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강원의 항구기행]논골담길 정상에 올라 마주한 새하얀 등대 소중한 벗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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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의 포구에서 쓰는 편지
(3) 동해 묵호항

묵호항 방파제로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

M 에게. 풍랑주의보(風浪注意報)가 내려진 묵호항(墨湖港) 방파제 바깥은 온통 하얗게 들끓고 있었어. 산골 출신인 나는 사실 바다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에 대해서는 자세히 몰라. 파도가 높게 치는구나. 바람이 강하게 부는구나. 이 정도가 전부일 거야. 풍랑주의보, 풍랑경보, 파랑주의보, 파랑경보, 태풍주의보, 태풍경보 등등의 용어들은 외국어처럼 들리곤 했어.

이런 용어들은 어린 시절 깊은 밤 아버지가 틀어놓은 라디오에서나 들을 수 있는 것들이었어. 나이가 들어서도 마찬가지였어. 어쩌다 바다를 찾아갔을 때 백사장에 앉아 하루에 파도가 몇 번이나 칠까, 이런 생각이나 하며 신발 속에 들어간 모래를 털어내는 게 전부였지. 뭐 그렇다고 산속의 일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만.

울릉도와 독도로 가는 여객선

하여튼 M,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다가 망상해수욕장을 지날 때부터 바다의 상태가 격렬하다는 걸 눈치 챘고 묵호항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했을 땐 풍랑주의보 발효로 울릉도와 독도로 가는 배가 결항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어. 울릉도로 가려 했던 건 아니지만 부두에 정박해 바람과 파도에 밀려 갈매기처럼 끼룩거리고 있는 여객선을 보니 왠지 쓸쓸해지더라.

M, 이번 포구를 묵호로 정한 건 이곳이 너의 고향이기 때문이야. 오래전 어느 겨울 묵호에서 만난 너는 이렇게 말했지. 고등학교 시절 야간자율학습을 마치면 어둡고 컴컴한 묵호의 시장거리를 지나 산동네 골목길을 올라 집으로 가는 게 그렇게 싫었다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그 산동네에서 어서 빨리 이사 가고 싶었다고. 평지에서 사는 게 소원이었다고. 그러나 그 소원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이루어졌다고.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을 거야. 내가 살던 산골짜기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도시를 떠돌다 나는 다시 산골짜기 집에 들어가 살고 있다고.

실 내게 묵호가 처음으로 각인되었던 건 소설가 심상대의 ‘묵호를 아는가’라는 소설 때문이었어. 이후 나는 묵호가 고향이라는 사람을 만나면 늘 그 소설을 이야기했던 것 같아. 소설 속 묵호의 사람들은 거칠고 풍경은 황량했어. 묵호항의 바닷물은 온통 검을 것만 같았고. 묵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소설 속 묵호가 너무 마음에 들었어. 소설 속의 묵호항 근처에서 살고 싶을 정도였지. 그런데 M, 어느 봄날 교정에서 너를 보면서부터 먹빛 같았던 묵호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지. 머릿속의 소설이 조금씩 지워지고 있었던 거야.

꽃게해장국

M, 묵호항에 도착하기 전에 배도 출출해서 인근 북평 천곡동의 자주 방문하던 시장으로 들어갔어. 방게해장국을 찾았으나 여러 사정으로 이젠 먹을 수 없다는 주인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꽃게해장국으로 대체했지. 된장과 무를 넣어 오래 끓인 꽃게해장국에 밥을 말아 먹었는데 독특한 별미였지. 방게해장국을 더 이상 먹을 수 없다고 하니 다소 아쉬웠지만 어쩌겠어. 어부들의 그물에 걸려온 방게를 해장국으로 끓여 팔다가 전과자가 되었다는 주인아주머니의 하소연을 뒤로하고 식당을 나왔지.

어시장의 골뱅이와 임연수어

호항 어시장엔 임연수어(새치)와 가자미가 한창이더라. 반쯤 말라가는 임연수어에 굵은 소금을 뿌려 화롯불에 구워먹으면 딱 좋은데 말이야. 임연수어 껍질론 쌈을 싸먹고. 어시장 뒤편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할머니들, 어선에 어구들을 싣고 있는 외국인근로자들, 배가 들어오면 물고기를 실어 나를 리어카들, 포구의 어선과 어선 사이에 앉아 낚시를 하는 사내들. 그렇게 포구를 천천히 통과해 풍랑주의보에 요동치는 방파제에 도착했지. M, 너와 함께 묵호항의 방파제를 걸었던 적이 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육지를 향해 온몸으로 밀려오는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네 인생으로 사정없이 몰려오는 거친 운명의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는 과연 있는 걸까.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짭짤한 파도의 분말을 혀로 핥고 있을 때 저 멀리 묵호항의 등대가 시야에 들어왔지.

등대 옆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묵호항의 명물인 논골담길을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흰 등대. 나릿가 산동네에 살던 사람들은 이제 대부분 떠나버렸고 그 자리엔 예쁘장한 카페와 펜션이 들어서서 항구와 난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논골. 밤이면 그 위에서 바다를 향해 빛을 깜박이는 묵호등대. 가파른 언덕길 계단을 올라가는 곳곳엔 묵호항과 논골담길의 오래된 내력을 알려주는 문구들이 적혀 있었어. M, 네가 살고 있었을 때의 논골 풍경은 어떠했을까. 너의 비탈길은 등대가 있는 논골이었니, 아니면 건너편 덕장 언덕이었니? 네가 매일 바라보았을 묵호항의 바닷물은 어떤 색깔이었니?

941년에 개항한 묵호항은 무연탄 중심의 무역항 역할과 함께 어항으로 발전했다고 적혀 있어. 등대는 1963년에 세워져 불빛을 밝혔다고 하니 너보다 먼저 태어났구나. 아 참, 어린 시절 나의 장래 희망 중 하나가 등대지기였지. 육지가 아니라 외딴 섬의 고독한 등대지기. 아마 교과서에 나오는 동요가 영향을 준 것일 텐데 왜 그런 꿈을 꾸었던 것일까. 그 꿈이 지금의 소설가란 직업과 이어진 것일까.

묵호등대에 설치돼 있는 프리즘렌즈 회전식 대형 등명기는 약 48㎞(30마일) 밖에서도 불빛을 식별할 수 있다고 하네. 어두운 밤 120리 밖 망망한 바다에서 등대의 불빛에 의지해 항구를 찾아오는 어선의 선장은 어떤 꿈을 꾸었을까. 내가 쓴 소설은 아마 10리 밖도 제대로 비추지 못할 텐데 말이야.

묵호등대 명물 우체통

M, 묵호항을 찾아와 네게 편지를 쓰기로 작정한 건 고맙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야. 직장을 다니던 네가 결혼 소식을 알리면서 덧붙인 말은 쓰고 있던 노트북을 내게 주겠다는 것이었어. 그 노트북은 나의 첫 컴퓨터였고 나는 그 노트북의 자판을 등대 꼭대기의 등대지기처럼 매일 밤 두드려 소설을 한 편씩 완성했지. 그렇게 쓴 소설들을 모아 첫 소설집을 발간했던 거야. 그 고마움을 이제 비로소 전하고 싶었던 거야. 묵호등대 아래의 마당에는 빨간 우체통이 하나 있어. 느린 우체통이라고 적어 놓은 걸 보니 그리 빨리 가지는 않는 모양이야. 이 편지는 저 우체통에 넣을게.

묵호 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해지면 도착하겠지. 안녕.

논골담길로 올라가는 가장 험한 계단의 어린왕자와 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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