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정상급 클래식 기타 제작자 엄태창씨,
화촌면 풍천리에 공방 차리고 '귀농 예술인' 삶 만끽
“쓰윽~ 쓰윽~ 쓰윽….”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기타 원목의 뒤판을 얇게 쓸어내리는 손놀림이 매섭다.
홍천군 화촌면 풍천리의 한 산골짜기. 국내 최정상급 클래식 기타 제작자로 유명한 엄태창(59)씨는 설 연휴 마지막 날임에도 주문받은 기타 제작에 여념이 없다. 엄씨는 부친 엄상옥(1998년 작고)씨의 '엄상옥기타'에 이어 80년 가까이 가업을 유지하고 있는 '엄태창 기타'의 대표다.
강원도 산골의 매력에 빠져 2010년 1월13일 선배의 집 인근에 공방을 차린 이후 명품 클래식 기타를 손수 제작하며 '귀농 예술인'이자 '귀농 기업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랑하는 아내 조옥현(50)씨와 단 둘이 홍천에서 제2의 삶을 이어가며 가업을 잇고 있는 엄씨의 삶과 꿈을 나누며 이 시대 우리가 함께 누려야 할 귀중한 의미들을 찾아봤다.
- 홍천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강원도 홍천과는 우연찮은 기회에 인연이 닿았어요. 서울 강남의 공방에서 33세부터 20여년을 작업해오던 중 5년 전 먼저 홍천 풍천리에 자리 잡고 새로운 삶을 누리고 있는 선배의 집에 쉬러 왔었죠. 그런데 5월 어느 날 새벽에 문득 잠이 깨어 밖을 나가 보니 차가운 새벽공기가 나의 온 몸을 감싸는데 춥거나 싫지가 않고 예전에는 전혀 몰랐던 색다른 상쾌함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때 생각했어요 '아! 이 곳에 내 공방을 만들면 이러한 상쾌함을 누리며 더 훌륭한 작품이 만들어질 것 같다…'라고요. 이후 곧바로 공방과 집을 지을 곳을 물색했고 3년 만에 이곳 산골짜기 꼭대기에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게 됐죠.”
- 가업인 만큼 기타 제작을 위한 조건이 괜찮아야 할 텐데요
“네. 정말 최상입니다. 이름을 걸고 하는 만큼 저는 기타 제작 환경이 좋지 않았다면 아예 올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직접 손으로 제작하는 기타의 제작을 위해서는 습도 조절이 생명인데요. 이곳에서는 40~60% 습도가 항상 잘 유지됩니다. 공방을 신경 써서 설계한 것도 있지만, 우선 볕이 잘 들고 숲에 둘러싸여 있는 이러한 환경이 작품을 만드는데 있어 매우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작품을 만드는데 있어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저는 제가 일하고 싶을 때 집중적으로 일하는 편이에요. 그런 면에서 홍천 공방은 밤이든 새벽이든 어느 때든 일할 수 있어서 더욱 좋습니다.”
- 생활하는 데 불편함은 없는지요
“불편함은 크게 못 느낍니다. 생활만족지수는 '최고'이지요. 비록 산골짜기지만 홍천군은 길이 잘 나 있어 차로 20분이면 읍내에 갈 수 있고, 서울의 공방에 가는 데에도 서울~춘천고속도로를 이용하면 1시간대에 도착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작업 중 부상을 당해서 응급의료시설을 이용하는데 있어서는 도시와는 달리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던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지난해 엄지손가락을 다쳤는데 도착은 빨리 했는데도 2시간 가까이 기다려 봉합수술에 들어갈 수 있었거든요. 당시에는 손가락 부상으로 일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말 많이 불안했었습니다.”
- 직접 텃밭을 일구는 것 같은데…
“네, 평생 해 보지 않았던 농사도 직접 지으면서 농부로서의 삶도 누리고 있습니다. 2년 전 이사를 올 때 주민등록 이전과 함께 농지원부 등록 등 농사를 짓기 위한 행정조치도 다 했거든요. 이왕 강원도에 와서 사는 거 텃밭을 일구면서 제대로 누리면서 살아보기로 한 것이죠. 텃밭에는 배추와 무·콩·팥·감자·고구마 등을 재배했는데요. 초보이지만 잘 자라줬지요. 집을 지키는 두 마리 삽살개인 탱고와 써니가 텃밭에 접근하는 야생동물도 잘 막아 주어서 농사가 크게 어렵진 않았어요. 무 배추는 직접 뽑아서 김장도 35포기를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정말 뿌듯합니다. 하하하. 기타 제작 작업을 할 때 무언가 잘 안 되고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텃밭에 나가서 잘 자라는지 돌보고 하나하나 살펴보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가라앉아서 작업이 다시 잘됩니다. 제 생업에 큰 도움을 주는 셈이죠.”
