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신춘문예 당선작-단편소설] 빈방(상)

백이<속초시 조양동>

“요양원으로 떠나는

노인을 위해 홍합을 삶았다

일일이 족사를 떼어낸 다음

큰 냄비에 담고 … ”

노인이 떠났다. 그러나 빈방에서 풍기는 취기(臭氣)는 여전하다. 당신은 어렵지 않게 침대 머리맡과 벽 틈에 숨겨져 있는 냄새의 진원지를 찾아낸다. 숨겨진 봉지 안에는 늙은 아버지의 트렁크 팬티가 들앉아 있다. 그것을 숨기려고 애를 썼을 노인의 외로움이 큼큼한 냄새를 풍기는 것 같아 당신은 팬티를 쓰레기통에 집어 던진다. 문득 어릴 때 아버지가 당신을 버릴까 두려워 자주 오줌을 지렸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난데없는 요의를 느낀다. 당신은 방을 청소하려고 들고 있던 비와 쓰레받기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손잡이를 힘껏 잡아당겨 문을 닫고 나온다. 오랫동안 쓰지 않을 물건을 담은 상자 뚜껑을 봉인하듯 손잡이를 여며 쥐며 당신은 앞으로 당분간 이 방문을 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거실 식탁 위에는 노인이 먹던 홍합 껍데기가 수북이 쌓여 있다.

오늘 아침, 당신은 요양원으로 떠나는 노인을 위해 홍합을 삶았다. 일일이 족사를 떼어낸 다음 큰 냄비에 담고 가스레인지를 틀었는데 금방 한소끔 끓어올랐다. 뚜껑을 열자 흰 거품 속에 진주빛 입들이, 입 안의 주홍빛 혀들이 깜짝 놀란 듯 일제히 벌어져 있었다. 숨겨야 할 뭔가를 들켜버린 듯 당신은 서둘러 홍합을 큰 대접에 담아냈다. 천천히 걸어 나온 노인은 섭이네! 낮게 웅얼댔지만 눈빛은 늙은 개의 코거울처럼 빛났다. 그러나 요양원을 가는 동안, 요양원에 내려서도 노인의 앙다문 입은 열리지 않았다. 완강하게 고개 숙인 노인을 향해 당신은 아무 말도 못하고 요양원을 나왔다.

당신은 냄비 뚜껑을 열고 대접에 홍합을 한가득 담아낸다. 그러고도 홍합은 냄비의 삼 분의 일 정도가 남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많은 홍합을 삶았는지 당신은 어처구니없다. 베란다 창을 마주하고 4인용 식탁에 홀로 앉는다. 그리고 개수를 헤아려 가며 홍합을 까 입으로 밀어 넣는다. 홍합을 마흔두 개까지 먹은 후 당신은 일어서서 포도주병을 꺼내 든다. 42개월, 노인과 함께 살았던 시간이다. 노인과 함께 당신 스스로를 봉인시켰던 시간이다.

창 밖에는 여전히 매서운 황사바람이 불어와 있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까무룩 지상으로 추락했다가 금방 14층 높이까지 튀어 오른다. 한 사람의 전생을 뒤흔들 것 같은 바람이다. 고비사막이 진원지라는 황사가 어떻게 한 번도 와 본 적 없는 이곳까지 날아올 수 있는지 당신은 의문이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곳을 향해 어떻게든 발을 내딛어야 하는 것은 당신의 삶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당신은 술잔을 들이켜다가 시계를 올려보며 갑자기 불안해진다. 종합병원 산부인과 간호사인 당신은 지금 이 시간이면 수술실에 들어가 있어야 했다. 보통 6주에서 12주 사이의 생애를 가진 아이를 자궁 밖으로 떼어내는 수술들이었다. 자궁 입구를 늘이고 태아를 빨아들일 튜브를 자궁 속으로 삽입한 후 가정용 진공청소기보다 몇 배 강한 압력을 가하면 온 몸이 찢긴 채 조각난 피투성이 살점들로 태아는 세상과 작별했다. 온전하게 태어났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세상에서 밀려났을 아이들이라고 당신은 생각했다. 세상 진화의 이치대로 아이들은 더 폭력적으로 되거나 더 소극적이 되거나 더 냉소적으로 자라날 거라고.

