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월요칼럼]156개의 이야기를 들어라

손서은 소설가

마디나 셰르니아조바, 라우, 스티븐 블레시, 앤 마리 기스케, 도미카와 메이, 고즈치 안, 크리스티나 가르데르. 10.29 참사로 희생된 외국인들이다. BBC와 시사인에 공개된 명단이다. 뉴욕 타임즈는 사고나 참사가 벌어지면 희생자의 사진과 함께 그 삶을 조명하는 기사를 싣는다. 가족과 친구들은 그가 뭘 좋아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들려준다. 그러한 기사를 읽고 독자들은 비로소 희생자라는 차가운 단어에서 떨어져 나와 그 죽음을 함께 슬퍼하게 된다. 사랑 받았고 사랑했을 것이다. 꿈이 있었고 그 길 위에 있었던 이들이다. 이야기 없는 삶은 없다. 우리는 156개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애도는 그렇게 시작된다.

국가가 세운 분향소에는 희생자들의 이름도 사진도 없다. 이들의 삶을 헤아리고 슬퍼할 어떤 것도 없다. 그 텅 빈 곳에 당신은 매일 출근을 했다. 그곳에서 애도한다. 궁금하다. 당신은 무엇을 애도 하는가. 어떤 삶들이 지난 10월 29일에 끝이 났는지 당신은 상상할 수 있을까. 당신에게 그러한 능력이 있을까. 당신은 실체가 있는 곳으로 갔어야 했다. 시신이 있고 유족이 있고 찢어지고 부서진 삶이 있는 그곳으로 갔어야 했다. 그곳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어야 했다. 그들과 함께 울었어야 했다. 그것이 책임지는 자의 태도이다.

당신은 스스로 만든 거대한 쇼장에서 애도를 연기한다. 유감을 전한다. 제대로 배우고 넘어가자. ‘유감이다’는 말은 사과가 아니다. 감정의 표현이다.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에 따르면 유감은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있는 느낌이다. 사람을 죽여 놓고 그 앞에서 ‘유감이다’ 그러는 거 아니다.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는 대신 당신은 현장에서 최선을 다했던 소방관들에게 죄를 씌운다. 당신은 참으로 이상한 능력을 발휘하는 중이다. 전 생애를 통해 남의 ‘죄’를 묻고 다그쳐왔던 당신은 지금도 그것만 할 줄 안다. 참사 당일 이태원 인근에 있었던 163명의 경찰에게 당신은 질책한다. 혼잡 통제를 하지 않고 무엇을 했느냐고. 그들은 거기 다른 이유로 존재했다. 공무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일만 수행한다. 그래서 욕을 먹기도 하지만 덕분에 국가가 기능한다. 이들은 성실한 톱니바퀴들이고 큰 그림을 그리지는 못한다. 큰 그림은 누가 그리는가? 당신이다.

그림 그리는 자로 선택된 당신은 얼마 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후로 경찰 인력 배치의 우선순위가 엉키고 뒤바뀌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마약 수사를 위해 뒷전으로 밀려났다. 참사의 장소에 있던 젊은이들은 국가가 지키고 보호해야 할 국민이 아니라 잠재적 마약사범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럼 혼잡 통제는 누가 하는가. 기동대가 한다. 기동대는 매년 같은 시기에 해밀턴 호텔 인근에 파견됐다. 늘 있어왔던 일이었고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하던 일을 올해도 그대로 했으면 됐다. 기동대 1팀만 배치됐어도 막을 수 있었던 참사였다. 하지만 그날, 기동대는 오지 않았다. 왜? 답은 당신이 그린 그림에 있다. 당신이 그림을 잘 들여다보라. 거기 당신이 지켜야 할 국민은 없다. 처벌해야 할, 기소해야 할 잠재적 범죄자인 국민이 있을 뿐이다. 당신은 완전히 잘못된 자리에 앉아있다.

묻고 싶다. 당신은 왜 그 자리에 있는가. 그 자리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자리다. 모든 책임을 지는 자리다. 이렇게 철저하게 실패해 놓고도 여전히 무능한 당신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제 알겠다. 당신은 커다란 구멍이다. 그러니 기능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대통령도 국가도 없는 시기를 살고 있다. 부디 알아서 살아남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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