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엘리베이터에 아래층 학생이 문자를 보내느라 고개도 안 들고 올라탄다. 손가락 놀림이 참 빠르기도 하다. 어쩌다 지하철을 타 보면 승객들이 하나같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열심히 손놀림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다. 스마트 폰 하나로 세상의 모습을 손 안에서 볼 수 있고, 하고자 하는 일을 손 안에서 처리할 수 있으며, 세상을 움직여 세상을 바꾸는 것도 손 안에서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편리할 수 없다. 어떤 이는 인류의 역사를 3이라는 숫자를 가지고 그 변천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지구 상에 현생 인류가 출현하여 원시 수렵생활을 한 것이 약 30000여년 이어졌고, 농경생활을 주로 한 것이 3,000여년이며, 산업사회가 300여 년 이어져 왔다. 그리고 오늘날 정보화사회가 30여년 발전되어 오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의 문명은 그렇게 유구한 인류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특히 산업화 이후의 사회 변화를 지난 50여년간 압축하여 이루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0년대 이전 농경사회에서 1970,80년대 산업사회로 발전했고, 1990년대 들어 정보화 사회를 이루어 낸 것이다. 일찍이 이렇게 빠르고 눈부시게 발전을 이루어 낸 인류의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 지금 세계 최첨단을 자랑하는 전자, 반도체, 조선 분야가 그 사실을 세계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 어느 나라보다 앞서 선진 문명의 이기를 향유하고 있다. 각종 첨단 전자기기와 PC는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스마트폰 보급 또한 2,000만대가 넘어섰다고 한다. 경제활동 인구 2천5백만의 80%가 보유한 셈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놀라운 발전과 문명의 이기들을 보며 한 번쯤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은 것은 없는지, 그것들이 어느 사이 우리 인간성을 잠식해 들어오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나라를 발전시킨 원동력은 무한 경쟁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경쟁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동안, 상대방을 경쟁 상대로만 인식해 마음을 열지 못하고 경계하는, 각박한 세상이 만들어졌다. 이로 인해 생긴 증오와 독은 인터넷상에서 나와 남을 모두 해치는 흉기가 되어 인간성을 황폐화시키기도 한다. 인터넷에 범람하는 지식은 대다수가 단순한 지식으로 독서의 가치를 변화시켰으며, 즉시적이고 즉각적인 정보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깊이 사유하고 성찰하는 학습의 방법을 빼앗아갔다. 또 스마트폰의 환상적 기능에 함몰되어 여유롭게 둘러보아야 할 일상을 그 속에 집어넣고 있지는 않은지.
이러한 모습은 청소년들에게도 투영되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쟁이나 과잉 선행학습, 이기심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는 인성과 창의적이고 자주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사회는 구성원 서로 간의 원활한 소통을 통해 발전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서로를 배려하는 인성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미래 사회를 살아갈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능력이 바로 창의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을 배려하고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삶에서 배려와 창의성이 들어설 수 있는 자리, 즉 여백이 있어야 한다. 이제 청소년들에게 자주적으로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주어져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배려심과 창의성을 길러 미래의 주역으로서 올곧게 성장하게 될 것이며, 강원교육이 추구하는 행복한 학교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