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The 초점]옛 삼척을 복원하자

정희수 삼척상공회의소 회장

북평 떼주고 울진 양보

기력 다한 '어머니 삼척'

알아서 챙겨주지 않아

찬 기운이 절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만추(晩秋)다. 어느덧 올해도 한 달여를 남겨두고 있다. 태를 묻고 자란 삼척의 상공인으로서 '잘사는 내 고향 삼척'이 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석회석, 석탄 등 풍부한 지하자원으로 국가산업 근대화에 큰 기여를 한 삼척은 석탄산업합리화, 건설 경기 둔화 등의 직간접 영향으로 인구 감소와 지역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심지어 소멸 지역에 이름이 오르내리는가 하면 도시 경쟁력에서도 몇몇 군(郡)지역과 비교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삼척은 도내 최초로 인구 30만명을 돌파했던 지역이다. 삼척군 시절이던 1980년 4월 번화가였던 북평읍을 떼어줘 신생 동해시의 중심이 됐다. 이듬해 7월에는 장성읍과 황지읍이 통합돼 태백시로 독립했다. 30만명이던 인구는 20만명으로, 또 14만명 수준으로 감소했다. 오늘 삼척은 인구 6만 6,000명에 턱걸이를 하고 있다. 삼척이 파란만장한 변화를 겪을 무렵 춘천, 원주, 강릉 같은 도시 인구는 10만명대 초·중반이었다.

인구가 전부는 아니지만 튼튼한 경제 공동체, 내수시장을 위해 어느 정도 인구는 필수다. 원덕읍 노경리 구석기 유적으로 그때부터 삼척에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 유물도 곳곳에서 발견됐다. 삼한시대를 거쳐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에 삼척군으로 개칭된 후 995년 고려 성종 14년 지방행정구역이 10도 체제로 개편되면서 삼척군은 척주(陟州)로 승격됐다 한다. 이후 삼척현으로 현령이 파견되기도 했단다. 1896년 8월4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13도제가 실시되면서 강원도 삼척군이 됐다.

삼척의 역사는 참으로 오래고, 또 깊다. 하지만 과거가 오늘과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시민 의식도, 산업 구조도, 국가 발전 방향도 획일적이지 않다. 변화무쌍하다.

내 고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남쪽으로 울진, 서쪽으로 태백, 북쪽으로 북평을 아우르는 옛 삼척은 생각만해도 웅혼한 기상이 솟는다. 북평을 떼어 주고, 장성과 황지를 독립시키고, 울진도 양보한 '어머니 삼척'은 정작 기력을 잃고 흔들리고 있다. LNG인수기지, 화력발전소 등 대규모 사업에도 불구하고 체감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옛 삼척 복원 프로젝트'를 제언(提言)한다. 지난날 폭발적인 경제 활동과 역동적인 지역 발전의 생생한 모습을 재생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역사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자료를 집대성해 진짜 삼척의 실체를 확립하고 다가 올 미래에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자.

삼척이 가진 오늘의 잠재력과 역량을 직시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영국의 역사학자 카(E.H Carr)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과거를 돌아보고 삼척의 저력을 확인해 오늘 마주한 자원을 점검하고 비전을 새롭게 설정하는 기회를 만들자.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미래 삼척의 갈 길을 묻고, 준비하고, 개척해야 한다.

민관이 함께 머리를 맞대자. 개인적 이해 관계, 패배주의, 무기력을 떨치자. 다양한 지역 개발 사업의 열매가 인근 지역이 아닌 삼척에 떨어지고 싹을 틔우고, 또 다른 수확을 거둘 수 있는 방안을 찾자. 잘나가던 시절의 환상에 빠져 세상 탓만 하며, 누군가 기력이 다한 '어머니 삼척'을 챙기겠지 하는 안일함은 무한 경쟁 시대에서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옛 삼척 복원 프로젝트'를 통해 현실을 꿰뚫고 미래를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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