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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랑노래' 대표 민중시인 신경림씨 별세…향년 8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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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들 애환 질박한 생활언어로 표현…빈소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시집 '농무', '가난한 사랑노래' 등을 쓴 문단의 원로 신경림 시인이 22일 오전 8시 17분께 별세했다고 문단 관계자들이 22일 전했다.암으로 투병하던 신 시인은 이날 오전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 2024.5.22 [연합뉴스 자료사진]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을 뜨거움 /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신경림 시 '가난한 사랑노래' 중에서)

대표 시 '가난한 사랑노래', '농무'를 쓴 문단의 원로 신경림 시인이 22일 향년 89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문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암으로 투병하던 신 시인은 이날 오전 8시 17분께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

1935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동국대 영문과 재학 중이던 1956년 '문학예술'지에 '갈대', '묘비' 등의 작품이 추천돼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1973년에 농민들의 한과 고뇌를 담은 첫 시집 '농무'를 펴냈다.

시인은 이후 반세기 넘는 시간 동안 '새재'(1979), '달 넘세'(1985), '민요기행 1'(1985), '남한강'(1987), '가난한 사랑노래'(1988), '민요기행 2'(1989), '길'(1990), '갈대'(1996),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1999), '낙타'(2008), '사진관집 이층'(2014) 등의 시집을 냈다. '한국 현대시의 이해'(1981), '삶의 진실과 시적 진실'(1983), '우리 시의 이해'(1986) 등의 시론·평론집도 내놨다.

그의 시 '가난한 사랑노래'는 여전히 많은 독자들이 즐겨 찾는 애송시로 꼽힌다

고인은 민초들의 슬픔과 한, 굴곡진 삶의 풍경과 애환을 질박하고 친근한 생활 언어로 표현해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한국의 대표 '민중적 서정시인'이다. 일찍이 문학평론가 최원식은 그를 "우리 시대의 두보(杜甫)"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만해문학상, 단재문학상, 대산문학상, 시카다상, 만해대상, 호암상 등을 수상했으며, 동국대학교 석좌교수를 거쳐 1998년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등으로도 활동했다.

문인들은 고인과 그의 작품이 한국 현대시와 문단에서 차지하는 높은 위상을 고려해 장례를 주요 문인단체들이 함께하는 대한민국 문인장으로 치를 계획이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25일 오전 5시 30분, 장지는 충북 충주시 노은면 연하리다.

유족으로는 아들 병진·병규 씨와 딸 옥진 씨 등이 있다.

◇신경림 시인 생전 모습[창비 제공.]

한편 신 시인이 별세하자 문단에서는 애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시인인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내년이 시집 '농무'(1975)를 내신 지 50년이 되는 해"라며 "우리나라 리얼리즘 시의 맨 앞에서 우리를 이끌어준 어른이었고, 시인 후배들에게는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고 안타까워했다.

도 시인은 "신경림 선생님이 없는 한국 시단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며 슬퍼했다.

시인인 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도 "'창비 시선' 1번인 '농무'는 우리 시단에서 민중 시의 첫 장을 연 시집"이라며 "선생님은 이른바 우리 시대 고비 때마다 자신의 위치를 놓지 않고 어른의 역할을 해온 시단의 거목"이라고 추모했다.

곽 시인은 "선생님은 민중 시의 장도 열었지만 서정성과 문학적인 길도 동시에 담보한 분"이라며 "훌륭한 인품으로 후배들이 불편한 얘기를 해도 괘념치 않고 받아주신 품이 넓고 따뜻한 분이었다. 후배들에게 시로도, 인품으로도 영향을 주신 분"이라고 기억했다.

시인인 유자효 전 한국시인협회장도 "한국인의 정서를 시로 가장 잘 표현한 시인으로, '농무'는 국민의 사랑을 받은 시였다"며 "선생님의 시는 평이한 가운데 깊은 내용을 담고 있다. 요즘 시가 어려워지는 경향을 걱정하는 시각도 있는데 선생님은 '시는 결코 어려운 언어로 쓰는 것이 아니다. 생활어, 늘 하던 말, 그런 언어 속에서 깊은 내용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작품으로 보여줬다"고 돌아봤다.

유 시인은 이어 "시인과 우리 모두 선생님에게 큰 신세를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갑자기 떠나시는 걸 보니 생전 못 찾아뵌 게 후회가 된다"고 명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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