그러나 곧 당신은 오늘 하루 연가를 낸 것을 생각해내며 안도한다. 오로지 당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시간들 앞에서 잠시 마음이 가볍다. 시간은 많다. 집안을 청소하고 음악을 듣고, 혼자서 해 보고 싶었던 일들은 많았다.

요양원 가기 전에 디베 죽을 기다. 요양원 얘기만 꺼내면 모질게 맞받아치던 노인의 말이 바람소리와 함께 들려온다. 연거푸 술잔을 들이켤수록 어젯밤 일은 더욱 선명하게 떠오른다.

어제 저녁 퇴근길, 당신은 어떻게든 요양원 얘길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다짐하며 아파트 문을 열었다.

누구나? 누구나? 노인의 목소리와 함께 변 냄새가 밀려나왔다. 다녀왔어요, 인사하면서도 당신은 노인의 움푹 팬 눈과 마주치지 않았다. 이틀째 변비약을 들더니 결국 앉은 채 변을 봤다는 것을 당신은 금방 알아차렸다. 다리를 타고 흘러내린 변이 화장실로 가는 길을 만들었다. 노인은 치운다고 치웠겠지만 되레 사방에 똥칠 하는 격이 되고 말았다. 노인은 침대 위에서 당신의 눈치를 살피며 냄새 나서 세 번 씨쳤어, 세 번! 이라고 말했다.

당신은 망설이지 않고 노인의 옷을 벗겨냈다. 노인의 팔이며 목, 배, 허벅지의 쭈글쭈글한 피부들이 어류의 지느러미처럼 늘어져 있었다. 애써 앞을 가리려 비척대는 노인을 침대에 눕힌 채 당신은 젖은 수건으로 노인의 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닦았다. 뜨거운 물에 불어난 고무장갑이 피부에 친친 감기지만 묵묵히 더뎅이진 변을 닦아냈다. 매번 그랬지만 날 선 칼을 들고 생선 비늘을 벗겨내는 기분이 들어서 당신은 우울했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당신은 최종선고를 내리듯 요양원 얘기를 마무리 지었다. 하느님, 그냥 죽고 자퍼요. 거 가기 전에. 씨바, 이레 살아 뭐하나요? 노인은 늘 하던 대로 욕설이 반인 기도를 쏟아냈다.

사실 당신은 좀 더 시간을 갖고 노인을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10년 병치레 끝에 새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혼자 된 노인은 요양원은 싫다고 마다했다. 노인을 직접 모시진 않았어도 생활비를 대고 주말마다 일주일간 먹을 반찬을 챙겼다. 직장동료들이며 주위 사람들은 대단하다며 당신에게 효녀라는 꼬리표를 달아주었다. 거동이 더 불편해지고 치매기가 조금씩 보이는데도 노인은 여전히 요양원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할 수 없이 방 두 칸 중 한 칸을 내 주며 당신은 숟가락 하나 더 올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42개월. 노인은 서서히 아이로 변해갔다. 철없는 노인은 당신의 고단한 미래가 되었다. 노인은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하고 어둠 속에선 잠들지 못하고 방문이 닫힌 것을 답답해했다. 노인이 즐겨서 하는 일은 텔레비전 시청과 허벙저벙 지팡이를 찍으며 너덧 차례 집 안 횡단하기, 그리고 먹기였다. 몸체는 바짝 말라 물기를 잃어 가는데도 식탐은 줄어들지 않았다. 입이 꿉꿉하다는 채근에 당신은 병원 끝나고 격일제로 다니던 수영교습을 그만두었다. 칼같이 직장 퇴근시간을 지키고 허겁지겁 저녁준비를 하느라 당신의 몸도 마음도 쇠잔해졌다.

