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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행사
3.1절 시민건강 달리기
호반마라톤
고성 DMZ 평화통일 걷기대회
미스강원 선발대회
춘천시 전국음악콩쿨
만해축전 전국고교백일장
민선8기 강원특별자치도 시대 출범...'강원특별자치 시대' 연다
제9대 태백시의회 고재창 시의장, 이경숙 부의장
제9대 영월군의회, 심재섭 의장 및 이병용 부의장 선출
제9대 화천군의회 노이업 의장, 이선희 부의장 선출
박귀남 양구군의장, 부의장 김선묵 선출
양양군의회 의장 오세만, 부의장 최선남 선출
김진태 도지사 “한국은행 본점 현 도청사 부지에 유치”
“삼성 반도체 유치 자신…알펜시아 적폐청산 아닌 운영 정상화 고민”
'새로운 강원도' 기치 내건 김진태 도지사‘새로운 강원도'를 기치로 내건 민선 8기 김진태 도정이 출범했다. 본보는 김진태 도지사 취임 인터뷰를 춘천 효자동의 반려견 카페인 준독라운지에서 진행했다. ‘이제는...
강원특별자치도 완성 최우선순위 32개 공공기관 유치 청사진 제시
"무상교육·고교평준화 기본 유지…학력신장 목표 반드시 이뤄낼 것"
'균형·조화의 교육' 천명 신경호 도교육감‘신경 쓰는 교육감' 신경호 강원도교육감이 취임했다. ‘강원특별자치도 초대 교육감'이자 ‘12년 만의 보수 교육감' 타이틀을 갖게 된 신 교육감은 학력 신장을 최우선 공...
내년 ‘강원특별자치도의회’로 새출발 ... 권한·전문성 대폭 확대
제11대 강원도의회가 1일 제312회 임시회를 시작으로 4년간의 의정활동에 돌입한다. 제8회 지방선거를 통해 3석이 늘어나 전체 49석이 된 11대 강원도의회는 의석수 증가와 상임위원회 신설, 정책지원관제도 도입...
사상 첫 교육자치 실현 임무 막중 학력 신장·교육 복지 로드맵 구축
빗길 교통사고 7월 가장 많아 안전 주의
내년 최저임금 5% 오른 ‘9,620원’
노동계 “물가반영 안돼”…경영계 “소상공인 외면”
오늘부터 유류세 인하율 ‘30→37%’ 확대
밤새 100㎜ 넘는 장대비 원주 농경지 3만㎡ 침수
연일 지속되는 호우로 인해 강원도 내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강원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오후 3시부터 30일 낮 12시까지 누적 강수량은 원주 문막 118.0㎜, 홍천 시동 112.5㎜, 철원 동송 1...
도로에 깨진 병 수백개 ... 발벗고 나선 시민영웅들
춘천의 한 도로에서 맥주병 수백개가 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나가던 시민들이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자발적으로 청소에 나서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지난달 29일 오전 11시50분께 춘천시 퇴계농공단지 인근의...
[The 초점]성매매는 인간 존엄성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다
[특별기고]민선 8기에 바란다 강원특별자치도 속 채우자
[발언대]“코레일의 진정한 ESG 실현은 고객 안전에서 출발”
언중언
[언중언]'영어의 힘'
[사설]새 단체장·지방의원들 협치로 지역발전 견인을
[사설]내년 최저임금 9,620원, 누구를 위한 금액인가
김진태 강원도지사 첫 출근
어느 소설가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
원주에 대한 흥미진진한 옛날 이야기
김남덕 사진작가 초청展
한강사진공모전 ‘파로호 낚시대회’ 대상
오늘 춘천시립교향악단 ‘아리아와 가곡의 밤’
역대 가장 성대한 평창대관령음악제 열린다
새로운 앙상블·협연…클래식으로 물드는 평창
서울 무대 오르는 용맹한 강원의 호랑이들
도립극단 뮤지컬 '유정, 봄을 그리다' 경주서 공연
예술가들 우크라 난민 돕기 힘모아
춘천에 이어 영국에도 ‘손흥민 벽화'
그래피티 작가 '그나셔' 북런던 스톤리 거리에 그려 2021~2022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에 오른 춘천 출신 손흥민(30·토트넘)의 벽화가 영국 런던에 등장했다. 토트넘 소식을 전하는 스퍼스웹 등은...
‘세계수영선수권 銀’ 황선우 포상금 3천만원 받아
강원FC, 성남 제물로 ‘원정 첫 승' 노린다
강원도민프로구단 강원FC가 올 시즌 첫 원정 승리를 노린다.강원은 2일 오후 8시 경기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성남FC와의 ‘하나원큐 K리그1 2022' 19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맞대결을 펼친다. 이번 시즌 ...
평창평화장사씨름대회 개최
도교육청·춘천시체육회 ‘U18 축구팀' 공식 창단
강원사대부고 사격부 전국대회 준우승·동메달
장하나 평창 용평서 시즌 첫 우승 도전
도장애인체육회-태국장애인체육협회 국제교류
“레이스 운영 만족…체력적인 면 보완할 것”
'2골 2도움 맹활약' 강원FC 김대원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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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미스코리아 강원 진(眞) 우혜민(강릉)·선(善) 변한나(춘천)·미(美) 김현진(횡성)
창간 77주년을 맞은 강원일보사와 글로벌E&B가 지난 30일 고성종합체육관 특설무대에서 공동으로 마련한 ‘2022 미스코리아 강원대표 선발대회'에서 우혜민(20·강릉)씨가 ‘미스강원 진(眞)'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이어 미스강원 선(善)은 변한나(27·춘천)씨, 미(美)는 김현진(24·횡성)씨가 각각 차지했다. 또 미스고성에 이혜정(24·고성)씨, 미스강원일보에 조희주(24·동해)씨가 선발됐다. 우정상은 김지영(23·원주)씨, 포토제닉상은 최보라(25·태백)씨에게 돌아갔다. 인기상은 송유진(28·강릉)씨가 받았다.고성군이 후원하고 하이트진로와 소노호텔·리조트가 협찬한 이날 선발대회는 함명준 고성군수와 최병수 강원일보 전무이사, 심사위원장인 권순성 한림대 의대 교수, 송흥복 고성군의원, 김흥선 고성군체육회장, 이정민 미스코리아 녹원회 회장, 지역주민 등이 참석해 강원 미사절단 탄생을 축하했다. 이날 수상의 영예를 안은 2022 미스강원 진·선·미는 올 10월께 열리는 2022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도 대표로 참가한다.고성=허남윤·권원근기자
강원의 아름다움 17色 매력에 반하다
2022 미스강원 선발대회◇지난 30일 고성종합체육관 특설무대에서 열린 2022미스코리아 강원대표 선발대회에서 후보들이 각자의 매력을 표출하고 있다.고성=신세희기자지성과 끼, 재능을 갖춘 17명의 강원 미녀가 꾸미는 미(美)의 향연이 ‘평화의 관문' 고성에서 화려하게 펼쳐졌다.지난 30일 고성종합체육관 특설무대에서 열린 ‘2022 미스코리아 강원대표 선발대회'가 2년 만에 관중이 꽉 들어찬 상태에서 치러져 볼거리가 더욱 풍성하게 마련됐다.1963년 1회 대회 이후 강원의 아름다움을 대표할 58번째 미의 사절단에 어떤 후보가 포함될지 궁금해하는 주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대회 시작과 함께 코미디언 이용식씨와 2016년 미스강원 진(眞) 김해현 앵커가 17명의 미스강원 후보를 차례로 소개했다. 후보들이 사전에 자신을 표현한 개성 있는 단어들의 호명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자 관중석에서는 응원의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특히 17명의 후보가 갈고닦은 끼와 재능을 발산하는 장기자랑 무대를 선보이자 관객석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참가번호 10번 김수지, 12번 박예림씨의 가야금과 한국무용이 어우러진 무대로 시작한 장기자랑 무대에서는 19번 김현진씨가 ‘오페라의 유령' 아리아를 들려줘 눈길을 끌었다. 이어 4번 송유진, 6번 강지원, 11번 김지영, 13번 김유경, 15번 이혜정, 17번 김민정, 20번 배주희씨가 치어리딩을 하며 매력을 발산했고 5번 조희주, 9번 우혜민, 14번 문지수, 18번 변한나씨가 드림걸즈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박수를 받았다. 또 8번 최보라씨가 현대무용을 스트리트 댄스로 재해석한 춤 ‘BAD'(배드)로 시선을 사로잡았고, 7번 김라희, 16번 임나연씨는 케이팝 댄스를 선보이며 장기자랑의 대미를 장식했다.이날 후보들은 평상복 심사와 인성·교양을 평가하는 인터뷰 심사를 거쳤고, 관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발산했다. 합숙을 통해 우정을 쌓은 후보들은 대회가 끝난 뒤에도 결과에 관계없이 서로를 격려하고 축하하며 촬영을 하는 등 돈독한 우정을 과시했다.올해 대회의 초대가수로는 ‘트롯신이떴다2-라스트 찬스' 최종 2위에 오른 트로트 가수 나상도가 재치 있는 입담과 열창으로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어 걸그룹 ‘핑크블링(Pink-bling)'의 화려한 퍼포먼스가 이어지며 뜨거운 열기 속에 대회가 진행됐다.대회 심사위원장을 맡은 권순성 한림대 의과대 교수는 “맑은 공기와 청정 해역의 고성에서 지성과 미모를 갖춘 강원 대표 미인들이 탄생했다. 전 세계인에게 강원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전령사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한편 올해 대회는 이달 초순께 LG헬로비전 채널을 통해 도내 전역으로 녹화 중계될 예정이다.
