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新 강원기행] (127) 화천군 사내면 삼일리 화음동마을

수복지구‘화려한 꽃 피웠다

조선시대의 정사터 '화음동 정사지' 있어

곡운 김수증이 후학 가르치며 은둔하던 곳

6·25전쟁 끝나면서 이주 1세대 자리 잡아

백합·꽃도라지 등 화훼산업 소득 '짭짤'

서울 양재동 등 전국에 출하…日 수출까지

마을 주민 산천어 양식 등 끊임없는 도전

화천군 사내면에서도 계곡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삼일리 화음동 마을을 만나게 된다.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이 마을은 역사가 살아 있는 곳이다.

화음동 정사지(華陰洞精舍址)는 삼일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사터다. 조선 현종 때의 문신 김수증(金壽增)이 1689년 기사환국으로 벼슬을 그만두고 이곳 화악산 북쪽 절경을 이룬 계곡을 이용하여 사(舍)·암(庵)·정(亭)·대(臺) 등을 짓고 자연석에 글자를 새겨 놓고 후학을 가르치며 은둔하던 곳이다.

현재 건축물은 전부 소멸되고 그 터와 자연석, 바위에 새겨진 글자와 도상만이 남아 있다. 화음동 정사지는 조선조 조형예술과 성리학, 정사에 나타난 구조 및 사상적 계보 파악 등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마을은 수복지구다. 과거 인민군 통치하에 있다가 전쟁이 끝나면서 지금의 이주 1세대들이 자리를 잡았다. 이곳이 고향인 주민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1세대들은 가평, 춘천, 충청도 지역에서 결혼해 가정을 꾸린 후 정착한 경우가 많다.

1세대들의 고생은 매우 심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산골에서 야산에 밭을 일구고 감자와 옥수수를 키우며 생계를 이어갔다. 외곽도로가 전무해 출입증을 소지한 채 군부대를 통해 왕래해야 하는 불편도 있었다.

화음동 마을은 1980년대에 이르러 길이 뚫리기 시작하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수복지구답게 주민들을 만나보니 도전정신이 강하게 느껴졌다. 주민들은 현재 토마토 등을 재배하며 소득을 올리고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는 화훼산업에 도전하는 주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백합과 꽃도라지 등이 서울 양재동, 강남 도매시장, 부산, 김해로 출하되고 있으며 일본 수출까지 이뤄지고 있다.

맨손으로 시작한 사업인지라 초창기 실패는 피할 수 없었다. 초기 종자를 외국에서 전량 수입했으나 외국산의 특성을 잘 몰라 쓰라린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전문약제가 없던 시절 농약을 잘못 써 큰 피해를 보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실패를 딛고 일어선 삼일리 사람들은 이제 포장과 가공을 기계화하고 안정된 소득을 올리고 있다. 이제 꽤 노하우가 쌓였을 법도 하지만 길종훈(44) 이장은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일본의 경우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화훼소비가 늘지만 우리는 아직 그런 문화적 분위기가 정착이 되지 않았다”며 “무리한 확장보다는 전작을 통한 활로를 모색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다.

삼일리에는 산천어 양식장이 있다. 내년 산천어축제엔 약 2만 마리(4톤)의 산천어를 납품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약 6만 마리의 산천어 양식계획도 세우고 있다.

올해 대규모 정전사태 때 물고기를 모두 건져 산소 공급을 해 겨우 피해를 모면하는 아찔한 순간도 겪었지만 덕분에 이젠 발전기 등 비상대책도 세워놓았다.

김이장은 “내년부턴 마을의 소득형태가 보다 안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화천=김준동기자 jdkim@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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