아보고 도와준 덕에 빛을 발했던 사례들이다. 정부도 영재교육을 통해 그런 노력을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인재를 보는 눈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

 천재 한 명이 백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얘기가 있는데 골든 칼라인 이들 천재들을 강원 도내 중·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과연 제대로 교육을 시킬 여건이 마련되어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천재들은 수준 높은 영재 교육을 받기 위해서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야 하는가? 교육 정책 당국과 교육자들은 고민을 해야 한다.

 김정휘(춘천교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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