“MC·심사·멘토로 함께…강원의 美사절단 자부심 응원”
강원의 아름다움을 뽐냈던 미스강원 진(眞)·선(善)·미(美)가 후배들을 응원하기 위해 고성을 찾았다.역대 수상자들은 지난 30일 ‘2022 미스코리아 강원대표 선발대회'가 열린 고성종합체육관을 찾아 MC로, 심사위원으로, 멘토로 힘을 보탰다. 특히 올해 후배들에게 왕관을 전해주기 위해 달려온 지난해 수상자들은 여전히 떨림이 가시지 않는 듯 후배들에게 힘내라고 격려했다.2021년 진 전조은(26)씨는 “고된 일정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후배들을 존경하며 앞으로도 강원도를 알리는데 더욱 힘 써 달라”고 응원했다. 물류학을 전공한 전조은씨는 사업 구상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공연기획 전문가를 준비하고 있는 2021년 선 권도은(26)씨는 “더 진취적인 사람으로 성장하는 기회에 도전한 후배들이 자랑스럽다”고 격려했다. 같은 해 미 수상자로, 플라이강원 승무원으로 근무하는 서은수(27)씨는 “올해는 거리두기가 해제된 만큼 후배들이 더 왕성한 활동을 통해 본선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겼다.라이브커머스 쇼호스트와 프리랜서 모델로 활동하는 2020년 진 박혜지(27)씨는 올해 심사위원으로 후배들을 살폈다. 박씨는 “수상 여부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꾸준히 개척하는 후배들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2000년 진 허민정(41)씨는 2008년부터 후보자들의 워킹·포즈·시선 처리 등 다양한 교육을 맡고 있는 터줏대감. 올해도 변함없이 후배이자 제자인 후보들의 교육을 총괄했다.올해 대회 진행을 맡은 2016년 진 김해현씨는 ‘일립시스'라는 패션 브랜드를 론칭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해현씨와 함께 MC로 올해 대회를 이끈 코미디언 이용식씨는 이날 무대에 올라 ‘둥지'를 멋지게 부르며 알려지지 않은 초대가수(?)로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이씨는 “많은 사람이 다음 생을 산다면 10명 중 9명이 강원도를 선택할 것”이라며 “강원의 미를 알리는 대제전에 초대받은 것은 영광이자 축복과도 같다”며 강원도 사랑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신형철이 만난 사람]정회철 “변호사보다 술 만드는게 더 매력적…전통주 세계화 이룰 것”
강우현 "젊은이들과 소통하려 양식 조리사 공부 세대를 맞춰야 살아남아"
한류열풍의 주역인 드라마 ‘겨울연가'의 주 무대였던 춘천 ‘남이섬'은 2000년대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지였다. 남이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주역은 강우현 탐나라상상그룹 대표이사다. 강우현 대표이사는 현재 제주와 함께 춘천의 강촌 발전을 위해 쉴 새 없이 동분서주(東奔西走)하고 있다. 제주에 살면서 틈날 때마다 강촌을 찾아 주민들과 함께 지역 발전 방법을 모색하는 강우현 대표이사를 지난해 말 마을공방 및 전시관으로 활용되는 구(舊) 강촌역사에서 만났다. 코로나19 이후 경제 변화와 각종 아이디어의 원천 등 다양한 대화를 나눴다. ■매우 바쁘실 텐데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즘은 제주에서 탐나라공화국 오픈을 준비 중이다. 당초 2021년 4월30일 오픈하려고 했는데 코로나19에 따라 임시 휴장 중이고 2022년 2월 말까지 다시 업그레이드를 준비 중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에 따른 변화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코로나가 오면서 우리의 일상은 15년 정도 후퇴했다. 반면 과학기술은 15년 앞서갔다. 30년의 진공상태를 살아가고 있다. 그 속에서 코로나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만일 코로나가 끝나게 된다면 15년 앞지른 과학기술과 15년 후퇴한 일상이 겹치면서 엄청난 혼란이 올 것이다. 이미 이런 혼란은 시작됐다. 짜장면을 시켜도 배달료를 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이전에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변화다. 메타버스 이야기를 하는데 메타버스 시대는 이미 절반이 와 있다. 변화가 있을 때에는 관광의 경우 그에 맞는 새로운 여행지를 선보여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제주 탐나라상상공화국의 업그레이드를 진행중이다.” ■‘나라'라는 단어를 쓰게 된 이유가 있다면=“누구든 어떤 자유로운 세계, 동화의 세계, 마음속에 꿈꾸는 세계가 있다. 남이섬을 남이나라공화국로 바꾸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그냥 남이섬은 유원지나 관광지다. 다른 곳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남이나라공화국으로 바꾸면 일단 신비로운 세계가 된다. ‘나라'라는 것이 되니까. 전 세계 130여개국 관광객이 찾더라도 남이나라에서는 대응이 가능하다. 국제적인 커뮤니티 형성이 된다는 것이다. 여느 관광지와는 차별화된 점이 있다. 외국에 홍보할 때 ‘남이 아일랜드 코리아'라고 했다. 한국의 대표로 삼았고 결국 브랜드화 됐다.” ■현재 제주에 있는데 어떻게 갔는지=“과거 어떤 분이 제주 탐나라 공화국 지역에 사업을 하겠다고 승인을 받았지만 황무지라 포기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는 지인이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다. 처음엔 나도 못하겠더라. 그러다가 중국관광객이 몰리면서 중국인이 매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때가 2014년 정도인데 중국인에게 팔면 중국땅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남이섬 관광객이 330만명을 넘기기도 해서 이듬해 제주도로 가게 됐다.” ■그런 결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당시 주변에서 다 말렸다. 실제 제주도에 테마파크가 200여개나 있는데 무슨 수로 하려고 하냐는 반대가 많았다. 현장을 찾는 순간 ‘황무지'를 ‘단무지'로 10년 내로 바꾸겠다고 했다. 지금 8년 차, 내년(2022년)이 9년 차다. 2024년 2월21일이 10년이 된다.” ■항상 아이디어가 넘쳐난다=“관에서 하는 것, 국가가 하는 것, 공공기관에서 하는 것이 실패하는 이유가 있다. 성공하지 못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돈이 있고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돈 떨어지고 사람이 없고 시간이 없어 안 된다고 한다. 그러면 안 된다. 궁즉통(窮則通)이다. 궁하면 통한다. 궁하기 때문에 아이디어가 나온다.” ■강촌 발전에 앞장서시는데 어떤 인연인지=“예전에 춘천시장이 제주로 찾아와 춘천 관광 좀 살리자고 해 강촌과 인연을 맺었다. 강촌을 살리기 위해서는 춘천시가 아닌 주민들이 먼저 앞장서야 한다고 했다. 주민들에게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지역 살리기를 하자고 설득했다. 그래서 먼저 시작한 것이 집안 청소, 바깥 청소, 꽃 심기 등이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섰고 교육을 진행하면서 브랜드 특성화로 화분을 만들고 있다. 