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계속 아파트라고 하는 건물 속에서 살았다. 각각의 성냥갑 속에서 사람들이 먹고 자는 모습이 어쩌면 닭장차에 갇혀 있는 닭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6년 전 아내와 많은 상의와 싸움 끝에 일단 한 2~3년 도시를 떠나 전원의 단독주택에서 살아 보기로 했다. 마침 두 마리의 강아지 식구를 아침저녁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산책시키는 게 이웃들의 눈치도 보이던 터였다. 말이 전원이지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전세로 빌린 집도 수십 년 된 농가 주택이었다. 그나마 필자는 초등학교 시절엔 농촌에서 자랐지만 아내는 평생 도시를 떠나 본 적이 없어 처음엔 고구마밭과 감자밭을 구분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많은 문화충격을 받았다. 그러다가 점차 사람들과 어울리고 자연 속에 사는 게 좋아 전세로 살던 마을에 집을 짓고 인생 후반전 생활을 하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면 송이(강아지 식구 중 제일 큰 애)와 동네 산책을 하고 나서 집 주변과 텃밭에서 풀을 뽑는 등의 소일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말이 텃밭이지 과수원 겸 정원이다. 2년 전에 돌배나무와 매실나무 등을 섞어 심었는데 올봄에 드디어 무릉도원을 만들었다. 지난 가을에 심은 마늘은 한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힘차게 올라오고 있다. 신선한 공기와 상쾌한 새들의 노랫소리는 덤이다.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감동의 연속이다. 이웃들과 제철 먹거리를 나누는 재미도 쏠쏠하다.
덕분에 코로나 상황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도리어 코로나로 인해 시골 삶의 가치를 확실히 깨닫게 됐다. 강의실에서 대면 수업을 할 수 없게 되면서 2층의 '집 연구실'에서 주로 온라인강의 하고 책도 쓰고 논문도 쓰는데, 답답하면 창밖으로 강과 숲을 내다보기도 하고 때때로 텃밭·정원에 나가 소일을 한다. 그러다 보니 교수 본분으로서 하는 일의 생산성이 학교 연구실에서보다 높고 행복하다. 지난해 국제학술지 논문과 함께 '코로나 이후의 새로운 세계'를 주제로 한두 권의 저서를 한국과 해외에서 출판했다. 도시의 아파트 좁은 방에서는 불가능했을 터다.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의 80% 이상이 도시에, 50%가 수도권에, 62%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 도시로, 수도권으로, 아파트로의 집중화는 1960년대 이후 계속된 현상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전국의 농어민들은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는 도시로 이주했다. 대량생산 방식으로 찍어 내는 아파트는 이주 도시민들에게 최적의 거주 공간이 됐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일하고, 공부하고, 놀고, 쇼핑하는 방식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뀌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종식된 후에도 예전의 삶으로 온전히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도리어 디지털 4차 산업혁명은 더욱 빨라지면서 이러한 '온택(온라인콘택트)' 방식의 삶과 메타버스(가상현실)로의 이주는 계속될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점점 더 도시의 아파트에서 사는 것이 효율적이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선진국의 경우 코로나 이후 도심보다 외곽의 주택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도넛 현상이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도리어 서울, 그것도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이는 정책의 실패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번 기회에 서울에서 지방으로, 도심에서 교외로,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의 이주를 도와줄 수 있는 국토 리셋(Reset) 정책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왕이면 수도권과 인접해 있고, 자연환경이 가장 뛰어난 강원도가 선도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