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고]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에게 법이 필요한 때

이윤재 대한법률구조공단 춘천지부장

40여년 양조장 근무해온 직원

간암으로 쓰러지고 임금 떼여

법률 지원 통해 권리 되찾아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법이 없어도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리라. 정(情)과 의(義)를 중시하는 대한민국에서 법은 인간미 없는 단어일지 모른다. 만약 모두가 도덕과 양심을 바탕으로 서로를 존중한다면 정말 법이 필요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양조장에서 40여년을 근무한 김씨는 간암 등 여러 병증이 심해 치료를 포기했다. 그는 전통식 막걸리 제조 공장에서 주말, 명절 없이 새벽 4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근무했다. 높은 품질의 막걸리를 제조하려면 온도와 물 조절을 잘 해야 한다. 통상 34도에서 발효가 잘 이뤄지고 45도가 넘어가면 종균이 죽어버린다. 하지만 발효 상태에 따라 그때그때 필요한 온도와 습도가 다르다. 양조장에서 유일하게 이를 판단할 수 있었던 김씨는 발효 상태를 점검하느라 매일 수차례 막걸리를 시음했고, 적정 온도를 유지하려고 연탄불을 때고 껐다. 매일 땀을 뻘뻘 흘리며 잘 씻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쪽잠을 자며 버텼다.

이처럼 고단한 삶을 살아온 김씨는 알코올성 간성혼수가 심해져 쓰려지고서야 비로소 휴식을 갖게 되었다. 이제 그동안의 노동의 대가를 받고 치료에 전념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그러나 김씨는 월급을 다 받지 못했고 퇴직금 또한 받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건강 상태가 더욱 악화됐고 김씨의 딸이 밀린 월급과 퇴직금을 받아 달라며 김씨 대신 법률구조공단을 찾아왔다. 어깨가 무거웠다. 김씨가 평생을 바쳐 얻은 권리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1심에서 승소했으나 상대방이 항소해 항소심에서 다시 공방이 이어졌다. 이렇게 소송이 길어지면 당사자들은 정신적인 피로를 호소하기 마련이다. 다행히 김씨와 가족들은 우리 공단을 믿고 잘 견뎌 주었고, 덕분에 담당변호사도 소송에 집중할 수 있었다. 상대방은 “김씨의 업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굳이 김씨가 숙직을 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면서 김씨의 업무를 폄하하다가도 “김씨가 기술을 전수해 주기로 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모순된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담당변호사는 상대방 주장의 모순성을 조목조목 지적했고, 결국 항소심에서도 승소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미리 상대방의 부동산을 가압류해 놓았기에 현실적인 집행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법률구조공단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법률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경제 여건을 묻지 않고 법률 상담을 제공하고 있으며, 중위소득 125%이하이거나 장애인, 국가유공자, 농어업인 등에게 소송을 지원하고 있다. 소송을 지원하는 사건도 민사, 형사, 가사, 행정, 개인회생 및 파산 등 거의 대부분의 법률 사건에 이른다. 특히 김씨와 같은 임금체불 근로자의 임금청구 사건에 관해서는 변호사보수는 물론 인지액과 송달료 등 소송실비도 전액 무료로 지원한다.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도 법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리고 법을 일반인이 모두 알기는 어려워 조력자가 필요하다. 법률구조공단은 설립 이래로 사회적 약자의 법 조력자로서 소임을 다해 왔다. 국민의 관심을 통해 법률구조공단이 더욱 성장해 사회적 약자의 법률 조력자로서 더 굳건히 서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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