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통렬한 반성으로 ‘안전 관리’ 전면 재점검해야

이태원 참사, 믿기 어려운 치욕적 사건
재난 법제 정비·매뉴얼 꼼꼼하게 챙겨야
‘안전은 공짜''라는 의식 청산할 때

154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 간 이태원 핼러윈 참사는 한국의 수도권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치욕적인 사건이다. 우선은 사고 수습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인파에 밀려 속수무책으로 친구가 죽어 가는 모습을 본 축제 참가자들의 트라우마 치료, 사고 직후 구조대원들 틈에 섞여 피해자들의 심폐소생술에 뛰어든 시민들의 정신적 충격은 컸다. 이들을 어떻게 치유해 나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 안전한 대한민국 만들기 목표가 어디쯤 와 있는지 정밀하게 짚어야 한다. 관계 당국이 사고 예방을 위해 사전에 얼마나 치밀한 대책을 갖고 있었는지 따져야 한다.

올해 이태원 핼러윈 행사는 3년 만에 ‘노마스크’로 치러져 10만 이상의 대규모 인원이 몰릴 것이라는 예측은 이미 나와 있었다. 그에 걸맞은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 현행 매뉴얼은 주최기관이 명확한 행사에만 적용돼 있다. 이에 대한 문제점을 보완해 나가지 않으면 같은 사건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간 안전 관리는 집회나 시위에만 치중해 온 것이 사실이다. 대규모 인원이 운집하는 축제장에는 안전 관리가 사실상 방치돼 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고가 날 때마다 안전을 강조했지만 다짐은 그때뿐이다. 사고는 계속되고 인명 피해는 늘어난다. 지난 십수 년 동안 세월호를 비롯한 수차례의 대형 참사를 겪으면서도 같은 일이 재발했다는 데서 통탄을 금치 못한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민의 안위를 책임지고 시민 각자가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국가다. 우리는 이번 사고를 통해 겉으로 세계 10위 경제대국의 선진국이더라도 속으로는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 시민 안전이 최우선 가치로 여겨지는 사회는 정부와 공권력의 힘만으로 실현되기 어렵다. 사회 전체가 처절한 반성과 함께 안전불감증을 청산하기 위한 대전환이 절실하다.

이미 ‘인재(人災)대국’ 얘기를 듣기에 충분하다. 더 방치하면 블랙홀처럼 폭발한다. 이제라도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되짚어 봐야 한다. 반복되는 사고를 보면 우리 사회 구조 속에 대형 참사의 씨앗이 잉태해 싹터 왔음을 알 수 있다. ‘빨리빨리 문화’는 압축 성장을 가능케 했지만, 한편으로 ‘대충대충 문화’를 낳았다. 안전 매뉴얼 등을 꼼꼼하게 챙기고, 차곡차곡 재난 법제를 정비하면서 안전을 다잡는 일은 뒷전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발달로 사고가 대형화하고 있지만, 선진적 재난 관리 매뉴얼 마련과 현장 행정, 법체계 통합·정비, 안전 분야 인재 양성 등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안전은 공짜’라는 의식과 대형 사고가 일어난 뒤 몇 달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쉽게 잊는 ‘냄비 속성’은 우리 사회의 치명적 병폐다. 국가가 안전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그저 국가와 사회 탓으로 돌리는 무책임 증후군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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