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일반

[주간피플]“눈으론 볼 수 없는 마음의 色 담았죠”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실명 후 첫 개인전 연 박환 서양화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실명 후에도 붓 대신 손으로 연필 대신 실로, 눈 대신 마음으로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박환 화백이 자택에서 작품을 그리고 있다.아래는 박환 作 '고향집'.박승선기자.

4년 전 사고로 실명 … 가족 권유 큰 힘

실 이용 스케치 대부분 혼자 작업 완성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화가로 살 것”

춘천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서양화가 박환(60). 그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 작은 빛조차 느낄 수 있는 없는 시각장애 1급이다. 색을 다루는 게 업(業)인 화가에게 이보다 더 치명적인 약점은 없을 듯하다.

하지만 그는 '마음의 눈과 손의 감각'으로 캔버스 앞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현역 작가다. 그는 평생을 그림과 함께했다. 벌써 30년을 넘어섰다. 그중 대부분을 한국화를 그리던 상업작가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10여년 전 자신만의 작업세계를 찾기 위해 서양화가로 변신을 꾀한다. 춘천에 작업공간을 마련하고 낡은 집에서 가져온 나무를 재료로 꼬박 7년을 매달린 끝에 선보인 그의 작품들은 화단에서 호평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내친김에 2012년 첫 개인전을 갖게 됐고, 이듬해에는 국제 아트페어에 초대를 받는 등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서울의 한 갤러리에 전속작가로 활동하게 됐고, 2014년부터는 홍콩 등 해외 진출도 할 것이라는 소식들도 들려왔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2013년 10월30일. 그는 춘천 인근에서 큰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차를 절단해 그를 겨우 꺼냈다고 하니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큰 사고였다고 한다. 트럭을 들이받은 차는 형편없이 찌그러졌고, 술에 취해 잠이 든 채 조수석에 있던 그는 그 충격을 온몸으로 받았다. 의식이 없는 그를 급히 서울로 옮겼지만 의료진들은 그의 회생에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응급수술을 통해 산다고 해도 평생 누워서 지내야 한다는 얘기가 들렸다. 시신경도 이미 상당 부분 손상된 상태였다.

“당시 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전해들은 얘기지만 상당히 급박했다고 합니다. 뇌의 혈관이 부풀어 올라 생명이 위험한 상황이었고 수술을 하는 도중에도 잘못될 수 있었다고 하고요. 상당히 비관적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의사는 그가 걸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가족들에게 남겼다고 한다.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지만 그가 살아있음에 그저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의 뇌가 정상적으로 돌아온 것이다. 의사들마저 기적 같은 일이라고 했다. 신체 움직임도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도 실명은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는 사고가 나고 한 달만에 깨어났다. “그때는 사실 앞이 안 보이는 것도 잘 몰랐어요. 그리고 시력이 사라진 걸 느꼈을 때는 시간이 지나고 몸을 추스릴 수 있으면 시력도 되돌아 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조금 있으면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았어요.”

퇴원 후, 그는 하루 종일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게 일이 됐다. 평생 그림만 그리던 그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나서 보다 못한 가족들은 그에게 조심스럽게 그림을 다시 시작해 보라고 권유를 했고, 수많은 고민 끝에 조그만 캔버스를 손에 쥐게 됐다. 하지만 예전 같지 않은 그에게는 그냥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그만 캔버스를 거실 바닥에 놓고 무언가를 그리려고 해도 잘 안 되더라고요. 어디에 뭐가 있고, 무얼 붙여야 하는지 또 어떤 색을 쓰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포기를 했죠.” 하지만 그는 며칠 있다가 또다시 캔버스를 잡았다. 그런 일은 계속 반복됐다.

그는 연필로 스케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실로 스케치를 대신하는 연습을 하게 됐다. 실을 핀으로 고정시키고 풀로 붙여가며 스케치를 끝내면 그 위에 흙과 청바지를 덧대고 손 끝에 물감을 묻혀 입히는 식이다. 주위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이제는 혼자 힘으로 모든 작업을 완성한다고 한다. 이렇게 1년여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작품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사고 이전 작품의 분위기도 되살아나는 듯 보였다.

“저녁을 먹고 동생도 집으로 돌아가면 항상 작업을 하곤 해요.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영감 같은 것이 몰려 올 때가 있어요. 그러면 작업에 힘을 받아 더 열심히 하게 되죠. 마음이 눈이 되고 손끝 감각이 붓이 되는 순간이죠.”

그는 지난 19일부터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갤러리 쿱에서 실명 이후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고 있다. 실명화가 박환 특별전이 그 타이틀이다. “저는 어제도 화가였고 오늘도 화가이고 내일도 화가일 겁니다. 많이 지켜봐 주세요.”

오석기기자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피플 & 피플

이코노미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