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법정에서 만난 세상]라과디아 판사의 판결

손주철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부장판사

미국 뉴욕시에 '라과디아 공항'이 있다. 이 공항의 이름은 사람의 이름을 따라서 붙인 것인데, 바로 '라과디아 판사'다. 1935년 1월 추운 겨울날 라과디아 판사가 재판을 시작한다. 잠시 후 더럽고 다 떨어진 옷을 입은 할머니가 빵을 훔친 죄목으로 나타난다 '당신이 빵을 훔쳤소?' 하고 물으니 딸은 병들었고 사위는 가족을 버리고 도망갔고 손녀 둘은 굶고 있어서 빵을 훔쳤다고 대답한다. 빵을 도둑맞은 식품가게 주인에게 물으니 '불쌍하지만 본보기로 처벌하여 달라'고 한다. 라과디아 판사는 고민을 한다. 법에 따르면 할머니는 죄를 지었으니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나 빵을 훔친 이유를 생각해 보니 처벌한다는 것은 정의에 어긋나는 것 같다. 고민 끝에 라과디아 판사는 '10달러의 벌금형이나 10일간 감옥에 갈 것'을 판결한다. 라과디아 판사가 할머니의 어려운 사정을 생각해서 무죄를 선고할 것으로 알았던 방청객들이 당황해한다. 그런데 라과디아 판사는 자신의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 집행관에게 그 할머니의 벌금을 대신 갚도록 주었다. 그리고서 그는 웅성거리는 방청석을 향하여 “손녀를 위해 빵을 훔친 할머니와 함께 사는 이웃으로 당신들에게 각자 50센트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하면서 집행관에게 벌금을 걷도록 한다. 이렇게 모은 돈 47.50달러 가운데 50센트는 식품가게 주인에게 빵값으로 주고 나머지 47달러를 할머니에게 주었다. 벌금을 낸 방청객들은 모두 일어나 판사에게 박수를 보냈다.

라과디아 판사가 법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파격적이었다. 당시의 미국법이라고 해도 판사 자신이 피고인의 벌금을 대신 내주고 방청객에게 벌금을 과할 수 있는 근거가 될 법령은 없었을 것이다. 라과디아 판사의 행동은 어느 법에서도 정한 바가 없는 한마디로 법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라과디아 판사의 판결과 판결 이후에 보여준 행동이 판결을 지켜본 방청객에도 이의 없이 받아들여지고 또 시간이 흘러서도 지혜로운 판결로 일컬어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판사가 피고인이 범죄를 저지르게 된 환경과 동기를 진지하게 고려하여 양형을 하였고, 나아가 재판을 지켜본 사람들이 자신의 양형을 납득할 수 있도록 행동으로 직접 보여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라과디아 판사가 할머니의 유무죄를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할머니가 타인의 물건을 절취한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절도 사건으로만 보았다면 적당한 형을 정하여 선고하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형법은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과 같은 여러 사정을 고려해 양형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양형위원회에서 정한 양형기준도 마련되어 있다. 균형있는 양형을 할 수 있는 제도적인 기초는 이미 마련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편, 양형 기준은 범죄의 유형을 분석하여 선고할 형의 범위를 정하여 준 것일 뿐 개별 사건에 대한 판사의 진지한 고민까지도 해결하여 둔 것이 아니다. 제도의 틀만을 지키려고 하다 보면 자칫 양형 기준에는 맞지만 기계적인 판결을 하였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제는 제도의 틀을 넘어 진지한 고민을 통해 적절한 양형을 하였음을 보여주고 양형의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이미 90년이 지난 다른 나라의 법정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라과디아 판사가 법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우리 형사재판에서도 한번쯤 그 의미를 되새겨 볼 만하다.

<외부 기고는 본보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피플&피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