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Week+100년의 전통, 강원의 맛]한 장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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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평창 '메밀나라'

◇전통방식을 고수하는 한임직 '메밀나라'대표는 메밀부치기 맛의 비결은 김치와 손맛이라고 강조한다. 오른쪽 위 사진은 메밀전병. 평창=오윤석기자

세로로 쭉 찢은 배추김치 서너 가닥

잘 달궈진 솥뚜껑에 펼쳐놓고

그 사이 부추 몇 가닥 놓은 뒤

묽은 메밀반죽 한 국자 떠

그 위에 뿌리고 잠시 후 뒤집으면…

시집와 시장서 메밀부치기만 40년째

매년 배추 5,000포기 담그는데

작년 담근 김장김치 벌써 바닥나

연간 메밀만 40kg짜리 200부대

입소문 나며 경기.충북서 택배 주문

평창올림픽시장에 가면 40년째 메밀부치기와 메밀전병을 만들고 있는 한임직(71) '메밀나라' 대표를 만날 수 있다. 전남 벌교에서 시집 와 메밀음식이라곤 메밀묵밖에 모르던 새댁은 가난한 집에서 2남4녀를 키우느라 시장 한 켠 비닐을 둘러친 노점 좌판 연탄화덕 위에서 메밀부치기를 부치기 시작했다. 찐빵도 만들어 팔고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항상 메밀부치기를 부쳤다. 40년 전에는 메밀부치기를 부치던 아낙네 중 한씨가 가장 막내였으나 이젠 10곳이나 되는 시장 내 부치기 업소 사장 중 최연장자가 됐다.

당시엔 부치기 2장에 500~1,000원을 받았는데 지금은 3장에 2,000원이니 크게 오르진 않은 것 같다. 세로로 쭉 찢은 배추김치 서너 가닥을 잘 달궈진 솥뚜껑에 펼쳐놓고 그 사이에 부추 몇 가닥을 놓은 뒤 메밀반죽을 한 국자 떠 그 위에 뿌리고 잠시 후 뒤집으면 메밀부치기 한 장이 완성된다. 참나물이 나오면 부추 대신 쓰고 김장철에는 쪽파를 사용한다. 배추김치는 연중 사용하기 때문에 늘 넉넉히 있어야 하는데 김장철이면 배추 5,000포기로 김장을 담근다.

장사를 중단할 수 없어 사람을 사고 가까이 사는 자녀 4남매가 몰려와 1주일 걸려 김장을 하지만 지난해 담근 김장김치가 벌써 바닥이 나 며칠 전 배추 150포기를 절여 놓았다. 메밀부치기와 메밀전병 맛의 비결이 뭐냐고 묻자 한씨는 “따로 없다. 손맛이다”라고 하나 3년전부터 어머니를 도와 일하고 있는 맏딸 김영숙(48)씨가 “김치 맛이 좌우하고 메밀반죽을 묽게 하는 등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덕분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어머니를 돕다가 어머니가 일을 그만두면 자신도 부치기 장사를 접으려 했다는 딸 영숙씨는 그새 어머니 못잖게 부치기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다. 김치는 싱싱함을 유지하기 위해 젓갈을 쓰는 대신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마늘, 생강, 고춧가루만 양념으로 사용한다. 한씨가 워낙 전통방식을 고집하는 바람에 김칫독을 땅에 묻지 않고 저온저장고에 보관한 것도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았다. 국산 메밀은 구하기도 힘들고 가격도 비싸 쓰지 못하고 중국산을 사용하지만 대신 다른 재료를 혼합하지 않고 100% 메밀만 쓰고 전기맷돌을 이용해 아침마다 그날 쓸 만큼의 양을 갈아낸다. 메밀만 40㎏짜리로 연간 200부대 정도 쓴다.

입소문이 나며 택배 주문 물량이 전체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으나 평창의 교통사정이 좋지 않아 신속배달을 위해 승용차로 왕복 1시간 걸리는 장평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서 경기 안산 등으로 부치는 경우도 있고, 1시간30분 거리의 충북 충주로 가는 버스가 없어 택배밖에 할 수 없어 속이 상한다.

재고가 남으면 다음 날 오전에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내놓는다. 이렇게 하다 보니 장날이면 고추 등 집에서 키운 채소류를 슬그머니 가져다 놓은 단골들이 많다.

직업병(?) 탓에 팔이 아파 “70세까지만 하곤 (장사를) 안 한다”고 노래 부르듯 했으나 여전히 국자와 뒤집개를 손에서 놓지 못한 채 가스 불판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라며 웃는 한씨의 표정에서 '힘든 일이지만 즐기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창=정익기기자igjung@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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