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신년특집]<단편소설>신춘문예 당선작 '미끼'

김갑수<서울 서초구 반포2동>

“야, 미끼, 떴다!”

떡대의 목소리였다.그의 본명은 언젠가 들어보았지만 이내 잊어버렸다.아무도 그의 본명을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이곳에서 그의 이름은 그저 떡대일 뿐이다.내가 미끼인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곳에서 ‘미끼’다.오해 마시라, ‘삐끼’가 아니고 ‘미끼’다.미끼라는 별명을 왜 갖게 되었는고 하니, 얼굴이 시뻘개져서 나를 불러대는 저 떡대처럼 몸집이 좋다거나, 되게 말랐지만 주먹 하나는 제대로 매워서 홍까시라고 불리는 녀석처럼 생김새 때문이 아니라, 내가 이곳에서 맡은 직책 때문이다.미끼라 함은 다구리를 칠 때 앞에 나서서 미리 맞아주는 역할을 말한다.나는 오성파의 미끼다.오성파라, 뭔가 이름을 붙이면 가오 잡힌다는 주장에 떡대가 나서서 만든 이름이 오성파였다.뭐 어찌됐건 폼 난다는 얘기다.

처음 미끼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나머지 넷은 오랫동안 토론을 벌였지만, 결국 귀찮았으므로 얘기는 자기들이 건드린 여자애들한테로 흘러갔고, 무조건 핑크색인 그녀들의 빤스 색깔로 옮아갔다가, 술기운에 흐느적거리며 그럼 한 번 시켜볼까 쪽으로 흐지부지 결론이 났다.뭐 사실 그들로서는 밑질 게 없었으니까 말이다.그리고 놀랍게도 미끼의 역할은 떡대들의 수입에 꽤 괜찮은 도움을 주게 된 것이다.난 하루에 꼭 오천 원씩만 받아갔다.어떤 날은 서너 명의 지갑에서 백만 원도 넘는 수표 쪼가리들을 털어내기도 했지만 내 몫은 꼭 오천 원이었다.내가 제일 어리고 집이 있으며 학교까지 다니고 있기 때문이란 게 그들이 설명한 이유였다.듣고 보니 그럴듯했다.개 코딱지만한 집도 집은 집이지.내 자존심이 상할까봐 걱정해서인지, 만 원짜리를 깨기가 아까워서인지 늘 오천 원짜리로만 쥐어주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학교생활이란 걸 설명해 보라면, 뭐 그닥 할 말이 없다.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다.그래서 공부 말고 연기란 걸 해본답시고 연극부에 들어갔지만 종종거리며 의자만 날랐다.반에서 거의 유일하게 말을 트고 지냈던 말대가리 짝꿍은 더 이상은 맞기 싫다며 학교를 때려치웠지만, 나는 이제까지 맞은 게 억울하지도 않냐, 좀 더 참아보지 그러냐고 입술을 비틀며 슬그머니 웃던 키 큰 담임에게, 어쩐지 맞는 건 이골이 났으므로 졸업은 해 볼 수 있을 거라며 학교에 남겠다고 하는 말이나, 혹은 에이 씨팔 같은 말은 사실 중얼거려 보지도 못하고 고개만 푹 숙인 채로 앉아 있었더니, 담임은 된장찌개를 시켜 먹을 때 책상에 깔아 놓은 신문지를 둘둘 말아서 내 대굴빡을 세 대 딱딱딱 때린 후에 ‘들어가 인마’ 두 마디를 내 뱉길래, 나도 모르게 꾸벅 인사를 하고 교실로 돌아와 버렸다.그렇게 된 것이다.내가 학교를 계속 다니게 된 게 말이다.왜 담임에게 불려갔는지는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뭐 그렇고 그런 일이겠지.그러므로 그럴싸한 일도 아닐 테고 그러니까 별 건 아닐 거다.

“떴다니까 씨벌놈아!”

