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강원포럼]학교폭력, 피해자 보호 장치 마련돼야

오운홍 교육학 박사·문학평론가

얼마 전 부천의 한 고교에서 수업 중 조모(1년)군이 매일 짝으로부터 주먹과 발로 툭툭 얻어맞는 스트레스를 받다가 화가 치밀어 그 짝을 흉기로 찌르는 범행을 저질렀다. 범행 동기를 들은 경찰관계자는 “학교폭력이라기보다는 두 사람 간 개인적 차원의 문제”라고 했다. 학교폭력을 조직이나 집단에 의한 것으로 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다.

학교폭력 사건이 해마다 수없이 연속적으로 꼬리를 물고 있지만 경산의 학교폭력사건은 매우 충격적이다. 먼저 죽음을 앞둔 유서에서 폭력 예방 CCTV의 위치와 기능을 지적한 대목은 이성적 판단이었다. 또 다른 충격은 피해자의 가족으로부터 다소나마 도움을 받았던 친구가 가해학생에 포함됐다는 사실이다. 학교폭력을 예방하려면 피해자와 가해자의 심리와 상황을 읽어야 한다. “자살할 용기가 있다면 부모나 교사에게 자신의 처지를 밝혔어야지”하는 식의 조언은 제3자의 피상적 견해로서 도움이 안 된다.

도시의 학교폭력 조직은 피라미드식 연결고리를 이룬다. 예를 들어 00파 폭력조직이 생존하려면 끊임없이 젊은 피(행동대원)가 수혈돼야 한다. 이들 행동대원은 몇몇 고등학교의 짱을 관리하고 있다. 영화 '형사 강철중'에서 보여준 그대로다. 그 짱은 1, 2학년 후배와 몇몇 중학교에서 노는 애들(남녀)을 거느리고 관리한다. 또한 중학생 조직원은 초등6년생을 관리한다. 이 연결고리에 행동대원이 측면에서 관리·지원한다. 폭력서클 가담자에게는 어떤 면에서 부족한 자신을 조직의 힘을 빌려 과시하려는 심리가 숨어 있다.

폭력조직이 닿지 않는 학교에서도 학년 초에 새로운 학급이 구성되면 서열싸움, 기선 제압, 기싸움이 벌어진다. 이는 동물적 헤게모니 쟁탈 본능의 일면이다. 개별적 폭력에는 (모)범생에 대한 가해심리가 있다. 나보다 나은 대상을 제어한다는 즐거움과 쾌락, 희열이 동반한 사디즘(sadism)의 심리현상이다. 어느 신문 기사에 학교폭력이 어른의 세계를 닮아가는 것 아니냐 했는데, 학교폭력은 인격화가 덜된 동물적 본성의 잔재로 봐야 한다.

한편 피해자의 심리를 이해하지 않으면 학교폭력을 줄일 수 없다. 성격발달이론의 에릭슨은 동일성 혹은 정체감(identity)이 형성되는 시기를 12~18세로 보았다. 도덕성발달이론의 콜버그는 착한 아이 지향 인습수준을 12~17세로 보고 있다. 이 시기는 중·고등학생의 연령대인데 메슬로우의 동기이론 중 소속감(사회성)의 욕구와도 관련 있다. 청소년들은 그가 속한 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하면서도 자신을 제어할 능력은 부족하다.

가해학생이 폭력조직의 일원인 경우 윗선에서 시키는 연습의 차원에서, 개별적 사디스트 (sadist, 가학 성애자) 는 본능에 따라 심심풀이로 폭행을 한다. 괴롭힘의 대상으로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주변으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외톨이를 선택한다. 왕따 현상은 지난 4월2일 창원의 한 공장에서 동료를 살해한 40대 직장인에도 존재한다. 피해자의 특이한 성격이나 행동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만 가해자에게 항상 표적으로 노출된다는 점이 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피해자가 어느 날 갑자기 가해자로 돌변할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인성교육이나 체육교육이 가해학생에게 다소 교정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피해학생을 보호하지 못한다. 당장 필요한 일은 피해학생이 SOS신호를 손쉽게 보낼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와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구조신호가 포착되면 시급히 가해학생을 다른 곳으로 격리시키던지, 피해학생에게 피난처를 마련해 주어야 학교폭력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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