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시 사천면에 가면 물회마을이 유명하고 동해안 생선회 하면 이곳에서 태어난 허균과 연관이 깊다. 허균(1569~1618년)은 사천면에서 출생했으며, 호가 교산(蛟山)이다. 교(蛟)는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를 말한다. 교산은 그가 태어난 사천진해수욕장을 바라보고 있는 야트막한 산을 말한다. 산의 형상이 꾸불꾸불해서 붙여진 명칭이었다. 허균은 강릉이 낳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애민사상가이자 당대 최고의 문학가이다. 특히 ‘홍길동전’과 ‘성소부부고’ 등 수많은 작품들은 강릉이 인문도시로 성장해 온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허균이 지금부터 413년 전 1611년에 쓴 ‘도문대작’은 우리나라 최초의 음식 품평서로 전국 8도의 식품과 명산지를 자세히 적은 책이다. ‘도문대작’이라는 제목은 고기를 먹고 싶으나 먹을 수가 없으므로 도문(屠門·도살장의 문)이나 바라보고 대작(大嚼·질겅질겅 씹는다)하며 자위한다는 것으로, 가당치 아니한 것을 부러워한다는 뜻이다. 이 책에서 청어·복어·송어 등 46종의 수산물을 나열하였으며, 동해안 어종은 20여종을 소개하였다.
특히 “도루묵은 동해에서 난다. 처음 이름은 목어(木魚)였는데 전조에 목어를 좋아하는 임금이 은어(銀魚)라고 고쳤다. 많이 먹어 싫증이 나자 도로 목어라고 고쳤다 해서 환목어(還木魚)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연어알젓 한 그릇을 받아 먹어보니, 맛이 사슴의 태(胎)보다도 뛰어났다”, “광어(넙치)는 동해에서 많이 나며 가을에 말린 것이 끈끈하지 않아 좋다”고 하였다. “다시마는 북해에서 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였고, 미역은 “삼척 것이 상품”이라고 했으니, 덜 자란 보드라운 미각은 강원도 것이 으뜸이었던 것 같다.
허균이 함열(지금의 전북 익산)에서 귀양살이하면서 쓴 편지에 보면 “실처럼 잘게 썰어 회(膾)를 쳤더니, 군침이 흐르더이다.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으니 국수나 먹던 창자가 깜짝 놀라 천둥소리를 냈습니다”라고 표현했다. 또 고향을 추억하며 쓴 시 ‘억명주용희서운(憶冥州用戱書韻)’에서 “은순옥회견귀흥(銀蓴玉膾牽歸興)”이라고 했다. 즉, ‘은빛 나는 순채국과 옥구슬 회(膾)는 고향의 흥취를 돋운다’라고 하여 순포호에 서식하는 순채와 사천바다의 맑은 회를 회상함으로써 수산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는 듯하다.
허균이 태어났던 사천에는 큰 항구가 있다. 사천항은 하구에 있는 1종 어항의 어촌마을로 어장이 잘 형성되어 생선이 풍부하며 경포와 연결되어 여름철에는 피서객들이 많이 방문한다. 수십 척의 어선으로 까나리(양미리), 광어, 문어 등을 주로 잡고 있으며, 가리비를 양식하여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또한 가리비 직판장에서는 저렴한 가격으로 싱싱한 조갯살을 맛볼 수 있다. 또한 ‘물회’ 맛집이 많다. 물회는 싱싱한 해산물과 갖은 채소를 넣고 고추장으로 매콤하게 간을 하여 찬물에 말아 먹는데, 동해안 어디에서든 물회 음식점을 많이 볼 수 있으나 사천진리의 물회 맛이 좋고 독특하여 사천진리의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물회에 사용되는 해산물은 오징어, 넙치, 가자미, 조피볼락, 해삼, 멍게 등이 있다.
최근 허균의 유배지였던 익산시는 매년 국악뮤지컬 ‘허균, 익산에 날아들다’ 공연을 열고, 한옥마을 체험과 음식 축제를 열어 허균의 문학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있다. 허균의 이름은 잘 알고 있지만 애향심과 수산물 애정에 대하여는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이참에 허균이 동해안 수산물을 좋아하고 그리워했던 것을 스토리텔링하여 사천 물회를 더욱 발전시켜 수산물 메카로 발전시켜 나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