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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플럼북(Plum book)

‘이태원 참사’로 슬픔이 온 나라를 짓누르고 있다. 국가애도기간을 거쳐 원인과 대책을 찾으려는 요구와 목소리들이 분출하고 있다.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확실히 져야 하고, 고쳐야 할 관행들이 있으면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 참사의 ‘실체적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재발 방지책도 정확하게 처방해야 한다. 정권 교체 초반에 터진 참사에 대해 정치적인 논란만 벌이다 ‘배가 산으로 가는’ 엉뚱한 결론이 나오지 않게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미국에 플럼북(Plum book)이 있다. 4년마다 12월에 당선이 결정되는 새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공직 리스트가 담겨 있다. 책 표지가 자두 색깔인 자줏빛이라 붙여진 인사 지침서다. ‘미국 정부 정책과 지원 직책’(The United States Government Policy and Supporting Positions)이 공식 명칭이다. 70년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당선된 후 전임 트루먼 정부에게 연방정부 직위 리스트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해 탄생한 게 ‘플럼북’이란다. 양당제인 미국에서 민주당의 장기 집권으로 연방정부 직책을 파악하기 어려웠던 공화당 쪽의 부탁이 있었다. ▼정권 교체로 여야가 바뀌면 전임 정부에서 임명한 기관장과 새로 출범한 정부가 충돌한다. “철학이 다른 사람과 어떻게 일을 하나?” “보장된 임기는 다 채우고 나가겠다”며 국민을 볼모로 살풍경을 만든다. 공수만 바뀔 뿐 5년마다 반복되는 꼴불견이다. 갈등이 아니라 피곤이다. 국력 낭비이고 국격 훼손이다. 이 같은 일은 지방정부에서도 빚어지고 있다. 전임 지자체장들이 임명한 산하기관장들의 거취를 놓고 여기저기서 파열음이 들린다. ▼줄서기, 제 식구 챙기기, 알박기, 낙하산 인사, 블랙리스트 같은 부정과 비리의 표현이 대물림되지 않아야 한다. 여소야대의 정치적 혼란기에 발생한 참사에 뒤죽박죽인 대책이 나오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한마디’보다 후손들이 사회적 재난을 예방하고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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