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

[언중언]‘단풍’

올해도 설악산에서 시작된 단풍이 전국을 서서히 붉게 물들이고 있다. 단풍은 오대산 치악산을 거쳐 소백산 월악산 등으로 번져 간다. 그리고 내장산 주왕산 월출산까지 남하하면서 사라질 것이다. 산꼭대기에서 아래쪽으로는 하루 40m 정도씩 북에서 남으로 25㎞씩 이동한다. 무척이나 빠른 가을의 속도다. 단풍은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다. 정목일은 수필 ‘만산홍엽’에서 단풍을 “감동과 포옹의 빛깔”이라고 표현했다. 단풍이 보고 싶고, 그 속에서 걷고 싶은 이유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도종환의 시 ‘단풍 드는 날’이다. 단풍이 왜 아름다운지를 알 수 있다. 우리도 스스로 버릴 것을, 버려야 할 때를 알아 가장 빛나는 삶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의미 있는 삶이 되겠는가. ▼시성이라 불렸던 당나라 시인 두보는 ‘산행’이라는 시에서 “수레를 멈추고 석양에 비치는 단풍섶에 앉아 보니/ 서리맞은 단풍잎이 한창 때 봄꽃보다 더욱 붉구나”라고 가을산을 예찬했다. 조선 후기 가객 김천택은 “추상(秋霜)에 물든 단풍 봄 꽃도곤 더 좋아라/ 천공(天公)이 나를 위하여 뫼 빛을 꾸며 내도다”라고 읊었다. 올해는 유난히 색이 곱다고 한다. 옛말에 단풍이 곱게 들면 이듬해 물이 흔하고, 단풍이 우중충하면 이듬해 물이 귀하다고 했다. 산마다 오색으로 피어오른 단풍이 내년의 풍성함을 예고한다. 그래서 더 반갑다. ▼단풍은 서리를 맞으면 낙엽이 된다. 그렇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밟히는 낙엽들은 체감과 청각의 즐거움도 안겨준다. 아니 낙엽에선 향기가 난다. 작가 이효석은 낙엽을 태우면서 “잘 익은 커피 냄새가 난다”고 했지 않은가. 새 생명의 잉태를 위한 거름이 되는 낙엽의 ‘고귀한 삶’에서 어찌 향기가 나지 않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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