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호등]돈으로 살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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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선영 사회부 차장

"내 한테 없는 기 니한테 있어야 그게 거래다. 내가 없는게 있을거 같드나"

당돌하게 거래를 하자는 어린 손자에게 순양그룹 진양철 회장은 이렇게 되묻는다.

손자는 주저없이 답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거니까요. 순양가에서 아무도 갖지 못한 걸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대한민국 최고 학부, 서울 법대 합격증이요" 허를 찔린 듯한 진양철 회장의 얼굴에 드디어 만족스러운 웃음이 번진다.

"맞네이. 돈으로 못사는 합격증. 자신있나. 내가 뭘 주면 되겠노"

지난해 인기리에 종영한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 아들' 속 한 장면이다. 당시 배경은 1980년대 후반, 주인공 진도준은 재벌도 쉽게 가질 수 없는 서울 법대 수석 합격증을 담보로 할아버지의 신뢰를 얻는데 성공한다. '서울대 합격증'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가장 빠르고 확실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 공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서울대는 그 때나 지금이나 대한민국 '지성의 상징'이다. 가장 머리 좋고, 똑똑한 학생이 진학하는 최상위 학교의 대명사로 쓰인다. 여기에 '입시'가 더해지면 그 의미는 더욱 커진다. 교육과 학력 수준을 가늠하는 '절대적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지역사회에서 '올해는 어느 학교에서 서울대를 많이 보냈다더라' '누구네 집 딸이 서울대 붙었대' 라는 말이 회자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대 합격자를 얼마나 많이 배출했느냐에 따라 계급이 생긴다. 고교평준화가 실시된지 10년이 넘었지만 그 속에서도 '신흥 명문고'가 등장하는 등 보이지 않는 서열이 분명히 존재한다. '학력 향상'을 강조하는 신경호 강원도교육감이 취임한 이후에는 더욱 더 그렇다.

이런 관심은 언론에 좋은 '명분'과 '핑계'가 된다. 지난해 연말 강원지역 서울대 수시 최초 합격자수를 취합하기 위해 각 학교에 전화를 돌렸다. 받아든 합격자 수는 40명. 그렇게 박스기사가 하나 만들어졌다. 그러나 미처 기사에 담지 못한 말들이 있다.

"왜 서울대만 '콕' 찍어서 물어 보시나요? 우리 학교에 서울대 말고 다른 학교에 진학한 우수한 학생들도 많은데…." "서울대에만 초점을 맞춘 보도는 신중하게 고민해 주셨으면 해요"

취재를 위해 전화로 만났던 진학 담당 교사들의 답변이다. 맞다. 백년대계인 교육을 단순히 '서울대'라는 이름으로, '40명'이라는 숫자로 재단할 수는 없다. 그 속에 담긴 무수히 많은 꿈과 가능성을 제대로 봐야 한다. 반성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비단 서울대 뿐 만이 아니다. 학생들의 무한한 꿈과 가능성이야말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갖는다. 강원교육의 미래 역시 '서울대'라는 단답이 되어서는 안된다. 수많은 답안지 중 하나일 순 있어도 정답으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신경호 교육감은 취임 초 "학력을 '공부'로 단정해서는 안되며 학생들을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원교육계가 함께 실천해 나갈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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