- 제작 주문이 많이 들어오는가요
“저는 '엄태창기타'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메이커로 성장시키기 위해 1년에 20대 정도의 클래식 기타만을 제작합니다. 기계로 만드는 것이 아닌 수작업이어서 빨리 만들 수도 없고요. 가끔은 기타 주문자들이 직접 이곳 홍천 공방을 찾아와서 차를 마시고 함께 연주도 하고 돌아가곤 하는데, 모두 이곳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어 가셨기를 바랄 뿐이죠.”
- 엄태창 기타의 특징을 소개한다면
“기타를 만드는데 있어 기준이 되는 정확한 음정과 뛰어난 공명, 각 음마다의 높은 분리도를 장점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음이 약간 무거운 독일형 악기와 음이 화려한 스페인형 악기의 중간 음색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국내 마니아층도 두껍고, 독일 등 유럽에서도 점차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죠.”
- 가업을 잇고 있는데 혹시 다음 세대에는 누가 잇는지
“제 가족은 아내와 딸이어서 다음 세대에서 기타 제작은 큰형님의 아들인 조카가 할 예정입니다. 7년째 사사중인 조카로 인해 우선 3대에 걸쳐 엄태창 기타의 명맥은 이어질 수 있게 됐으니 정말 다행이죠. 딸(엄지수·30)은 기타제작은 하지 않지만 클래식 기타 연주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공부 중인데 오는 4월6일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첫 공식 연주회를 합니다.”
- 어릴 적 꿈은 원래 기타 연주가였다고 들었습니다
“내 꿈이 연주가여서 요즘도 제작하는 틈틈이 연주를 하곤 합니다. 연주는 기타 제작자에게 있어 자신의 작품을 테스트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능력이기도 하거든요. 지난해에는 홍천 공방 오픈 기념 콘서트를 이곳에서 열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지에서 초청 연주가들이 모여 아름다운 선율로 홍천의 산골을 뒤덮었죠.”
(인터뷰 도중 갑자기 엄태창씨의 기타 연주를 듣고 싶어 요청했더니 흔쾌히 응했고 '로망스''섬집아기'를 고요히 연주해주었다.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나 눈물이 글썽인 건 어쩌면 엄씨의 연주에 진실된 마음이 실렸기 때문인 것 같았다.)
- 지난 연말에는 홍천에서 폴인기타앙상블 연주회도 직접 기획해 열었던데요
“제가 꿈이 연주가였고 많은 대중에게 클래식기타의 선율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주고, 문화적 혜택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폴인기타앙상블은 국내 클래식 기타 명연주가들로 구성된 합주단인데 이들의 연주를 통해 지역 곳곳에 있는 주민들에게 새로운 기쁨을 주고 싶어서 기획했죠.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 대로 연주회를 열고 싶은데 벌써 올해 말 연주공간 예약이 다 차 있을 정도로 마땅한 공간을 찾기가 쉽지가 않네요.”
- 앞으로 강원도와 홍천에서 펼치고 싶은 꿈이 있다면
“우선은 작품(악기) 전시회를 정기적으로 열고 싶어요. 홍천과 춘천 원주 등 강원도내 뿐 아니라 서울 등지에서 공연장과 로비를 함께 쓸 수 있는 곳이 대관이 된다면 좋을 것 같아요. 또 다른 꿈은 '클래식 기타 마을'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직 구체화된 것은 아니고 이뤄질 수 있을지 아닐지 모르지만 저는 이곳 홍천 공방을 중심으로 전 세계가 주목하는 '클래식 기타 마을'이 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기쁜 일입니다. 기타 모양으로 마을을 만들고 수시로 연주회도 열고, 제작과정도 보여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부친에 이어 가업인 클래식 기타 제작자의 길을 걷고 있는 엄태창씨.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꿈을 향해 한발 한발 옮기는 그의 삶은 무언가에 쫓겨 원치 않으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도심 속으로 찾아 들어가는 현대인에게 경종을 주기에 충분하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꿈을 설계하며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푸른 숲, 맑은 공기가 가득 찬 강원도에 정착한 엄태창씨의 삶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다.
홍천= 이무헌기자 trustme@kw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