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Week+]매력의 땅 인도, 그 인도를 닮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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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에 생소한 인도미술박물관 연 박여송 관장

◇서울 출신으로 서울대와 이화여대 대학원을 졸업한 박여송 영월 인도미술박물관장은 인도미술은 다양한 인종과 종교를 바탕으로 수많은 신화뿐만 아니라 인도만의 독특한 전통을 고수해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유적과 미술품들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박 관장이 인도 마디아프라데시 지역의 바스타르 철조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영월=오윤석기자

“인도요. 참 알 수 없는 나라죠. 남들은 구도와 진리를 구하는 땅이라고 하지만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은 고달프면서도 치열해요.” 박여송(58) 인도미술박물관장은 지난 5월 영월군 주천면 금마1리 깊은 산골에 인도사랑의 결실인 미술관을 차렸다. 옛 금마초교를 리모델링해 개관한 인도미술박물관은 그의 성격답게 깔끔하다. 인도의 다양성과 조화를 배울 수 있는 미술품 1,000여점에 관람객들은 감탄한다.

“인도도 사람사는 나라예요. 세계 인구의 6분의 1에 가까운 12억명이 넘는 대국으로 미국 중국과 함께 세계경제를 이끌어 갈 미래 3대 강국이죠. 대학 입시도 우리나라처럼 치열해요. 그러나 사람들이 신분을 나누는 카스트제도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사는 모습을 보면 이해가 안되죠. 가면 고달프고 힘들지만 돌아오면 다시 가고 싶어지는 나라예요.”

그녀는 우표디자이너였다. 1970년대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후 당시 체신부에서 5년 넘게 우표디자이너로 근무했다. 1981년 결혼과 함께 남편과 인도에 가 3년을 지냈다. 서울대법대를 졸업한 남편은 인도에서 법사회학을 전공한 경상대 백좌흠 교수다. 그녀도 인도 뉴델리에 있는 찬드라 요가·자연요법 대학을 졸업했다.

박물관에는 그녀와 남편이 30여년간 모은 다양한 예술품이 전시돼 있다. 인도에 살다 돌아온 뒤에도 부부는 거의 해마다 인도를 찾는다.

인도에서 모은 소장품이 1,000여점이 넘으면서 박물관을 열면 어떨까하는 소박한 욕심이 생겼다. 그러나 깊은 산골인 영월에 전문가의 영역인 인도미술 박물관을 개관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누가 와서 볼까. 인도문화에 대한 생경함은 없을까.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박 관장은 비록 산골이지만 '지붕없는 박물관도시' 영월이 주는 따뜻함에 그 불편함과 걱정을 감수했다.

인도는 힌두어와 영어 등 18개 언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12억명이 넘는 인구가 용광로 같은 삶을 살고 있다.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와 4대 문명 중 하나인 인더스문명의 발상지이다. 열대 몬순기후부터 사막기후까지 혼재하고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신과 춤과 노래 등 신앙적 문화가 넘실대는 나라다.

그녀는 인도미술의 매력을 다양성과 조화로 꼽았다. “인도는 나라가 워낙 커 지역마다 특성이 강해요. 미술작품 역시 그 다양함 속에서 조화가 이뤄지는 것이 매력이지요. 다양한 인종과 종교를 바탕으로 수많은 신화와 의식 속에 인도만의 독특한 미술전통을 고수하고 있어요.”

박 관장은 한국과 인도가 불교를 통해 오랜 인연을 맺고 있고 최근에는 양국 관계도 긴밀해지고 있지만, 그 문화가 제대로 소개돼 있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박물관에 전시된 1,000여점의 소장품은 인도 구석구석 여행을 다니면서 현지에서 찾아낸 독특한 것들이다. 안드라프라데시 지방의 칼람카리 회화, 서벵골의 두루마리 그림, 인도 각지의 부처상과 힌두신상, 지역별 전통 탈과 무덤 부장품 같은 소장품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인도미술박물관은 그림·조각·공예품 등으로 작품을 분류해 전시하고 있다. 제1전시관에는 칼람카리 그림, 두루마리 그림, 파드 그림, 세밀화와 여러 부족민의 그림이 전시돼 있다.

제2전시관에는 마두바니 그림, 왈리 그림 등이 전시돼 있다. 제3전시관에는 부처상, 힌두신상, 판넬조각, 탈, 곤드 부족민 조각 등이 전시돼 있다. 섬유공예품, 철제공예품, 도기, 테라코타, 불상, 장신구, 생활용품 등도 다양한다. 인도미술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 없어도 박 관장의 꼼꼼한 작품 설명을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관람객들이 직접 인도 전통 방식으로 미술 작업을 해볼 수 있는 왈리그림 체험, 블록 프린팅 체험, 헤나 바디 페인팅 체험, 인도 의상 체험, 홍차체험, 인도영화감상, 요가 명상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인도에서 전통 염색기법을 수학한 그녀는 1984~2004년 사이 뉴델리에서 한국-인도 수교 30주년 기념 특별전을 비롯해 4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박 관장은 칼람카리 페인팅 기법을 람보즈 나이크 장인으로 부터 사사받았다. 이 기법을 이용한 개인전을 1984년 3월 전인도미술공예협회갤러리에서 개최했다. 귀국 후에는 인도에서 얻은 영감으로 독특한 넥타이를 제작해 예술의전당, 가나아트숍 등에 납품하기도 했다. 10여년간은 경남대, 경상대 등에서 미술후학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인도 전역을 여행하며 마주친 수많은 유적과 미술품들은 그녀의 좋은 작품 소재다.

