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30만년 전쯤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사피엔스는 13만여년 전쯤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라시아로, 6만5,000년 전쯤 호주 대륙으로, 1만5,000년 전쯤 미주 대륙으로 이주했다. 이로써 사피엔스는 지구 전역을 지배하게 됐다.
사피엔스는 이렇듯 넓은 물리적 지구를 정복했지만 오늘날 대다수는 지구의 극히 일부분인 도시에 살고 있다. 전 세계 현생 인류의 56%가 도시에 살고 있는데 이러한 도시 집중화는 18세기 중엽 시작된 산업혁명 이후 사람들이 공장과 사무실이라는 일터에 모여서 생산 활동을 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우리나라도 1960년대 이후 진행된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도시 집중화가 이뤄져 현재 인구의 80%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과 떨어져 인간끼리만 모여 삶으로써 도리어 인간성이 상실되고 감염병에 취약해졌다. 이번 코로나19 팬데믹도 도시에 밀집돼 살고 있는 인간들끼리의 전염이 용이해졌기 때문이다.
지구 전역을 지배하기 시작한 지 1만5,000여 년이 지난 지금 사피엔스는 다시금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무엇보다 현생 사피엔스는 예전의 인간이 아니다. 지난번 칼럼에서 얘기한 것처럼 코로나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호모 사피엔스는 로보 사피엔스, 포노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로의 진화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이들 신생 인류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유기체로서의 한계를 넘은 디지털 휴먼이라고 하겠다.
사피엔스의 신생 인류인 디지털 휴먼은 드디어 새로운 이주를 시작했다. 이른바 0과 1로 이뤄진 가상의 디지털세계, 이른바 메타버스로의 이주다. '메타버스' 제목의 베스트셀러를 최근 출판한 강원대 김상균 교수에 의하면 메타버스는 '현실의 물리적 지구를 초월하거나 지구 공간의 기능을 확장해 주는 디지털 환경의 세상'이다. 이는 한때 전 세계를 열광시킨 포켓몬고 게임 같은 증강현실이나 구글 어스와 같이 실제 현실세계를 보여주는 거울 세계,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네트워크를 활용해 일상을 기록하는 라이프 로깅(Life logging)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로블록스'나 '제페토'와 같이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만들어낸 3차원의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다. 이는 3차원의 가상세계에서 개인 아바타를 이용해 자신의 세계와 게임을 만들어 친구들과 공유하도록 하는 서비스다. 이들 서비스는 게임과 오락만 하는 것이 아니라 판매와 소비도 하는 물리적 현실과 유사한 가상현실이다. 최근 뉴욕 증시에 상장된 로블록스의 시가 총액은 상장 당일 종가 기준 무려 43조원이 넘는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물리적 접촉이 줄어들고 메타버스에서의 활동 비중이 크게 증가하게 됐다. 코로나 사태가 마무리돼도 메타버스로의 이주는 계속될 것이다. 이에 따라 사피엔스 인류가 도시의 좁은 공간에 거주할 필요성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이렇듯 신생 인류는 가상세계인 메타버스로의 이주와 함께 현실 세계에서도 도시를 떠나 전원으로 이주하려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메타버스에서 인간 간의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고 자연과의 관계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메타버스에만 몰입해 도리어 현실 생활을 황폐하게 하고 인간관계 단절을 가져올 수도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사피엔스 인류가 새로운 이주를 시작하면서 직면하게 될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