무엇을 심을지 고민하다 ‘질경이'를 선택했다. 어떻게든 살아남는 질경이 정신을 갖자고 해서 질경이 화분을 만들었고 강촌의 특화상품으로 내세우고 있다. 최근의 모든 일은 주민들이 다 자발적으로 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강우현 대표이사는 요즘 양식 조리사 자격증 공부 중이라고 설명했다. 양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양식을 좋아하는 요즘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이 시대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라고 했다. “변화에 앞장서는 강촌이 그런 점에서 나와 맞는다. 그렇기 때문에 강촌은 이제 저절로 좋아질 것이다. 과거 닭볶음탕을 먹던 젊은이들이 이제 50대 이상이 됐다. 30~40대는 전혀 다른 음식을 먹고 있다. 그렇다면 전혀 다른 아이디어가 나와야 한다. 그걸 맞춘다면 강촌은 다시 30년을 간다. 세대를 맞춰야 한다.” ■코로나가 다시 기승이다=“코로나가 당장 끝나기는 어려울 것이라 전망된다. 이대로 갈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코로나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계속 어렵다. 코로나를 헤치고 가는 사람만 살아남을 것이다. 코로나가 있거나 없거나 또는 코로나가 있더라도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있는데 더 대비한 사람들이다.” ■한때 위드 코로나도 거론됐는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마스크만 벗으면 잘될 것으로 아는데 잠시 편한 것뿐이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준비된 자에게 길이 열릴 것이다. 그렇다면 코로나가 끝날 때를 대비해서 무엇을 했는가. 공부를 했느냐 준비를 했느냐 그 말이다. 나쁜 얘기를 하면 살기 어려울 수도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심화될 수 있다. 끝나기 전에 대비해서 준비해야 한다.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우리가 어려운 이유는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으면서 ‘내일은 좋아질 거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침에 벌떡 일어나 이불을 걷고 창문을 열어야 공기가 들어온다. 게을러서는 안 되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 코로나를 극복한다고 세상이 좋아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전에도 그렇게 좋지 않았다. 나쁜데서 더 나빠졌을 뿐이다. 그렇다면 다시 나쁜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장년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린다=“내가 잘한다고 믿는 부분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라고 하고 싶다. 내가 잘하는 부분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많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잘하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더 잘할 수 있는 노력에 대해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그걸 버리고 올라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때다. 그래야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다. 어제는 없고 내일은 모른다. 그래서 오늘에 충실하는 점에서 오늘 내가 나를 바꾸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강우현 대표이사는 2000년 12월 남이섬에서 1주일간 머물다 당시 남이섬 대표와 가수 고(故) 이동원(인터뷰 전날 작고)씨 등과 만나면서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 됐다. 강우현 대표이사가 섬을 맡은 첫해 입장객은 27만5,000명이었고 14년 뒤에는 330만명으로 늘었다. 현재 남이섬 부회장과 함께 2015년부터는 제주 탐나라상상그룹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경제부장
신형철이 만난 사람-춘천 출신 허희영 한국항공대 총장
코로나19로 2년간 전 세계 모든 산업이 타격을 받았다. 그중 가장 심각한 곳은 항공 및 여행 분야다. 명절 연휴와 휴가 시즌이면 해외 여행을 하려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던 인천국제공항의 모습은 어느새 추억이 돼 버렸다. 항공산업 위축은 관련 산업의 하락으로 직결됐다. 국내 항공 관련 인력 공급에 가장 앞장선 한국항공대도 마찬가지. 항공산업이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한국항공대 총장에 춘천 출신 허희영 경영학부 교수가 취임했다. 지난 19일 한국항공대에서 허희영 총장을 만나 코로나19를 전후한 국내 및 강원도 항공산업과 함께 강원도 청년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취임을 축하한다. 소감부터 말해달라=“1976년 춘천고를 졸업한 이후 줄곧 고향을 떠나 있었지만 늘 강원도와 춘천을 잊지 않았다. 강원도 출신에 자긍심을 느끼고 살아왔고 그래서 늘 고마움이 있다. 고향에 신세를 지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최근 누리호가 발사됐고 UAM(도심항공교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고향의 유력 언론과 인터뷰를 하게 돼 기쁘다. 또 올해가 한국항공대 개교 70주년이 되는 해다. 인터뷰를 통해 고향의 학생들에게 한국항공대를 적극 알리고 싶다.” ■한국항공대를 소개한다면=“한국항공대는 대한민국 민간항공의 역사 그 자체다. 6·25전쟁 중이던 1952년 조종사와 정비사 양성을 목적으로 부산에서 개교했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많은 민간조종사를 배출했다. 졸업생들이 항공관제사와 운항관리사, 정비사 분야에서 전문직으로 종사하고 있다.” ■총장으로서 목표가 있을 것 같다=“항공대 총장 선출 방식은 특이하다. 공고 후 지원, 발전 계획 발표 절차가 있다. 재단과 학생 및 구성원 등의 투표 절차도 있다. 그리고 총장추천위원회가 두명의 후보를 올리면 재단 이사회에서 결선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대학의 발전 계획을 세세하게 외우고 발표해야 한다. 미국 방식이다. 총장 후보로서 ‘비전2025'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임기 중 신입생 성적을 수도권대학 20% 이내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전국 대학평판도 20위 이내, 취업률 80% 이상 달성 등을 통해 전통 명문대학의 재건을 발표했다. 국제적으로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항공우주대학을 목표로 한다.” ■대학 자체가 위기다. 극복 방안이 있는가=“앞으로 대학은 고객 지향적으로 변해야 한다. 학령인구가 줄어 대학 정원이 더 많다. 고객의 선택을 받아야 생존한다. 치열하게 마케팅을 해야 한다. 