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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문화재로 보는 우리역사]양구 파로호서 용암 흑요석기 호모사피엔스 남하 경로 입증

29. 백두산에서 양구로 온 사람들

양구 파로호는 1985년 '평화의댐'을 만드는 과정에서 방류됐고, 호수 아래에 잠겨 있던 선사시대 유적들이 발굴됐다. 상무룡리 구석기유적도 그 과정에서 조사된 유적이다. 상무룡리 구석기유적에서는 수천 점의 뗀석기가 발굴됐는데, 그중 단연코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흑요석제 석기였다. 흑요석은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굳어지면서 만들어지는 돌이다. 그런데 양구에는 화산이 존재하지 않으니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용암은 뜨거운 열에 의해 그 지역의 암석이 녹은 것이다. 상무룡리 흑요석을 분석한 결과는 놀랍게도 백두산이 원산지로 추정됐다. 양구에서 백두산은 직선거리만으로도 430㎞에 이르는 먼 곳이다. 구석기시대에 흑요석은 어떻게 그 먼 거리로 운반됐을까? 흑요석의 이동 경로는 3~4만년 전 한반도로 진출했던 우리의 조상인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가 남쪽으로 이동한 경로를 알려 줄 중요한 연구 자료로 그 가치가 높다.

양구 상무룡리 흑요석기와 관련해서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상무룡리 구석기 사람들이 흑요석으로 만든 석기는 '좀돌날석기'였다. 상무룡리 유적의 좀돌날석기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밝혀진 사실은 그와 동일한 기술이 일본 홋카이도지역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일본 고고학계에서는 그 기술을 유적의 이름을 빌려 '히로사토기법'이라 불렀고, 특히 좀돌날석기 기술들 중에서는 가장 발달된 것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의 '양구'에서 똑같은 기술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일본의 좀돌날석기 기술이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주장하는 자료로 활용됐다. 양구 상무룡리 유적의 흑요석 좀돌날석기는 일본의 것보다 더 오래된 것이다. 이후 시베리아 연해주지역에서도 동일한 기술이 확인됨으로서 현재는 그 기술이 백두산을 중심으로 일본 홋카이도와 한반도 남쪽으로 흑요석과 함께 각각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 기술은 한반도에서 시작된 기술이었던 셈이다.

<김상태 국립춘천박물관장>

■길 이 :5㎝ 내외

■소 장 처 : 국립춘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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