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10월3일 문을 연 사진 속의 병원 간판에는 ST. COLUMBAN'S CLINIC(성 골롬반 클리닉)이란 문구가 적혀져 있다.
입구에는 수녀와 환자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또 다른 흑백사진 속에는 한복을 입은 남녀노소가 길게 줄을 서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녀들과 의사, 신부, 그리고 환자들의 정겨움도 곳곳에 담겨있다.
한국전쟁 이후 반세기가 넘는 역사속 현장에서 그렇게 성 골롬반 의원은 춘천시민들의 가슴에 아련하게 또 깊게 박혀있다.
사진 속의 기록도, 또 중년과 노년 등 동시대를 함께해온 시민들의 마음속에도 그런 따뜻한 마음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아! 성 골롬반 의원은 지난해 10월 문을 닫았고요. 여기는 노인전문요양시설인 성골롬반의 집입니다.”
최근까지도 심심치않게 춘천시 동산면 거두리 성 골롬반의 집으로 병원을 문의하는 전화가 걸려온다고 한다. 병원이나 복지시설 모두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가 운영한다.
의료시설 하나 변변치 않던 1955년 춘천에서 첫 진료를 시작하고 이듬해 정식 개원한 뒤, 반세기 넘게 춘천시민을 위해 헌신했던 성 골롬반 의원의 '빈자리'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20일 찾아간 춘천시 약사동 죽림동성당 부근의 성 골롬반 의원은 지난해 10월 폐원에도 불구하고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2층의 콘크리트 건물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단층 벽돌과 기와를 얹은 고즈넉한 모습은 변함없었다. 병원 건물 뒷편의 거목인 향나무는 지난 세월을 다 지켜보았다는 듯,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의료진도, 수녀도, 환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굳게 닫힌 문 옆으로 베니어 합판에 붓글씨로 쓴 '의료보호지정의원 一차 진료'라는 오래된 명패만이 의료시설임을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성 골롬반 의원은 1955년 수녀님들에 의해 첫 문을 열었다. 1922년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성 골롬바노수녀회(Missionary Sisters of St.Columban)가 국내에 들어와 1955년 천주교 광주교구 목포, 같은해 춘천교구에서 진료를 시작했다. 정식 개원은 이듬해 이뤄졌다.
당시 천주교 춘천교구장이던 구인란 주교의 요청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개원 초기 변변한 의료시설 조차 없었던 춘천에서는, 치료를 받으려는 시민들로 이미 새벽 4시부터 길게 줄이 섰고 하루에만 400~500명이 병원을 찾았다. 약사동 일대가 병원을 찾는 인파로 북적였다. 한국전쟁 뒤 가난과 질병으로 피폐해진 시민들의 몸과 마음을 보듬었다.
헐벗고 굶주린 이들을 위한 따뜻한 진료 활동은 물론 호스피스, 즉 노인 요양도 성 골롬반 의원이 모태였다.
1989년 아일랜드 출신의 노라(68)수녀가 병원 한쪽에서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활동을 시작했다.
2004년 성 골롬반 의원에서 별도로 호스피스 분야를 분리해 동내면 거두리에 노인전문요양시설인 성 골롬반의 집을 개원했다.
하지만 성 골롬반 의원은 국내의 의료시스템이 정착되고, 보건소 등 공공의료시설도 많이 들어서면서 필요성이 많이 약화됐다. 하루 수백명의 이용객은 점차 줄어들었다. 결국 지난해 10월 폐원이 결정됐다.
노라 수녀는 “50여년 전 춘천이 그랬듯이, 이제는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더 어려운 국가나 도시로 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라 수녀가 이끄는 성 골롬반의 집은 춘천에서 사랑을 계속 이어간다.
성골룸반의원 폐원에 춘천교구는 지난해 11월 감사 미사와 사진전시회 등 폐원 행사를 열었지만, 일반 시민들에게 까지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크게 아쉬워하고 있다.
노라 수녀는 “중년 이상의 춘천지역 시민들이라면 성 골롬반 의원과 얽힌 애틋한 사연과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며 “그동안 사랑을 베풀고, 또 시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춘천=류재일기자 coo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