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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포럼]여성이 빚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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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주 도여성특별보좌관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아연 소년들' 등의 작품을 통해 전쟁이 여성의 문제라는 사실을 통렬히 고발했다. 전쟁에서 여성의 피해는 남성에 비해 덜하다고 생각하기 쉽고, '전쟁과 여성' 하면 관성적으로 전몰장병의 어머니나 아내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여성들 역시 참전을 하고 다치고 죽을 뿐 아니라, 강간을 당하거나 포로가 된다. 어쩌면 남성보다 더욱 참혹한 고통을 당한다고 할 수 있다. 전시 성노예로 끌려간 여성들이 이 사실을 처절하게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도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삶터를 잃고 부모와 자식을 잃고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다. 전쟁 위협은 불과 얼마 전 우리의 전 존재를 뒤흔드는 문제이기도 했다.남북 정상의 판문점 회담 이후 남북 관계는 급진전했고, 지난 1일부터 군사분계선과 서해 북방한계선(NLL) 주변에서 모든 적대행위를 금지한다고 선포했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싶은 감탄이 절로 터졌다.

7일과 15일, 강원도여성가족연구원 주관으로 원주와 철원에서 젠더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사회자로 진행을 맡았다. 올해의 캐치프레이즈는 '강원 여성, 평화를 빚다'였다. 한반도 평화가 남북한 여성에게 어떻게 다가오는가, 무엇이 고려돼야 하는가, 평화를 위한 지역 여성들의 그간의 노력 등을 짚어보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여성들이 공감했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남북한 여성의 참여가 상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그 역할이 무엇인지는 논외로 하고, 남한의 경우 강경화 장관을 제외하고는 화면에 비치는 얼굴도 없었다. 둘째, 남한의 매체들이 북한 여성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서다. 북한 응원단이나 이만갑, 모란봉 클럽 등에서 북한 여성은 철저하게 성적으로 대상화되고 있다. 김여정씨는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라는 공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시종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으로 호명되고 있다. 셋째, 젠더 문제가 제대로 거론되지 않을 경우 독일 통일에서와 같이 남북한 여성 모두 제2의 성으로 취급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어떻게 우리가 남북 간 젠더 격차를 좁히면서 성 평등에 기반한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 여성정치인들이 과정 안에 권한을 갖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젠더 폭력의 문제, 여성의 일자리, 일·가족 정책이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논의할 공론의 장이 다양하게 펼쳐져야 한다.

남북한 여성들이 더 많이, 더 자주 만나서 공통점과 차이를 확인하고 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적 통합 수준과 범위를 끌어올려 놔야 한다. 그 출발점으로 남북한 여성 토론회도 좋고, 젠더 콘서트도 좋지만, 1회성 행사가 아니라 보다 제도적이며 평등한 교류의 틀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2001년 6·15 남북공동선언 1주년 기념행사로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다. 세월이 흘러 수려한 금강산도, 온정리 냉면 맛도 잊었지만, 김정숙 초대소에서 헤어질 때 김일성대학에 재학 중이던 김철환이 건넨 말은 잊히지 않는다. '통일운동 열심히 해서 통일이 되면 그날 다시 만납시다'. 그런 날이 조만한 당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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