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법정에서 만난 세상]하얀 거짓말의 덫

유기웅 춘천지법 판사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1872년 발행된 소설 '악령'에서 '인생에 있어 무엇보다 어려운 일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1872년 당시에나 2013년 현재에나 도스토옙스키의 위 말은 유효해 보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보인다. 올해만 해도 수많은 정치인, 연예인이 좋지 않은 사건에 연루될 때마다 이런저런 변명으로 일관하였지만, 거짓말로 드러난 것이 대부분이었고,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말았다. 이렇듯 대부분의 거짓말은 탄로가 나면 비난을 받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마련이다. 나 또한 부끄럽지만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하였음은 물론이다. 오죽하면 세상에서 가장 큰 거짓말은 '평생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거짓말 중에서도 유독 좋은 것으로 인식되는 거짓말이 있다. 이른바 '하얀 거짓말'이라는 것인데 타인을 이롭게 할 의도로 하는 악의 없는 거짓말을 뜻하며 '선의의 거짓말'이라고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불치병에 걸린 사실을 모르는 환자에게 의사가 완치 가능한 병이라고 거짓말을 하여 환자를 안심시키는 것을 들 수 있다. 하얀 거짓말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최근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90%가 하얀 거짓말이 직장생활 및 인간관계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하였고, 70%는 너무 정직한 직장동료 때문에 고통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하였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하얀 거짓말이 마냥 좋은 결과만을 낳는 것은 아니다. 특히 법정에서는 하얀 거짓말이 선한 의도와 달리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내가 맡은 사건 중에서도 A가 B의 돈을 속여서 가로챘다는 이유로 사기죄로 재판을 받게 되자 A의 친구인 C가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A가 받은 돈은 B에게 빌려준 것을 돌려받은 것이므로 속여서 가로챈 것이 아니라고 허위 증언한 일이 있었다. 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충분하였기에 C의 증언은 믿을 수 없었고, 선서하고 거짓말을 한 이상 C는 위증죄로 구속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또 다른 사건에서는 D가 음주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낸 다음 도주하였으나 피해자의 신고로 붙잡힐 위기에 처하자 동승자인 친구 E에게 대신 운전을 하였다고 진술을 부탁한 일이 있었다. E는 D를 위하여 자신이 운전한 것처럼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았으나 차량 블랙박스, CCTV 영상 등 증거가 명백하였기에 결국 D는 음주운전에 범인도피 교사죄가 추가되어 더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되었고 E도 범인도피죄로 처벌을 받기에 이르렀다.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요즘 세상에서는 한두 사람이 말을 맞추는 정도로는 진실을 감출 수 없게 된 것이다.

C와 E는 친구를 이롭게 할 의도로 거짓말을 하였지만, 그 거짓말은 친구를 구제하지도 못하였고 자신들 역시 범죄자가 되어 처벌을 받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치닫고 말았다. 그리고 과연 하얀 거짓말 이후에 친구와의 우정이 더욱 돈독해졌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친구의 부탁으로 거짓말을 하였다가 처벌을 받게 되었으니 친구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으로 사이가 예전 같지는 않을 듯 싶다. 우리나라는 인정과 의리를 중시하는 한국적 정서 탓에 다른 나라에 비하여 거짓말로 인한 범죄가 많고, 선의의 거짓말로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부족하다. 진정 타인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타인의 치부를 거짓으로 감싸주려 하기보다는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할 수 있도록 곁에서 진심 어린 조언을 해 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 당장은 서로의 얼굴을 붉히는 일이 생길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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