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발언대]팩트보다 '카더라' 판치는 시대

김수영 평창군노인복지회관 컴퓨터 강사

‘카더라’는 소유욕의 결핍의 산물이자 시기(猜忌)의 발로이며 질투의 원초적 본능이다. 내가 능력이 안 되면 험담하고 깔아뭉개서, 프레임에 씌워 여론을 만들고, 옳고 그름을 떠나 세몰이에 지지세를 타다가 사실에 근거한 논리에 부딪히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뒤에 숨어버린다. 해명도 변명도 사과도 없다.

어린 시절 공부를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초등학교서부터 중학교까지 1등을 한 번 도 놓치지 않는, 촌에서는 보기드믄 수재였다. 어느 날 도시에서 살던 여학생이 전학을 왔다. 하얀 얼굴에 보조개가 있는 예쁜 아이였는데 동네를 넘어 학교전체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다. 대개의 남자아이들을 한 번씩 기웃거려 보지만 좀처럼 곁을 안준다. 그러다 수재 녀석과 그 아이와 ‘그렇고 그런 사이’다 라고 소문이 길거리 돌멩이에도 화장실벽에도 공회당담벼락에도 온통 둘의 ‘얼 레리 꼴 레리’로 도배가 되었는데, 정작 본인은 “이야기 한번 나누어 본적이 없었다”고 했다. 질투의 화신이 만든 프레임에 친구만 어린 시절을 가슴앓이로 보내야만 했다.

한때 작가로써 존경했던 분이 어느 날 생물학적 환경에 빠져들더니‘저토록 옳은 애기를 싸가지 없이 할까?’라고 지탄을 받는 일이 있었는데, 後에 잠시나마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라고 실토를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자신이 멋있어 보일 때는 “아무리 생각해도 축구하다가 골을 넣을 때”라고 했다.

카더라의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싶다. 일단 질러보고 반응이 나타나면 굳히기에 들러 간다. 언론이 동원되고 전문가도 등장한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경기에서 축구황제 마라도나의 신의 손도 이와 다를 게 없었다. 경기에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스포츠맨쉽은 저 건너 이야기였다. 당시 마라도나는 사실에 근거하여 잘못을 시인하고 경기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했음에도 세계최고의 입장임에서 그 어떤 변변한 사과도 없었다.

다른 이야기를 보자 5억의 팬티예산을 삭감 했다고 성토하던 어떤 분께서도 나중에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음에도 별다른 사과나 논평은 없었다. 이유는 딱 그거였다, 이미 골은 들어간 것이다.

내로남불이 판치는 時代, 팩트(Fact)보단 찌라시가 우선시 되는 時代, 자기반성이 없는 아니면 말고의 時代, 이 모든 것이 카더라의 산물인 게 안타깝다. 제발 잘 있는 국민은 그만 들먹거리고 본인들이나 잘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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