대학 총장은 CEO 역할을 해야 한다. CEO로서 고객이 만족하는 상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대학도 마찬가지다. 마케팅 지향적이어야 한다. 사립대는 더욱이 등록금을 받아 운영한다. 그동안 학생들이 대학을 선택하고 입학하면 을의 입장이 된다. 그것을 깨는 것이 혁신이다. 항공대를 알리기 위해 대학 홍보 영상을 제작했다. 좋은 대학인 한국항공대가 입학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우주경제를 이끌 인프라 투자를 주창하는 걸로 알고 있다. 이유는=“우주경제는 항공과 분리된 새로운 영역이다. 우주산업은 인공위성과 발사체, 데이터 활용, 지상장비 등으로 구성된다. 이 중 인공위성이 보내는 데이터를 활용한 산업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위성인터넷과 GPS 내비게이션 등이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2000년대를 기준으로 뉴 스페이스 시대로 구분된다. 정부는 인프라에 투자하고 민간 자본이 우주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항공업계가 전망하는 코로나19 회복 시기는 언제쯤인가=“항공업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최근 데이터를 내놨다. 2024년이 돼야 2019년 수준으로 회복된다는 것이다. 올해도 어렵고 내년도 어렵겠지만 서서히 회복 될 것이다. 완전 회복은 2024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오미크론 등 불확실성과 변수가 등장하고 있지만 서서히 회복될 것으로 본다. 항공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트래블 버블(Travel Bubble)이다. 오미크론 확산 전까지 운용됐다가 중단됐지만 앞으로 다시 시작될 것으로 본다. 미국의 경우 국내선은 많이 회복됐다. 우리나라도 하나하나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 이 대목에서 허희영 총장은 한국항공대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덧붙였다. “코로나19 이후 항공 관련 대학의 인기가 시들하다. 하지만 지금이 기회다. 지금 입학하면 5~6년 뒤에는 좋아질 것이다. 학생들이 불안해하지만 남학생의 경우 군대를 제대하고 졸업하면 항공산업은 회복된다. 시장의 구조조정과 세대교체가 진행 중이지만 앞으로 빠르게 정상화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지역 관련 질문이다. 양양국제공항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가=“김포와 제주, 김해공항 등을 제외하면 전국 15개 지방공항 중 12개 공항이 재정난에 빠져 있다. 양양공항의 활성화는 코로나19가 가라앉으면 회복될 것으로 본다. 장기적으로는 지역의 인프라 자산으로서 역할을 충분히 할 것으로 기대한다. 2002년 개항 후 20여년간 국제공항의 역할을 못 했지만 잠재수요가 확대돼 코로나19 이후 관광수요가 회복되면서 이용률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장기적으로 남북교류 시대에는 중요한 항공교통 인프라가 된다.” ■강원도 LCC ‘플라이강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취항을 시작하자마자 코로나를 맞은 게 안타깝다. 그러나 항공운송업은 감염병뿐만 아니라 환율, 유가, 경기변동처럼 외부 변수의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이다. 경영을 잘해도 어쩔 수 없이 환경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 지금은 위기를 버티는 체력이 필요하다. 체력은 곧 자금력을 뜻한다. 항공업계 모두가 고전 중이다. 더욱이 지금 국내 LCC 시장은 9개 항공사가 경쟁하는 공급 과잉으로 과도기적인 상황이다. 수요가 회복될 때를 대비해 차별화 전략과 원가 우위 전략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노선과 마케팅 측면의 차별화가 유리할 것으로 본다.” ■강원도는 도심교통항공(UAM)등 미래 산업에 관심이 높다.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현재 조금 앞서나간 점이 있지만 앞으로 10년 뒤인 2030년 이후에는 상용화 가능성이 높다. UAM 택시가 다니는 시대가 되면 항공의 역할은 전혀 달라진다. 강원도는 드론과 UAM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UAM은 교통에 활용되는데 산불감시 등 다양한 부분에서 활용도가 높다. 강원도는 UAM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고향의 청년들에게 한말씀 해 달라=“지금의 어려움은 모든 청년에게 공통적이다. 10년, 20년 후의 다음 세대를 어떻게 살 것인가는 가치 있는 고민이다. 새로운 것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의 흐름을 따르는 밴드웨건을 경계해야 한다. 지금까지 낙후된 점이 강원도가 가진 미래의 성장 잠재력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와 자치단체에서 육성하고 지원하는 정책에 관심을 갖기 바란다.” ■허희영 총장은= 허희영 총장은 춘천 출신이다. 춘천고와 한국항공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 객원교수, 한국항공경영학회 초대회장, 한국·몽골경상학회장, 한국관광학회 부회장, 항공대 경영대학원장, 한국항공대 CEO아카데미 원장 등을 역임했다. 경제부장
[강원의맛·지역의멋]고택에 열린 꽃잔치 그 향기에 취함을 '許'하라
조선시대 천재문인 남매 자라난 명소 매화·벚꽃·백일홍 늦여름까지 만발 출사·산책 즐기러 관광객 연인 몰려 집은 강릉땅 돌 쌓인 갯가에 있어/ 문 앞의 강물에다 비단옷 빨았지요/ 아침이면 한가롭게 목란배 매놓고/ 짝지어 나는 원앙 부럽게 바라봤죠(허난설헌의 시 죽지사:사랑의 노래 중) 허난설헌의 시 죽지사에 나온 그 강릉땅 집이 있는 곳. 강릉시 초당동에 위치한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과 최고의 여류 문인으로 인정받은 허난설헌 두 오누이의 생가터가 지금도 건재하다. 특히 생가터에는 매년 2월이면 이른 매화가 피어 봄눈이 많은 강릉에서 사진작가들에게 설중매를 찍는 명소로도 알려져 있다. 매화뿐이랴. 개나리, 벚꽃, 진달래, 철쭉, 능소화, 백일홍 등 늦은 여름까지 꽃이 지지 않는다. 특히 4월 벚꽃이 필 무렵 이곳은 온통 꽃밭이다. 눈 닿는 곳마다 꽃이 흐드러지도록 넘치게 피어난다. 그 꽃이 쭉 뻗은 소나무 아래로 화사하게 드러나며 붉고 푸른, 녹색과 갈색의 바탕지 위에 원색의 빛깔이 뭉게뭉게 피어난다, 그래서 어떤 사진을 찍어도 아름답다. 꽃 같다, 주인공 같다. 결혼을 앞둔 연인들이 셀프웨딩사진을 찍기 위해 많이 찾고, 친구들도 가족들도 이곳에 와서 사진을 찍으며 행복한 한때를 담아간다. 생가터를 벗어나 초당솔숲으로 가면 쭉 뻗은 소나무에 반한다. 초당솔숲을 벗어나면 육지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물길이 보이고 그 길따라 걷다 보면 경포호수를 만날 수 있다. 가족끼리 소풍 오기에도 좋고 밥을 먹고 산책 나서기에도 좋다. 강릉 여행 일정 중 다만 30여분이라도 시간이 난다면 꼭 들러보길 바란다. 강릉의 자연과 역사와 풍광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명소다. 주변에 초당두부로 유명한 두부마을도 있고 최근에 개관한 국내 최대 몰입형 미디어아트전시관 아르떼뮤지엄도 5분 거리에 있다. 강릉의 3대 커피명소인 보헤미안, 테라로사, 커피커퍼 커피숍도 인근에 있으며 신흥 커피맛집으로 알려진 툇마루커피, 초당정미소 옥수수 커피 본점도 인근에 있다. 조상원기자 / 편집=이화준기자