박 관장은 특히 마디아프라데시주의 보팔(Bhopal) 민속박물관을 집중적으로 조사, 연구했다. 보팔 민속박물관은 부족민들의 미술을 재현하여 보여주는 장소다. 그녀는 그곳에서 영감을 얻어 1996년 2월 '인도인의 이미지'전을 개최해 인도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인도미술의 무대는 캔버스 공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인도인들은 더불어 살아가는 일상의 모든 공간과 대상을 미술의 주제로 삼는다.

인도의 역사, 다문화, 신화 등에 바탕을 둔 상상력은 인도미술의 소중한 소재다. 대담하면서도 화려한 색과 선의 조형은 피카소를 비롯한 많은 서양화가에게 예술적 영감을 선물했다. 이 때문에 예술가들은 인도를 '벽없는 미술관'으로 부르기도 한다.

“인도는 지역성이 강해 지역마다 서로 다른 다양한 미술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저는 각 분야의 대가들과 만나는 행운을 가졌죠. 지금은 작고했지만 왈리 그림의 지브야 소마, 칼람카리 그림의 람보즈 나이크, 마두바니 그림의 강가 데비, 시타 데비 등이 저에게 영적인 영감을 많이 줬어요.”

칼람카리 그림의 대가 람보즈 나이크로부터는 그림의 기법을 전수받기도 했다. 그의 그림은 나뭇가지를 뾰족하게 깎아 외곽선을 그리고 온갖 자연물감들로 그 안을 채워 인도의 대 서사시인 라마야나나 마하바라타 등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다.

이 서사시는 인도문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미술, 음악, 문학, 연극 등의 주제로 쓰이며 인도인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다.

그녀는 운 좋게도 30년 전, 이 대가가 그린 한 벽면을 차지할 정도로 큰 규모의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 그림을 직접 소장하는 행운도 얻었다.

캘커타에서는 시인 타고르의 조카가 소개해줘 인도 최고 근대 화가인 자미니 로이 작품을 구해 소장하는 기회도 얻었다. “인도전역을 구석구석 여행 다니며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보석 같은 그 지역의 그림과 예술품들을 만나는 기쁨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어요.”

이런 여행의 경험들이 그녀의 작품속 주제가 됐다.

“인도도 점차 산업화돼 장인 정신이 사라지고 있어요. 지금은 30년 전과 같은 순수한 미술작품들을 만나기가 어려워졌지요.”

그녀는 박물관이 인도문화를 소개하고 인도미술을 알리는 가교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도인들은 신들을 기쁘게 하려고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 바치는데 이러한 작업이 미술로 표현됩니다. 그들의 미술품들은 피카소나 마티스의 구도와 색채를 연상시킬 정도로 현대미술품을 압도합니다.”

오늘날 인도는 지속적 경제성장을 기반으로 문화예술뿐 아니라 제반 분야에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성별, 계급, 빈부, 인종, 종교 등 인도에는 여전히 다양한 측면에서의 차별이 존재한다.

그녀의 남편인 백 교수는 이런 인도의 실정을 국내에 제대로 소개하기 위해 부인의 미술관 개관과 함께 산·관·학 협의체 성격의 '영월인도포럼'을 발족했다.

백 교수의 서울대 '72학번' 동기생인 이준규 주인도대사도 회원이다.

영월인도포럼은 분기별로 인도 관련 학술세미나를 열고, 한국정부의 대 인도 외교정책 제언, 인도 투자기업에 대한 조언, 인도 후진지역 주민에 대한 봉사활동 등을 할 계획이다.

지난달 24일에는 '인도 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포럼에는 김광로 전LG전자 인도사장, 정무섭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이순철 부산외대 러시아인도통상학부 교수 등이 참석했다.

“인도미술박물관이 영월포럼을 통해 인도 경제와 문화 등을 한국에 알리는 중심축 역할을 수행할 계획이에요. 영월이 인도문화의 전파지가 되는 것은 상상만해도 즐거운 일이죠.”

우리는 인도의 문화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녀의 박물관에 오면 지역의 광대함과 역사의 장구함에도 불구, 놀랄 만한 통일성과 일관성을 보여주는 인도미술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다양한 문양과 색상을 화려하게 버무려 물들인 작품들은 강렬하다. 눈덮인 한겨울 강렬한 색채를 탐하는 미술관기행도 좋을 듯싶다.

예술가이자 문화전도자인 박 관장은 영월이라는 화폭에 국경을 초월한 인도사랑을 그리고 있었다.

영월=김광희기자 kwh635@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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