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7년 메밀면 가게 문 열어
엔지니어 출신 아들이 代 이어
다른 막국수집 기웃거리지 않고
사 먹어보지도 않을 만큼 자신
맛·분위기 해치지 않고 고스란히
40년 단골손님 70대 노인이
먹고 나서며 한마디 한다
“그대로 잘 지켜줘 고맙네”
“옛 맛과 분위기를 지켜야죠.”
춘천시 소양로에서 실비막국수를 운영하는 이창훈(55) 대표는 부모님께 전수받은 맛과 처음 문을 열었을 때의 가게 분위기를 지키는 것이 목표다. 이 대표는 1967년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대구에서 춘천으로 이사했다. 짐도 채 풀지 못한 상태에서 부모님이 현재 요선동에 작은 가게를 열고 손님을 맞이한 기억이 생생하다. 2평 남짓한 공간에 주방을 만들고 요샛말로 테이크아웃(Take-Out)만 가능한 메밀면 장사를 시작했다. 그 메밀면은 여러 채소, 양념 등과 버무려진 국수였다. 아침 일찍 문이 열리면 이 메밀면을 먹으려는 사람들이 썰물처럼 몰려왔고 밤 늦은 시간 문을 닫을 때까지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그릇은 다시 돌려줘야 했기에 손님들은 화장실 앞이나 길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일부 부자 손님은 자가용에서 국수를 먹기도 했다.
이 메밀면은 후에 막국수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춘천에는 막국수 집이 이씨의 부모님 가게와 약사동 한 곳 등 단 2개에 불과해 그야말로 지역에서 가장 장사 잘되는 집으로 유명했다. 이후 우후죽순으로 막국수 점포들이 생겨나며 현재는 춘천에만 180여곳에 이른다.
이 대표는 1980년대 후반부터 가업을 잇기 시작했다. 한양대 전자공학과 석사 출신으로 수도권 기업에서 고액 연봉을 받은 엔지니어였지만 음식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 더 강했다. 요리사인 부모님의 피를 물려받아서일까 이 대표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2000년대 초반부터 홀로서기에 나섰다. 워낙 지역에서 유명한 맛집이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수많은 유사점포로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졌다. 그래도 다른 음식점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손님이 많다는 음식점을 기웃거리지 않았고, '저 집 막국수 맛은 어떨까'하며 사 먹어보지도 않았다. 그만큼 본인이 전수받은 막국수 맛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옛 맛, 옛 모습 그대로'를 원칙으로 삼는다. 그동안 다른 메뉴를 개발하거나 기존 음식에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았다. 노력이 부족하거나 귀찮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위의 괜한 트집도 있다. 하지만 이 맛과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 고스란히 남겨두는 것이 부모님에 대한 존경과 함께 실비막국수가 여전히 서민들에게 사랑받는 맛집으로 기억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대표의 이런 고집은 단골들, 또 새로운 손님들에게도 인정받고 있다. 여전히 소양로에서 멀디 먼 외곽지역에서도 허기를 채우기 위해 오랜 벗들이 찾아오고 있다. 특히 2009년 춘천~서울고속도로, 2010년 경춘선 복선전철 등 수도권과의 교통망이 개선되면서 손님은 더 늘어 점심시간에는 대기표를 받아도 맛도 보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래도 이 대표는 지금 점포를 확장하거나 메뉴판에 새 음식을 넣지 않을 생각이다.
오늘도 40년 단골손님인 70대 노인은 막국수를 먹고 나서면서 한 마디 한다. “옛 맛과 분위기를 그대로 잘 지켜줘서 고맙다.”
하위윤기자 faw4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