[강원의맛·지역의멋]봄날, 그 간이역엔 사람 대신 꽃비가 내렸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느낌을 주는 간이역이 있다. 지금은 문을 닫은 반곡역이다. 고목에 둘러싸여 시골역의 정취를 자아내는 반곡역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오르는 원주 대표 벚꽃 명소 중 한 곳이다. 1941년 문을 연 반곡역은 근대 서양 목조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어 2005년 등록문화재 제165호로 지정됐다. 반곡역 역사는 당시의 역사 건물 구조와 근대기에 수입된 서양 목조건축 기술을 알 수 있어 철도사적·건축적·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이다. 유난히 높은 박공지붕과 비 등을 피하도록 연장한 철로 쪽 지붕이 특색 있다.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모습이지만 일제강점기 시대 문을 연 만큼 가슴 아픈 역사를 품고 있기도 하다. 일제가 자원 수탈 목적으로 동경선(현 중앙선) 철도를 놓던 당시 벌목 운송 등 광산·임산·농산물 반출을 목적으로 설치된 역이기 때문이다. 또 6·25전쟁 때는 인민군이 장악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를 간직했다는 특수성을 모티브로 해 갤러리, 소공원 등으로 꾸며진 반곡역 일대는 전국 최고의 공공디자인 사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반곡역은 1974년 소화물 취급을 중단했으며 이용객이 적어 2007년 6월에는 여객 취급도 중단했다. 하지만 강원원주혁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출퇴근 이용객을 위해 2014년 다시 영업을 시작했다가 중앙선 이설과 함께 2021년 1월 완전히 문을 닫았다. 반곡역의 4월은 유난히도 아름답다. 승객들로 북적이던 모습은 이제 사라졌지만 지금도 수십년 된 벚꽃나무는 여전히 꽃을 피우고 역사와 고목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봄을 만끽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원주시는 2026년까지 반곡·금대지역 관광활성화 사업을 통해 반곡역을 반곡 파빌리온 스퀘어로 탈바꿈시킨다는 방침이다. 철도역사와 문화를 담은 신개념의 감성 테마파크다. 반곡역을 중심으로 반곡역사문화 갤러리, 철도차량 상설전시관, 관광열차 스테이션, 플라워가든, 중앙광장, 체험장 및 판매시설 등을 갖추고 수목원과 억새군락, 가족단위 피크닉장 등으로 구성된 파빌리온 스퀘어도 생긴다. 반곡역부터 금교역, 금대스테이션 구간에는 관광열차도 운행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원주시가 구상 중인 치악산 바람숲길의 종점도 반곡역으로 계획됐다. 치악산 바람숲길 사업은 원주 우산동 한라비발디아파트부터 반곡역까지 중앙선 폐선 11.4㎞를 숲길, 자전거도로, 산책로로 조성하는 사업으로 올해 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설영기자 / 편집=이화준기자
[강원의맛·지역의멋]시장 한복판서 웃고 떠드는 장돌뱅이 허생원을 만나다
400년 역사 이어온 전통 5일장 이효석 단편 ‘메밀꽃 필 무렵' 배경 허생원 단골 주막 ‘충주집' 반기고 담담하고 슴슴한 메밀 맛 향연 장터 한바퀴, 소설을 거닌 듯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 그의 말이 귓가에 맴돌아 꽃 대신 햇메밀 빻는 냄새가 가득한 계절, 마치 하늘과 이어질 듯한 메밀밭의 산허리를 오른다. 허생원이 나타날 것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소설 같은 봉평장의 한 페이지를 넘긴다. 걸음마다 소설 속 문장에 스며 있는 고아한 메밀꽃 향기를 곱씹어 본다. 이곳은 어느새 허생원과 조선달이 웃고 떠드는 시장 한복판이다.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으로 유명한 봉평장은 조선시대부터 400년 역사를 이어온 5일장이다. 소설의 주요 배경답게 봉평장에선 그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시장 중심에는 나귀를 이끌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허생원과 조선달, 동이 조형물이 자리하고, 구석에는 허생원의 단골 주막 ‘충주집 터'가 있다. 허생원이 충주댁과 농탕치는 동이에게 야단을 치던 장면을 상상하며 ‘충주집 터'를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봉평시장을 ‘메밀꽃 필 무렵'의 공간으로 완성시키는 것은 긴 시간 자리를 지켜온 ‘장돌뱅이' 상인들이다. 장을 중심으로 삶을 꾸려 가고, 좌절하고, 사랑한 허생원처럼 봉평장에는 장을 터전 삼아 살아온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40년 동안 한자리에서 나물을 팔아온 현산옥(여·80)씨도 그중 한 명이다. 보따리, 배낭을 주렁주렁 메고 홀로 횡성과 봉평을 오간 지가 벌써 40년이다. 그 옆으론 직접 20m 나무를 타서 잣을 따고, 산을 헤매 삼을 캔다는 장국현(52)씨가 임산물을 판다. 또 한쪽으론 42세부터 남편과 과일이며, 즉석과자며, 채소를 팔아 1남3녀를 키웠다는 김순영(여·84)씨가 떠나보낸 ‘바깥양반'을 회상하고, 엿장수 이강일(71)씨가 전국 축제 야시장을 돌다 봉평장에 자리 잡은 이야기를 전한다. 무거운 짐을 매일 싸고 푸는 일을 반복하며 굳건하게 삶을 지탱해 온 장돌뱅이들의 면면은 척박한 땅에서도 꽃을 틔우는 메밀을 닮았다. 물, 흙이 없어도 굳건히 자라 지역민들을 먹여 살리던 메밀은 이제 봉평장의 상징이 됐다. 슴슴한 메밀 막국수며 전, 전병, 묵, 찐빵, 뻥튀기, 심지어 닭강정에까지 들어간 메밀은 보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뿐 아니라 고소한 맛으로 입맛까지 휘어잡는다. 1957년 현대화돼 지역상권의 한 축을 담당했던 봉평장은 산업화 이후 여느 시장들처럼 쇠락의 길을 걸었다. 2013년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를 통해 재정비 과정을 거친 뒤 현재는 관광명소가 됐다. 봉평장을 빠져나오는 길, ‘여울목'과 ‘노루목 고개'를 지났다. 지금은 다리가 놓이고 도로가 닦여 시시한 개울, 언덕일 뿐이지만, 소설 속 허생원은 힘겹게 걸으며 세월의 무게를 느낀 길일 터다. 이 겨울, 산허리 온통 흐드러진 메밀꽃 대신 새하얀 눈이 반기는 봉평장을 찾아 장돌뱅이들의 삶을 엿보는 건 어떨까.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라는 허생원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둘러보는 봉평장에서 ‘나무꾼 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는' 풍경을 보기도 하고,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를 손에 잡힐 듯 들어'보는 행운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미토팀=김현아·이현정·박서화기자/편집=이왕란기자
[메트로폴리탄 뉴욕]160년 역사 美 최초 인공공원…계층·인종 넘어선 화합의 상징
