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호등]아카데미극장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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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원주 주재기자

내리쬐는 햇볕이 뜨거웠던 2020년 8월 원주 평원동 아카데미극장. 폐쇄 후 14년 만에 시민들에게 처음으로 공개된 낡은 극장에 들어서자 마치 시간여행을 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입구의 매표소를 지나 건물 안에는 관람객들의 이목을 즐겁게 해준 영사기가 당당히 자태를 뽐내고 있고, 상영관을 들어가자마자 꿉꿉한 냄새마저 정겨운 느낌이 들었다. 상영관을 지나 극장주가 살던 살림집에는 작은 정원과 함께 당시 생활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눈 앞에 마치 옛날 드라마의 한 장면이 펼쳐졌다. 당시 방문객들도 극장 곳곳을 둘러보며 감탄사를 자아냈다.

하지만 건물 자체는 너무 낡아서 위험했다. 건물이 ‘안전 미흡’ 수준인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은 만큼 계단, 천장 등은 녹슬었고, 여기저기 파손된 흔적이 눈에 보였다. 발암물질인 석면 슬레이트 지붕에 따른 건강 문제도 대두됐다. 2019년 전국을 강타한 태풍 링링의 영향으로 춘천 육림극장의 외벽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던 것처럼 아카데미극장도 언제 무너질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원형을 보존하거나 리모델링을 하는 것 자체가 구도심에 활력을 불어넣을지 의문이었다. 차라리 만성적인 주차난을 겪고 있는 이곳을 위해 주차장 등 편의시설이 들어서는 게 낫다는 인근 주민들의 의견에도 공감될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누군가에겐 추억의 장소인 반면, 시한폭탄이었던 극장을 지금은 볼 수 없게 됐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된 단관극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60년 역사의 아카데미극장이 원주시에 매입된 후 민선8기에 접어들면서 지난해 철거됐기 때문이다. 당시 철거 작업을 위해 극장에 천막을 쳐 모르는 이가 봤을 때는 공사현장 그 이상, 이하도 아니였다. 철거 여부를 두고 보존을 주장하는 시민단체와 시 간의 갈등이 고조됐던 만큼 당시 취재를 통해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입장에서 시비를 가르기엔 양측의 논리와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그렇게 마무리된 줄 알았던 극장은 지금도 논란의 불씨를 태우고 있다. 시민단체가 최근 규탄집회, 원주시 관계자들을 경찰에 고발한 데 이어 시청 2층 브리핑룸에서 최근 원주시에게 정보공개거부처분 소송을 승소한 결과로 받은 문건을 공개하며 “시가 이미 철거를 방향으로 정한 후 편향적으로 여론을 수렴한 것은 물론 예산 전용 시도와 말뿐인 조례 개정 등으로 의회와 시민을 기만했다”고 기자회견을 나선 것이다. 시는 “정당한 절차대로 진행됐을 뿐 아니라 자체 예산을 사용해 철거를 진행했다”고 반박하면서 양측의 감정의 골은 깊어지는 상황이다.

멀티플렉스 극장 시대로 존재감을 잃은 아카데미극장이 결국 철거때문에 전 국민들이 알게 됐다. 물론 극장 철거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시민들의 손으로 뽑은 결정권자인 원강수 시장이 철거를 기조로 행정 절차를 진행했다면, 이에 대한 정치적인 책임도 뒤따라 짊어지면 된다. 다만 시민단체 측의 주장처럼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이 민주적인 절차가 아닌 주먹구구식으로 결정됐다면 이에 대한 후폭풍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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