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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여행 라떼는 말이야]경춘선 철로변 아이들…위험한 객기에 사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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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철로가 놀이터 였던 시절
기차오는 시간 맞춰 함께 달리기도
철길위 못이나 동전 얹여 구부리고
돌 올려놔 사고 발생도 빈번해 위험

◇1971년 경춘선 춘천구간에서 아이들이 철길에 귀를 대고 기차가 오는 소리를 듣고 있다. 강원일보DB

“그 시절 그땐 그렇게 갈데가 없었는지~.”

노래가사 처럼 그때 그 시절에는 정말 변변하게 갈데도, 딱히 놀 곳도 없었다.

기껏해야 동네에서 가장 넓은 공터에 모여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나와 익숙한 딱지치기나 구슬치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그리고 오징어, 다방구, 비석치기를 하는 정도가 그나마 즐길 수 있는 놀이의 최대치였다. 물론 부자집 아이들은 다른 ‘경우의 수’일 테니 빼놓고 말이다.

놀거리 가짓 수가 우리나라 인구 수 만큼은 될 것 같은 현재의 상황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隔世之感) ’을 느낄 일이지만 구슬이나 딱지를 무슨 가보처럼 여겼고, 온종일 땅바닥을 굴러다녀 옷이 더러워졌어도 그 때가 그리운건 그래도 정(情)이라는게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1980년대, 그 이전에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아련한 기억 속 놀이들은 최소한의 재료와 함께 내 몸을 최대한 놀려야 가능했던 것들이다. 물론 몸빵으로 가능한 놀이도 많았다. 여름이면 빈 소주 댓 병을 어항(魚缸)으로 만들어 물고기를 잡았고, 겨울에는 앞 산에 개장한 눈썰매장에서 비료 포대 썰매를 타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 쉽게 보이고 또 만날 수 있는 ‘지형지물’ 은 그대로 우리들의 놀이터가 됐다.

◇1971년 경춘선 춘천구간에서 아이들이 철길에 귀를 대고 기차 오는 소리를 들으며 놀고 있다. 강원일보DB

그 중에서도 ‘철길’은 다양한 놀이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새로운 놀이터 가운데 하나였다. 당연히 접근성 면에서 철길이나 기차역 주변에 사는 아이들이 철길 놀이의 고수들이었다.

하지만 그 놀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 당시 아이들은 잘 알지 못했다. 지금이야 철길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어렵지만 그때는 뭐든 왜 그렇게 허술했는지 느슨한 철조망이나 철쭉, 개나리로 된 장벽만 통과하면 얼마든지 철길 위에 오를 수 있었다.

역무원들이 경광봉을 흔들고 호루라기를 불면서 단속을 하곤 했지만 아이들은 또 귀신같이 개구멍으로 빠져 나와 위기를 모면하곤 했다. 지금도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철길 위에 못이나 동전을 올려 납작하게 만드는 것도 놀이 중 하나였다. 철로변 아이들이 놀이의 결과물들을 들고 학교에 와서 자랑이라도 할라치면 그건 또 왜 그게 그렇게 부러웠는지…, 한번씩 만져보고는 “우와~” 탄성을 지르는 것은 기본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아이들은 기차가 오가는 시간을 거의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만일의 사고를 대비해 자갈 위에 무릎을 꿇고는 철길에 귀를 대고 기차가 어디쯤 오는지를 가늠해 보기도 했다. 나름 과학(?)적으로 말이다. “철컹~ 철컹~” 그렇게 길쭉한 쇠붙이를 타고 들려오는 기차 소리를 듣는 것, 그 것 자체도 놀이였다. 그런데 아이들은 기차가 코 앞을 지나쳐도 몇발자국만 물러설 뿐, 시크하고 심드렁한 표정과 함께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기차를 쳐다보는 것을 무슨 멋처럼 생각했었다. 위험한 ‘객기’였지만 그땐 그랬다.

◇1971년 경춘선 기차가 달리고 있는 모습. 사람들이 기차 운행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강원일보DB

이러한 아이들의 위험한 놀이는 사고로도 이어졌다. 아이들은 철길 위에 못이나 동전보다 훨씬 큰 돌 또는 나무를 올리는 장난을 치기도 했는데, 이로 인해서 기차가 탈선하는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특히 1970년대 철길에 돌을 얹어 놓는 치석(置石) 행위로 인한 사고가 많았는데 1974년 3건이던 치석사고가 1975년 10월말까지 12건 발생했고 이 가운데 5건의 탈선사고가 일어났다고 한다.

당시 기사(조선일보·1975년 11월20일자 7면)에 따르면 이 같은 사고의 거의 대부분이 어린이 장난으로 밝혀졌다고 했는데, 기관사가 주먹만한 돌을 발견할 수 있는 거리가200~250m이고 70년대 특급열차의 속도가 80km, 비상 제동거리가 380~400m 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탈선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또 1998년에도 경춘선 성북역~화랑대역 방향 3.2km 지점에서 10대 4명이 철길에 돌을 올려 놓아 기차가 탈선하는 사고가 발생(동아일보·1998년 3월16일 22면)했는데, 이들에게는 철도법 위반 혐의로 서울 가정법원에 송치 결정이 내려졌다.

이 뿐 아니라 1960~70년대에는 열차에 돌을 던지는 사고도 한 해 100건 이상 일어나기도 해 이를 막기 위해 창문의 커튼을 모두 내리고 운행하는 이른바 ‘방탄여행’도 일상다반사로 일어났다고 한다. 변변한 놀거리 하나없는 아이들에게 기꺼이 놀이터가 되어 준 철길은 때로는 누군가의 추억으로 남기도 하지만, 그 시절 아이들을 위협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안긴 씁쓸한 우리들 삶의 한 단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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