맨해튼섬 한가운데 위치 뉴욕의 심장 19세기부터 공원내 엄격한 규율 지켜져 계층·종교·인종간 갈등 폭력 크게 줄어 존 레논 거주한 다코타 아파트부터 뉴욕 최고 호텔 등 세계적 명소 밀집 연인·가족들 운동 즐기며 쉼 공간 길거리 아티스트 즉석 공연 펼쳐 자유로움 넘어 평화로움 온몸으로 만끽 센트럴파크는 말 그대로 뉴욕의 심장이다. 맨해튼 섬의 한가운데 북쪽으로 자리한 위치도 사람으로 치면 딱 심장 또는 허파의 위치와 비슷하다. 남북 4.1㎞, 동서 0.83㎞ 직사각형으로 면적 3.41㎢인 도시공원 센트럴파크는 오래전 원주민이 살던 당시 맨해튼 섬의 숨결을 들려주듯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평화로이 풀밭에 누워 담소하는 연인, 뛰어노는 아이들, 반려견과 함께한 가족들, 풀밭 요가를 즐기는 요가족, 파크 내부 순환로를 달리는 사이클러, 숲 사이를 뛰어다니는 조거, 호숫가 산책로를 걷거나 보트를 즐기는 사람들, 산책로 옆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 즉석 공연을 펼치는 길거리 아티스트. 뉴욕의 자유로움과 평화로움이 그대로 느껴지는 그야말로 뉴욕의 랜드마크 오브 랜드마크라 할 만하다. 센트럴파크는 옛날 맨해튼 섬의 자연 모습 그대로가 간직된 천연공원은 아니다. 1857~1860년 사이에 만들어진 미국 최초의 인공 도시공원이다. 당시만 해도 미드타운 42번 스트리트 위쪽으로는 거의 거주가 이뤄지지 않는 상태여서 버려진 땅 취급을 받던 곳을 도시 환경 개선 목적으로 시 차원의 거대 투자가 이뤄져 만들어졌다. 1857년 조경가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와 복스(Calvert Vaux)가 공동 제안한 디자인이 당선되면서 공사가 시작됐고, 더 살기 좋은 뉴욕을 만들자는 건설팀의 취지가 시민들의 격한 공감을 받으며 전 시민적 프로젝트로 추진돼 이뤄졌다. 19세기 중반 뉴욕은 계층, 종교, 인종, 정치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분열돼 있었다고 한다. 기득권 상위층과 비주류 하위층 사이의 갈등이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처럼 늘 불안하게 잠재해 있었다. 당시 센트럴파크 일대는 넝마주이 등 맨해튼 섬의 최하 계층이 돼지나 염소를 치며 모여 사는 빈민지구로 암벽과 늪지대로 이뤄진 험지로 사람이 거주하기 너무 척박해 내버려진 땅이었다. 공원 디자인 공모에 당선된 옴스테드는 이 거대한 공원을 분열된 계층간 화합의 공간으로 만들어 보자는 꿈을 가지고 시 당국과 긴밀히 협업했다고 한다. 공원 내에서 지켜야 할 규율을 만들어 지키게 하고, 경찰 인력들이 상주해 규제한 결과 적어도 공원 내에서만큼은 폭력과 갈등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지금의 공원은 당시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거대한 나무, 자갈길, 연극 마당 등 일부 흔적이 남아있다. 공원이 조성된 후에는 부유층, 빈민층 할 것 없이 함께 하는 뉴욕의 놀이명소가 됐는데, 여름에는 야외 공연, 겨울에는 스케이팅 등 다양한 행사가 개최됐고, 놀이에 참여하는 사람, 단순히 구경하는 사람 너나 할 것 없이 뉴욕시민 모두가 모여 즐기는 공간으로 자리 잡게됐다. 센트럴파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하나 있는데, 전설적인 비틀스 멤버 존 레논이 살았던 다코타(Dakota) 아파트다. 파크 서쪽 72번가에 있는 대형 아파트로 최근 지어진 것 같이 생겼지만 실은 1884년에 지어진 아주 오래된 아파트다. 19세기 당시에도 허허벌판 파크 서쪽에 우뚝 선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아파트였는데, 20세기 들어 존 레논 총격 사망 이후 더 유명해졌다. 센트럴파크 남단 바로 앞의 59번 스트리트는 1985년 플라자합의가 이뤄진 명소로도 유명한 플라자(Plaza) 호텔 등 뉴욕 최고의 호텔들이 밀집해 있는데, 이는 최근의 현상이 아니라 센트럴파크가 조성됐던 오래전 그 시절부터 줄곧 그래 온 것이다. 즉, 예나 지금이나 뉴욕의 최고급 호텔 지구는 센트럴파크 남단 59번 스트리트 부근이다. 파크 북쪽 110번 스트리트를 지나면 할렘지역이 펼쳐진다. 지금은 많이 현대화됐지만 그리 안전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센트럴파크가 할렘과 브롱크스로 이어지는 북부와 중남부 사이에서 일종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줬다고도 볼 수 있다. 필자가 뉴욕에 부임한 지 1주일이 지난 주말에 센트럴파크를 찾았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59번 스트리트에서 길을 건너 어느 곳이 입구인지 한참을 헤맸다. 결국 사람들의 통행이 가장 많은 파크 서쪽 코너 콜럼버스 광장을 통해 들어갔다. 미로처럼 이어진 길을 걷다 보니 작은 숲이 나타나고 다시 걸으니 또 숲이 나타나는데, 마치 미로 찾듯 내부를 가로질러 한참을 북쪽으로 걸었다. 걷다 보니 그 유명한 더몰(The Mall), 베데스타 연못(Bethesda Fountain), 컨서버터리 가든(Conservatory Garden)과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주변 숲이 차례로 나타났다. 북쪽으로 더 걸으니 이쯤이면 파크 북쪽 끝이겠지 할 때쯤 웬 커다란 벽이 하나 나타난다. 알고 보니 파크의 북쪽 끝이 아니라 거대한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저수지(Jacqueline Kennedy Onasis Reservoir) 벽이었다. 지도로 보면 대략 센트럴파크의 중간쯤에 해당한다. 도보로 센트럴파크를 종단하는 사람들은 너무 힘들어서 대부분 이쯤에서 발길을 돌리게 되는데, 필자도 역시 그쯤에서 돌아서게 됐다. 실제 북쪽 끝은 이 저수지를 지나서도 110번가 할렘 초입까지 한참을 더 올라가야 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센트럴파크 내부 순환도로가 일방통행이라는 점이다. 자전거, 마차, 러너 모두 한쪽 방향(시계 반대방향)으로 달린다. 한번은 자전거를 타고 순환도로를 일주하려다 너무 지치는가 싶어 중간쯤 다시 돌아오려 한 적이 있다. 왔던 길로 다시 가려고 핸들을 돌리는 순간 나를 향해 달려오는 수많은 자전거, 러너 행렬에 부딪힐뻔했다. 그 틈을 뚫고 도저히 역주행할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순방향으로 완주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파크 순환도로를 자전거로 달리고자 한다면 1시간 정도 끝까지 갈 것을 각오하고 시작해야 함을 알려주고 싶다. 뉴욕에 살면서도 솔직히 센트럴파크를 자주 가 보지는 못했다. 가더라도 거의 초입부 더몰과 베데스타 연못, 보트하우스, 쉽 메도우(Sheep Meadow) 정도만 계속 갔었던 것 같다. 키 높은 나무들로 빽빽한 더몰과 관광객들로 붐비는 베데스타 연못 주변엔 늘 화가들과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공연한다. 보트하우스는 봄부터 가을 사이 보트를 빌려 탈 수 있고 레스토랑 내부에서 보는 파크의 전경이 매우 아름답다. 대중적인 레스토랑 치곤 음식도 꽤 수준급이다. 파크 내부에 있는 많은 메도우 가운데 초입에 있는 쉽 메도우엔 일광욕과 피크닉을 나온 뉴요커들로 항상 붐비는데, 영화 속 모습과 똑같다. 박물관 부근의 파크는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아늑하여 사랑하는 연인들이 산책하며 속삭이기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When Harry met Sally·1989년)에서 남녀 주인공이 데이트하던 평화로운 파크의 모습 딱 그대로다. 시간이 아주 부족하거나 아침 산책으로 걸을 땐 더몰 쪽으로 좀 들어가다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스트로베리 필드(존레논 추모공간)까지 다녀오는 것도 좋다. 짧지만 길이 아름다워 아침의 파크를 즐기기 제격인 코스다. 이들 관광지 말고도 파크를 제대로 보려면 마음 단단히 먹고 물과 배낭을 챙긴 후 하루를 통째로 보내야 한다. 숲이 크고 나무가 무성해 밤에는 위험할 수 있으므로 안전에도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센트럴파크는 과거에도 살인, 강간 등 많은 사건·사고가 있었고, 여전히 위험 요소가 많은 공간이기 때문에 가급적 파크 내부를 혼자, 특히 밤에 여행하는 건 피했으면 한다. 최재용 한국은행 강원본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뉴욕 핫플의 어제와 오늘]슈퍼리치들이 사랑한 ‘5번가' 지금도 럭셔리 스토어 즐비