떡대는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무척 성격이 급하지만, 썩 나쁜 친구는 아니다.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것에 대해서도 ‘미끼는 보기보다 맷집이 좋다’며 은근히 나를 치켜세우는 말로 설명하곤 했다.사실 모두에게 몇 타스씩 맞아 봤지만 주먹이 가장 센 건 몸무게가 제일 많이 나가는 ‘떡대’나, 쿵푸 했다는 ‘사마귀’나, 태권도 사단이라지만 안타깝게도 단증을 오래전에 잃어버렸고, 시범을 보일 때마다 품새가 달라지는 ‘실바’보다도 단연 ‘까시’였다.잠시 땅바닥을 내려다보는 사이 까시의 왼 주먹이 내 오른쪽 볼을 사정없이 후려쳐 버렸다.씨벌놈아, 귓구녕을 송곳으로 뚫어주랴? 까시가 왼손잡이였나 생각하는 사이 날아든 그의 말은 주먹만큼이나 오지게 매웠다.

알았다고 대답하기는 했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지금 맞으나 이따 맞으나 맞는 건 똑같지 않은가.모르겠다고 하나, 알았다고 하나 까시에게 맞으나 길거리 술패거리에게 맞으나 마찬가지란 말이다.하지만 줘 맞을 때 아픈 건 늘 새롭다.어제도 맞았고, 오늘도 맞지만 그때그때 새록새록한 통증이 밀려온다.멸치볶음에 다 쉬어터진 느타리김치만 올라오는 우리 집 밥상이며, 뒤통수만 때려대는 담임이며, 아직 내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우리 반 반장의 한심한 눈초리도 다 그대로인데, 이상하다 몇 대 줘 맞는 통증은 늘 새롭기만 하다.

까시의 턱짓을 따라 고개를 돌려 보니 골목 끝에서 넥타이 셋이 걸어오고 있었다.서류 가방 외엔 아무것도 들지 않았고, 늦은 밤에 말일이니 이런 경우 거지반 은행원일 거였다.월말에는 은행원들이 많이 걸린다.하기사 은행이 좀 많은가.동네마다 하나은행 국민은행 신한은행 씨티은행에 우리은행이며 기업은행까지 지폐 다발로 여기저기 차곡차곡 세워져 있다.거기선 남자들도 다달이 생리를 한다고 누군가 그랬었다.웅크려 엎딘 내 등에 올라타 타잔처럼 주먹질을 하던 어떤 돼지는, 오늘 자기가 얼마를 메웠는지 아냐며 어설픈 쌍욕을 해 댔었다.십할, 십할, 마치 하나 둘 셋 넷 구령을 붙이듯이 주먹을 휘두르며 그는 울었었다.하긴 월말이니까.

그날 걸린 넥타이 셋은 정말이지, 이 녀석들 도대체가 무슨 국군 권투부대라도 나왔는지 일으켜서 배만 때리려고 했다.나는 작고 말랐으며 꽤나 못생겼다.얼마나 때려주고 싶은 얼굴이겠는가, 그런데도 이 녀석들은 얼굴은 놔두고 자꾸만 보디블로, 보디블로, 어, 벨트라인 아래는 반칙인데요, 그러다 아주 가끔씩만 어퍼컷.나는 맞으며 구구단을 세곤 하는데 그날은 자꾸 팔칠에 오십육에서 헷갈렸다.팔칠에 오십사인지 오십이인지, 혹시 팔단을 두 번째 외우는 건 아닌지, 맞는 도중에 구구단이 끝나버리면 안 되니까 기왕 틀린 팔단을 계속 헤매며 새우처럼 몸을 오그릴 때쯤에, 저마다 몽둥이를 하나씩 잡아 든 떡대들이 들이닥쳤다.

어찌나 감격스러운 순간인지, 나는 벌떡 일어나 망을 봤다.뭐 가끔 내가 기절해서 처치 곤란으로 질질 끌려나올 때도 있지만, 그럴 때면 떡대들은 나를 어디 한적한 골목에까지 끌고 가서 버려두곤 했다.갈빗대가 부러지기도 하고 코가 주저앉기도 했지만 갈빗대야 뭐 놔두면 그냥 붙지 않는가.게다가 그런 날에도 주머니에는 어김없이 오천 원이 들어있었다.정직하다.떡대들은.