노인의 삶이 곧 당신의 삶이 되었을 때, 비로소 당신은 노인에 대한 감정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노인에 대한 봉양은 최소한의 도리일 뿐, 아무 의미도 없게 되었다. 노년의 무능력이 유아기의 미숙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당신은 두려웠다. 그것이 마치 운명처럼 당신을 옭아매고 있다고 생각할 때면 더 그랬다.

노인은 이제 떠났어, 혼잣말을 하며 당신은 고개를 흔든다. 그리고 베란다로 나가다가 당신은 놀라서 멈춰 선다. 노인은 베란다 소파에 앉아 하염없이 앞산을 내다보고 있다. 집요한 시선은 창 밖 너머로 달아나는 시간을 붙잡기라도 할 태세다. 아버지, 그래 봤자 잡히는 건 먼지 같은 시간일 뿐이에요. 절대 잡을 수 없는요! 당신은 노인을 향해 속으로 화를 냈던 기억을 떠올리며 입술을 깨문다.

사실 일인용 소파에 파묻혀서 앞산을 오르는 자드락길을 바라보는 것은 당신의 오랜 습관이었다. 산속으로 숨어든 길을 눈으로 좇다 보면 실제 뭔가를 잃어버린 듯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것은 상실감이 던지는 짧은 파문이었지만 동시에 실제가 아니라는 인식에서 오는 얄팍한 위안에 당신은 만족했다. 언젠가 노인이 앞산에 가보고 싶다고 했을 때 당신은 바쁘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문을 열고 나서면 걸어서 십 분 거리에 있는 산이지만 당신 또한 한 번도 올라가 본 적이 없었다. 주간과 야간 근무를 번갈아 가며 해야 하는 일상에서 산은 늘 너무 멀리 있다고 생각했다.

젊어서 변명만 하다 늙으면 못 올라간다. 나를 봐라. 노인은 하품을 한 뒤 눈에 고인 물기를 닦아내며 말했다. 노인이 모르고 한 말이었다. 이미 오래전, 노인을 앞질러 당신이 먼저 늙어버렸다는 것을. 언니의 사진이 노인의 손에서 찢겨져 나간 날이었다. 그날 당신은 노화를 촉진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자연의 순리가 아니라 인간의 무서운 결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나마 희부옇게 보이던 앞산이 이제는 눈앞에서 사라졌다. 매서운 황사 바람 소릿결에 따르릉 전화벨 소리를 들은 것 같아 당신은 황급히 전화기 쪽을 돌아본다. 그러나 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다. 어쩌면 십년지기 직장동료인 황이 전화를 했을 수도 있다. 황은 어제 당신이 연가를 내는 것을 궁금해했다. 언니 때문이야? 황은 물었다. 뭘 알고 싶냐고 당신이 눈초리를 올리자 황은 아니, 내일 낙태 수술이 많아. 당신 전문이잖아, 라고 말하며 웃었다.

당신은 전국적으로 황사 경보령이 내렸던 날이 떠오른다. 당신이 노인을 요양원에 보내야겠다고 처음 마음먹었던 날이었다.

그날 아침, 눈앞의 풍경을 감추며 짙은 황사가 불어왔을 때 당신은 이유 없이 조급해졌다. 텁텁한 먼지 냄새와 차가운 바람 때문에 창문을 열어 볼 수도 없었다. 뿌연 때로 얽은 유리창에 눈을 박고 사방을 훑었다. 누군가 당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그랬다. 그러다 늦게 당신은 당신 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돌이켜 보면 그날 종일토록 누군가를 기다렸고 그것이 언니 전화였던 셈이었다. 그런데도 어디 사는지, 전화번호는 뭔지, 집에 한번 들르라는 말도 건네지 않은 독기에 당신은 지금도 가슴이 저릿하다.

언니는 당신과 노인의 이름을 들먹이며 부녀관계를 확인한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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