5번 애버뉴 1854년부터 개발 상류층 대저택·호텔 밀집 주말마다 다채로운 행사 열려 타임스퀘어·브로드웨이 등 주요 길 찾는 필수 통로 역할 맨해튼의 심장 가로지르는 뉴욕의 대동맥 자리매김 화려한 뉴욕에서 또 가장 화려한 곳을 꼽으라면 제일 먼저 5번 애버뉴를 떠올린다. 5번 애버뉴는 맨해튼을 위에서 아래로 관통하는 12개의 애버뉴 중 가장 가운데 위치한 애버뉴(동쪽이 1번, 서쪽이 12번 애버뉴)로 맨해튼의 최고 중심 도로다. 센트럴파크 남단에서 5번 애버뉴로 접어들면 바로 호텔 플라자(Plaza·1985년 역사적인 ‘플라자 합의'가 성사된 곳)가 보이고, 초고가 백화점 버그도프 굿맨(Bergdorf Goodman), 주얼리 숍 티파니 앤 코(Tiffany & Co)를 필두로 수많은 럭셔리 브랜드가 양 길가로 길게 늘어서 있다. 트럼프 타워(트럼프 가족이 실제 거주하는 곳)를 지나 럭셔리 숍이 좀 뜸해진다 싶으면 세인트 패트릭(St. Patrick) 성당과 록펠러 센터, 삭스 피프스(Saks Fifth) 백화점이 보이고, 다시 더 내려가면 코리아타운 입구를 지나 뉴욕대(NYU) 부근 워싱턴 스퀘어(Washington Square)까지 이어지는 길. 가히 뉴욕의 센터, 한복판이라 할 만하다. 5번 애버뉴는 1834년 당시 저명 인사였던 브레부트家(Brevoort family)가 지금의 5번 애버뉴와 9번 스트리트 사이에 대저택(Georgian mansion)을 지으면서부터 개발되었다. 이 건물이 1854년 상류층 고객을 대상으로 한 브레부트 호텔(Brevoort Hotel)로 개조되고, 상류층만 출입하는 교회(지금도 그대로인 First Presbyterian church 등)가 거리에 들어서면서 더욱 번성하였는데, 의사, 사업가, 금융인 등 상류층 저택들이 5번 애버뉴 주변에 밀집하면서 뉴욕에서 한가락 하는 사람들의 최상류층 주거지역으로 명실공히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특히 남북전쟁이 끝나고 19세기 말 대호황기(Gilded age)에 들어 철도왕 밴더빌트(Vanderbilt), 금융왕 제이피 모건(J.P. Morgan) 같은 슈퍼 리치들이 등장하면서 이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곳도 이곳 5번 애버뉴 일대다. 특히 밴더빌트 패밀리가 살던 대저택이 4곳이나 되었는데, 이들 슈퍼 리치들의 대저택은 개인 파티룸, 극장, 아트 갤러리까지 구비한,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한 초호화주택으로, 작은 성 같은 구조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신축 호텔들에 밀려 그 명성이 예전 같지 않은 월도프 아스토리아(Waldorfs and Astors) 호텔(2014년 중국자본에 매각)도 당시 뉴욕의 양대 거부였던 월도프(Waldorfs)와 아스토리아(Astors) 패밀리를 기념하여 1931년 개축된 5번 애버뉴의 상징과도 같은, 매우 유서 깊은 호텔이다. 뉴욕 최상위 럭셔리 스토어들이 즐비하며, 각양각색 사람들로 늘 붐비는 5번 애버뉴가 지금도 예전과 크게 다를 바는 없지만 다만 슈퍼 리치들이 살던 대저택들이 지금은 모두 상업용으로 개조되어 다른 용도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 과거 5번 애버뉴 주변으로 번창했던 교회들이 이제는 많이 사라져 일부 흔적만 남았다는 점 등이 조금 다르다. 센트럴파크 남단부터 NYU 부근 워싱턴 스퀘어까지 맨해튼의 심장을 가로지르는 5번 애버뉴가 뉴요커들에게 특별히 의미가 있다는 사실은 매 주말 이곳에서 열리는 다채로운 행사만 보아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코로나 이후 뜸해졌다고는 하지만 거의 매 주말 맨해튼의 크고 작은 온갖 행사가 이곳 5번 애버뉴를 중심으로 열리고, 한 해의 주요 시즌마다 행사의 중심에는 항상 5번 애버뉴가 자리한다. 3월 세인트 패트릭(St Patricks day) 페스티벌, 4월 부활절 행사, 6월 성소수자를 위한 프라이드(Pride) 퍼레이드, 9월 핼러윈 퍼레이드, 12월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 등 거의 일년 내내 굵직한 행사들이 5번 애버뉴 일대에서 개최되는 것만 보아도 이곳이 뉴욕의 대동맥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필자가 맨해튼 시내에 살아보니 5번 애버뉴 말고도 맨해튼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각 애버뉴의 특징을 분명히 체감할 수 있었다. 동쪽 이스트강(East River) 강변도로(Franklin D. Roosevelt Drive) 바로 안쪽 1~2번 애버뉴는 대체로 한적한 옛날식 건물이나 오랜 상점이 많고 3번~파크 애버뉴(사이 사이에 렉싱턴, 메디슨 애버뉴가 있다)는 비교적 최근 지어진 고급 오피스 건물과 아파트가 많으며, 5번 애버뉴는 럭셔리 스토어 및 백화점, 상업건물들이, 6번 애버뉴는 다시 대형 오피스 건물과 기관 건물이 많다. 7번 애버뉴부터는 서쪽으로 갈수록 분위기가 관광 모드로 바뀌는데, 타임스퀘어 브로드웨이 주변과 8번 애버뉴까지는 말 그대로 전 세계인의 엔터테인먼트 집합소같이 시끌벅적하고 정신없이 다채로운 공간이 펼쳐진다. 그러다 서쪽 9번 애버뉴쯤 접어들면 분위기가 다시 차분해지면서 주택가가 펼쳐지는데, 중심가에 비해선 훨씬 허름한 옛날식 건물이 많이 보인다. 10번 애버뉴부터는 오래된 상점과 창고, 아파트가 많이 보이는데, 서쪽 허드슨 강(Hudson River) 주변에 이르면 다시 최근 지어진 최고급 아파트와 부대시설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허드슨 강 주변은 맨해튼 내에서 최근 가장 핫해진 곳이기도 한데, 첼시 주변의 과거 정육공장(Meat packing) 부근(13번 스트리트)에서부터 미드타운(34번 스트리트) 서쪽까지 이어지는 과거 폐철도를 관광지로 복원한 하이라인(The High Line·우리나라 청계고가도로 복원사업의 벤치마킹 모델이기도 하다), 미드타운(30~34번 스트리트) 10번과 12번 애버뉴 사이에 청동색 벌집 모양 계단조형물로 최근 건축되어 선풍적 인기를 모으고 있는 허드슨 야즈 베셀(The Vessel, Hudson Yards) 등 핫플레이스들이 속속 이곳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욕의 이 모든 애버뉴의 중심인 5번가는 맨해튼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처음 타임스퀘어나 브로드웨이, 센트럴파크 등을 찾는 길에 필수적으로 마주치는 통로이기도 하다. 과거 뉴욕 초창기 자본주의가 부흥하기 시작하던 시절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중심가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최근에는 온라인 거래가 많아지면서 오프라인 스토어들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아져서인지 그만큼 5번가의 위상도 많이 약해진 듯 보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뉴욕의 한복판 5번 애버뉴가 주는 매력은 뉴욕을 찾는 모든 이에게 시대 초월, 비교 불문한 끌림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시 말해 5번가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은 사람이 뉴욕을 다녀왔다고 하는 건 마치 앙꼬(팥) 없는 찐빵(단팥빵)이 정말 맛있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뭔가 허전한 일이다. 최재용 한국은행 강원본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뉴욕:핫플의 어제와 오늘]‘뮤지컬의 성지' 알고보니 미국 역사의 출발점이었네
