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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새 길을 개척하는 선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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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영 평화한국 상임대표 숭실대 겸임교수

“한국은 통일독일이 겪은 어려움을 반복하지 않기 바랍니다. 우리가 잘한 점은 참조하고, 잘못한 점은 대안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통일독일의 초대대통령 바이체커(R. von Weizsacker)가 1990년대 중반 한국 지도자들에게 한 말이다.

금년은 독일 통일 30주년이다. 1990년 10월3일 통일됐다. 이후 독일은 통합 과정을 3단계로 추진했다. 1년 내 정치통합, 10년 내 경제통합, 30년 내 사회통합을 진행해 완전통합을 이루고자 했다. 과연 어떻게 진행됐고, 어떤 상황이며, 시사점은 무엇일까?

독일 통일은 저절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분단 이후 서독은 3가지를 추구했다. 국가 능력을 키웠고, 우호적 국제환경을 만들었고, 동독주민의 의식개혁을 이뤄냈다. 초대수상 아데나워(K. Adenauer)는 냉전체제에서 친서방정책(Westpolitik)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으로 안보를 튼튼히 하고, '라인강 기적'으로 국력을 신장했다. 또한 2인자외교(No.2 Diplomacy)를 전개해 미국과 프랑스를 국제사회와 유럽사회의 1인자로 각각 내세워 신뢰를 회복하고 결정적 시기에 지지를 이끌어냈다. 브란트 수상은 1972년 동서독기본합의서 체결 후 상호방문과 물질지원을 확대해 서독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결국 서독의 자유와 풍요를 체험한 동독주민이 서독체제로의 편입을 선택함으로써 통일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통일 후 정치통합은 1년 만에 피 흘리지 않고 잘 이뤄졌다. 독일은 정치체제 통합과 수도를 본에서 베를린으로 이전해 통일국가의 정치적 면모를 확립했다. 경제통합도 개인소득 측면에서 서독의 90% 수준에 이르러 상당 정도 이뤄졌다. 그러나 사회통합은 아직도 요원한 실정이다. 수년 전 회의에서 구동독학자가 동독주민을 2등국민으로 취급하는 통일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울면서 분노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게으른 동독인'(Ossi), '오만한 서독인'(Wessi). 그런 상호인식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다시 30년을 기다리며 노력해야 한단다.

우리도 평화통일을 위해 서독처럼 3가지를 잘 구비해야 한다. 그러나 통합 수순은 달리해야 한다. 통일을 이뤄낼 국가 능력, 통일에 대한 우호적 국제 지지, 통일을 주도할 국민 의지를 키워야 한다. 통일 수순은 선 통합, 후 통일이 돼야 한다. 북한주민의 신뢰를 이끌어 내는 사회통합으로 시작해서 경제통합을 거쳐 하나의 정치권력을 이뤄내는 수순이 돼야 한다.

나아가 창의적 상상력을 키우는 일은 절대 중요하다. 우리 통일은 단순히 북한에 소비지향적 시장화와 사분오열된 극단적 자유화를 확산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족사를 넘어 세계사적 사건임을 유념해야 한다. 작게는 민족분단 75년을 극복하고 선진국 추격발전의 압축성장전략 한계를 넘어서 100년 앞을 내다보는 국가구상이 돼야 한다. 크게는 동아시아 이중삼각대결구도의 종언, 서양위주문명의 종언, 도구사용문화의 종언 상황에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 가는 문명사적 선도국가의 시작이 돼야 한다.

10월3일은 개천절이다. 하늘이 열린 날이다.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 통일대한민국을 꿈꿔 본다! 이제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를 넘어 새 길을 개척하는 선도자(First Mover)가 돼 세계에 빛을 비춰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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