콘크리트 벽에 몸을 기대고 온몸에 힘을 풀면 제일 먼저 코가 데데하다.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코피라도 터지지 않으면 이상하지 않은가.훌쩍 콧물을 들이키면 비린 피냄새가 코를 타고 올라갔다가 다시 목젖을 따라 식도로 흘러내린다.망을 보며 훌쩍거릴 때마다 남의 돈 먹는 게 쉽지 않다고 노래 부르던 어머니의 말뜻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사람들이 잠시 발을 멈추고 골목 안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술집 골목을 지나치는 사람들이란 그저, 어유 저걸 어쩌나 하는 표정만 잠시 지은 채 무관심하게 지나쳐갈 뿐이다.흘끗, 그러곤 끝이다.간혹 핸드폰을 꺼내들고 전화를 거는 사람들도 있지만 짭새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끌 떡대들이 아니다.오성파의 휘황찬란한 행동강령은 ‘속전속결’이었다.

그리하여 적당히 얻어터진 은행원들은 골목 안쪽에 급히 벗어던진 외투처럼 쌓여 있었다.떡대들은 두둑한 현금을 챙겼고 나는 오천 원을 벌었다.빳빳한 신권이었다.지갑에서 돈을 빼내자 그이들은 어어어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그들을 지탱해 주던 건 지갑 속에서 빳빳하게 자존심을 세운 신권들이 아니었을까.쇄골이 시큰거렸고 어찌어찌 한옆으로 쓰러지던 통에 팔이 좀 까지긴 했지만 그럭저럭 집을 향해 걸어갈 힘은 남아 있었다.

집으로 가려면 술집들이 뚝 끊기고 원룸들이 늘어선 거리를 지나, 크리스마스 선물로 떨어져 내린 것처럼 수많은 모텔들이 갑자기 모여서 불을 밝힌 골목을 지나야 한다.동네 꼬맹이들은 거길 지날 때마다 괜시리 바지주머니에 두 손을 꽂아 넣고 고추를 조물락거리며 얼굴을 붉혔지만, 나는 그곳을 지날 때면 왠지 가슴이 따뜻해지곤 했다.달아오른 불빛 때문인지, 그 불빛들이 오래전 아버지의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올려다 본 시청 앞 트리를 닮아서인지 어쩐지 알 수 없다.

모텔, 호텔, 모텔, 호텔 또 모텔들이 줄지어 늘어선 골목길을 지나 이 차선으로 어둑신한 큰길을 건너 언덕을 오르면, 드디어 쪽방들이 닥지글거리며 붙어 앉은 우리 동네가 나온다.

그애는 [아모르] 앞에 서 있었다.한여름에도 캐럴을 불러야 할 것 같은 골목 맨 끄트머리에 말이다.네온 불빛으로 번쩍거리는 골목은, 그러므로 밝았지만 꼭 그만큼의 어둠을 함께 품고 있었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불빛을 올려 보다가 고개를 내리면 골목 안은 막막한 어둠에 휩싸였다.중학교 때까지 곧잘 하던 공부가 내 아버지의 인생처럼 내리막을 탄 지 오래되어서 그게 암순응 때문인지 명순응 때문인지 기억나지 않는다.골목 끄트머리에 서 있는 여자애의 모습은, 아무튼지간에 그저 그림자로만 보일 뿐이었다.

내가 골목길에 들어서자 그림자는 슬쩍 고개를 돌려 이쪽으로 시선을 던졌다.그리고는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고 내 쪽을 바라보기만 했다.어쩐지 나는 긴장이 되었다.오성파의 미끼가 긴장이라니.하지만 아무리 오성파라고 중얼거려 봤자, 걸음걸이는 자꾸 어긋나기만 했다.그애는 길고 마른 그림자를 길에 드리워놓고 있었다.그림자는 좀 추워 보였다.여기저기 멍들고 깨진 몸을 움직여 그애의 얼굴이 보이는 곳까지 도착했을 때, 그애가 갑자기 내 쪽으로 한걸음 걸어왔다.나는 갑자기 다가선 그림자를 밟지 않기 위해 한옆으로 물러서야 했다.

그애는 아무 말도 없이 가까이서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핸드폰을 들어 어디론가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퍼런 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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