뉴욕 초창기 네덜란드 지배 당시거주인 영역 표시 위해 설치했던북벽의 통로서 발단 기원설 유력다운타운서 시작된 엔터테인먼트그 확산의 주된 경로 브로드웨이20세기 이후 연극 극장 등 밀집뉴욕 맨해튼은 생전 처음 가보는 사람도 반나절만 걸어 돌아다니다 보면 대충은 길을 알 수 있을 만큼 길 찾기가 쉽다. 이건 맨해튼 거리가 바둑판처럼 가로(Street), 세로(Avenue) 격자형으로 되어 있기 때문인데, 맨해튼 거리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남북 사선형으로 길게 뻗은 큰길 하나가 눈에 확 띈다. 이게 바로 브로드웨이(Broadway)다. 말 그대로 ‘넓은 길'이다. 처음 타임스퀘어 부근 뮤지컬 극장가에 가서 브로드웨이 표지판을 보고 ‘아, 여기가 뮤지컬로 유명한 그 브로드웨이로구나!' 하고 반가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살면서 보니, 타임스퀘어가 아니라 다운타운 다른 지역을 가도 또 브로드웨이가 나오는 게 아닌가! 나중에야 브로드웨이가 맨해튼의 수많은 거리중 그저 하나를 지칭하는 거리 이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타임스퀘어 뮤지컬 극장가엔 7번 애버뉴와 8번 애버뉴 사이에 샛길처럼 브로드웨이가 있지만,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5번 애버뉴와 6번 애버뉴 사이에, 더 아래로 내려가면 3번 애버뉴와 파크 애버뉴(맨해튼엔 4번 애버뉴가 없다) 사이에 브로드웨이가 있다. 즉, 브로드웨이는 맨해튼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길게 사선으로 뻗친 대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인 것이다.그러면 어떻게 한낱 거리 이름인 브로드웨이가 뉴욕의 그 많은 뮤지컬 극장과 동일시되는 상징어처럼 된 것일까? 그건 짐작대로 뮤지컬 극장 대부분이 브로드웨이 주변에 밀집해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브로드웨이 뮤지컬 극장이 지금처럼 미드타운 타임스퀘어 부근에 밀집하게 된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의 브로드웨이 극장들은 20세기 이후부터 하나둘 생겨난 것이고, 그 이전에는 맨해튼 남쪽 배터리파크 부근, 브로드웨이가 시작하는 지역(브로드웨이 1번지)에 화려한 극장, 식당, 상점들이 더 군집해 있었다. 즉, 뉴욕의 발전은 브로드웨이를 따라 아래로부터 위로 이루어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브로드웨이의 역사는 곧 뉴욕이 성장해 온 발자취라 할 만하다. 이에 잠시 브로드웨이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도 뉴욕을 이해하는데 매우 흥미로운 추적이 될 것 같다.브로드웨이의 기원에 대해선 여러 설이 많은데, 가장 유력한 건 뉴욕 초창기 네덜란드 지배 당시 네덜란드 거주인들의 거주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다운타운 지역에 설치했던 북벽(Wall Street)의 한 통로(남쪽 거주지역과 북쪽 원주민 지역을 잇는)로 큰길을 하나 뚫었던 데서 발단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처음 명칭은 ‘The Principal Street, Principal Road'였는데 영국이 지배하게 되면서부터 ‘Broad Way, Broadway Street, Broadway'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맨해튼의 남쪽 끝 브로드웨이 1번지는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 집무실로 썼던 ‘워싱턴 하우스(Washington House)'가 위치했던 자리로서 지금 미국의 출발점이 된 역사적인 장소다.뉴욕의 역사가 맨해튼 다운타운 지역에서부터 시작된 만큼 연극이나 뮤지컬 등 엔터테인먼트 역시 다운타운에서 시작되어 점차 맨해튼 북쪽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당시 다운타운 브로드웨이 부근에는 엔터테인먼트뿐 아니라 다양한 상업활동이 번성하였는데, 상업활동은 월스트리트 부근에서 계속 번창하여 지금의 금융 1번지, 월스트리트가 되었고 나머지 엔터테인먼트만 북상하였다고 한다. 그 확산의 주된 경로가 바로 브로드웨이였으며 지금처럼 미드타운 타임스퀘어 부근 브로드웨이에 뮤지컬, 연극 극장들이 밀집하게 된 건 20세기에 접어들고 나서부터였다.뉴욕에서 최초로 공연된 연극은 1732년 파커(Farquhar)의 ‘The Recruiting Officer'로 알려져 있다. 당시 영국에서는 극장이 공연장 역할뿐 아니라 어떤 사회적인 이슈가 있을 때 사람들이 모여 데모하는, 일종의 사회운동의 집합소 같은 역할도 하고 있었다. 미국도 이 같은 흐름을 받아들여 극장이 단순히 예술공연만 하는 장소는 아니었다고 한다. 1776년 미국 워싱턴 연합군이 할렘(Harlem Height) 전투에서 영국을 이겼을 때 제일 먼저 발표한 칙령 중 하나도 극장(John Street Theater)을 다시 개관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브로드웨이 극장은 시민들의 자유 정신이 표출되는 의미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던 것이다. 1798년 지금의 다운타운 브로드웨이 부근에 있었던 극장, ‘The Park Theater'의 경우만 해도 객석 수가 2,400개, 소공연 박스가 42개에 달했다고 하니 당시 브로드웨이 극장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19세기에는 다운타운 브로드웨이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극장공연이 활발하였는데, 대표적으로 지금의 이스트 소호(Soho), 즉 맨해튼 동남부 지역에 위치한 보워리 극장(Bowery theater)이 견줄 만했다. 브로드웨이 극장이 보다 세련되고 영국적인 공연이었다면, 보워리 극장은 보다 대중적이고 미국적인, 애국심에 호소하는 공연이었다고 한다. 당시 다운타운 지역에는 상대적으로 고소득층인 영국계 거주민들이 많이 살았고, 남동쪽 이스트 소호 지역은 저소득층인 이주민들이 많이 살아 계층 간 갈등이 심했다고 하는데, 이런 사회경제적 차이가 공연문화의 차이로도 표출된 것이다. 실제 1849년 5월에는 보워리 극장 출신 미국인 배우(Edwin Forrest)의 팬들이 영국인 배우(W.C. Macready)가 공연 중이던 브로드웨이 극장 밖에서 경찰과 충돌하는 바람에 22명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벌어지기도 하였다.최재용 한국은행 강원본부장 / 편집=홍예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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