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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김동길 교수님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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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현 전 국회의원

나는 1992년 4월 제14대 총선 전국 최 연소 당선자가 되어, 콧 수염에 나비 넥타이를 매신 국회의원 당선자 김동길 연세대 명예 교수님을 처음 만났다. 언제나 부드러운 모습과 말 솜씨로 좌중과 회의장을 주도하시며 이끄셨다. 이게 뭡니까? 이래도 되는 겁니까? 이래서는 안되는 일이 아닙니까? 이렇게 해야 마땅한 도리가 아닙니까? 항상 반문하는 어투로 명쾌한 지론을 강조하시던 모습이 언제나 빛나셨다.

정주영 대표가 대선에 실패한 직후 당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조의원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으셨다. 나는 당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대답했다. 그순간 나의 손을 꼭 잡으시면서 문창모 의원님과 같이 정치인의 지조와 명예를 지키기로 하셨다면서 크게 기뻐하시며 격려해 주셨다. 그 결과 전국구를 승계하신 강부자의원님과 더불어 통일국민당으로 당선된 24명의 국회의원 중 최후의 4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젊은 정치인을 키우자 하시며 조일현 후원회를 결성하셨다. 고문 문창모, 회장 김동길 , 부회장 강부자. 그렇게 결성된 후원회는 지금도 내 가슴속에 지속되고 있다.

조일현 전 의원(사진 왼쪽)과 김동길 교수(가운데)

내가 통일국민당 대변인이 되었을 때 주셨던 말씀을 나는 늘 상기하며 생활하고 있다. 농부는 절기를 잘 지키면 풍년 농사를 지을 수 있고, 정치인은 민심을 잘 읽고 따르면 본인도 당도 성공하는 길이 된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내가 2000년 일본 유학을 결심하고 출국 인사를 갔을때 "미국이나 일본, 유럽의 전문가는 많다. 조 의원은 중국을 연구하고 준비하는 즹치인의 길을 가라"는 지침을 주셨다. 나는 일본으로 가려고 준비했던 가방을 들고 중국으로 갔고, 지금도 그때의 그 말씀이 옳았다는 판단과 함께 다른 이들의 진정한 안내자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나는 단 한 번 궁금했던 것을 여쭌적이 있다. 유신체제에 항거 하시다가 옥고도 치르시고 소위 김대중 납치사건 당시 가장 먼저 동교동을 방문하셨다고 하시면서 왜 진보 정권을 책망만 하시는지 연유가 있으십니까? 그이유는 간단해요. 공산당은 믿을 수가 없는 집단이야요. 나는 실제 당해봐서 알아요. 겉과 속이 다른 무리들 임을 몰라서들 꼬임 수에 놀아 나는 거예요. 타도 대상이지 타협의 상대는 될 수 없는 게 공산당인데 그네들과 쉽게 손 잡고 타협을 시도하는 사람들과 정권을 무조건 지지 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답하셨다.

철저한 분석과 준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하셨다. 참으로 박식하시고 너그러우시며 여유로운 분이셨다. 2022년 1월 1일 딸과 함께 세배를 갔을 때 주셨던 덕담. 4월에 주신 말씀, 7월에 불러서 평양냉면을 주시면서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하시던 모습이 또렷한데 이젠 뵐 수가 없다. 시신은 기증하셨고 조문은 받지 말라 하셨다고 한다. 아내는 옆에서 짧게 한 마디 했다. 박사님 답게 가셨네요. 한 없는 슬픔과 아쉬운 마음으로 고 김동길 대표님의 명복을 빕니다. 고이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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