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강원포럼]생각하지 않는 학생들

김대희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처음 한문 수업 시간에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내용이다. 물론 나는 1960년대 후반에 태어났기 때문에 어릴 때에도 어느 정도의 한문은 익히고 있었다. 그리고 한문 공부를 비교적 즐겨 했다. 그런데 내가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적지 않게 놀란 부분이 바로 로스쿨 학생들의 한문 실력이었다.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학생(로스쿨에서는 소위 생비법(生非法)이라고 한다)은 말할 것도 없고, 법대를 나온 학생들마저 우리 세대에 비해 한문을 모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점을 느꼈다.

나의 경우 우스운 이야기지만,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전공 수업을 하면서 당시 친구가 소위 선행(先行)학습을 해 지난 밤에 민사소송법에 나오는 '개판력'을 공부했다고 했다. 그때에는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모르고 그 친구를 부러워했다. 후에 드러났지만 그것은 기판력(旣判力)이었다. 그 친구가 지금 현직 부장판사로 근무하고 있다.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학생은 모르니까 배우는 것이다. 나는 공자(孔子) 선생님을 좋아한다. 최근 개인적인 인연으로 성경을 알기 전까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책을 꼽으라고 하면 거리낌 없이 논어를 선택했다. 이야기를 지금부터 하려고 한다. 논어와 함께하는 로스쿨 학생(좀 더 넓게 봐 공부하는 모든 학생이라고 봐도 좋겠다)들의 공부 방법을 이야기해 보고 싶다. “공자님이 말씀하셨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남는 것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爲政 15장)).” 나는 한국의 중등 교육 시스템을 좋아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배우기만 하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더욱이 학원에서 학생들은 배우기만 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연습을 하지 않는다. 공자님의 말씀처럼 배우고 나서는 또는 배우기 전에 학생은 생각을 해야 한다. 내가 오늘 무엇을 배웠고, 또 무엇을 배울 것인지, 배운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것이 내 인생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나는 그것을 배워 어떠한 인생을 살 것인지 등. 배우는 시간이 1시간이면 1시간은 생각을 해야 한다. 로스쿨생이 민법 책을 1시간 읽으면서 판례를 공부했다면 1시간 동안 왜 그러한 사실관계에서 그러한 판례가 나오게 됐는지 생각해야 한다. 논어에 나오는 '罔'이라는 글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으나 긍정적인 의미가 아님은 분명하다. 1시간이 현실적으로 많다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2시간 공부를 하면 반드시 1시간은 생각을 하면서 그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1시간 동안 동네를 산책하면서(그것이 또한 운동방법이기도 하다) 생각을 해야 한다. 내가 사법연수원을 다닐 때 지도교수님(그분은 전직 헌법재판관이시다)이 말씀하셨다. “판사는 야근을 하면 안 돼. 그 시간에 아들 손잡고 동네를 산책하면서 판결문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해야 돼.”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판사들에게 산책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공부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그 1시간을 아까워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그것이 그 '배운 공부'가 자기 것이 되는 지름길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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