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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대역(代役)'

미국의 문호 마크 트웨인은 12~13세기에 북유럽에서 전해 오던 ‘왕자와 시종'이라는 전설을 바탕으로 사회풍자소설 ‘왕자와 거지(The Prince and the Pauper)'를 발표했다. 영국의 1547년을 배경으로 서로 외모가 닮은 왕자와 거지가 장난삼아 옷을 바꿔 입은 후 각자 다른 삶을 체험하면서 겉모습과 실제의 차이, 부당한 권력에 희생되는 백성들의 어려움을 담았다. 신분과 역할 등 모든 것이 뒤바뀌면서 겪는 스토리를 훌륭한 상상력으로 엮어낸 작품이라는 평가다. ▼“그깟 사대의 명분이 뭐라고 도대체 뭐길래 2만의 군사를 사지로 내몰라는 것이요. 임금이라면, 백성이 지아비라 부르는 왕이라면 빼앗고 훔치고 빌어먹을지언정 내 그들을 살려야 겠소.” 이병헌이 주연을 맡아 2012년 개봉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명대사다. 권력 다툼과 붕당정치로 혼란이 극에 달한 광해군 8년 왕 ‘광해'를 대신해 가슴 졸이며 왕의 대역을 하는 만담꾼이 가짜지만 진정한 군주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실제 권력자의 대역은 영화와는 의미가 다르다. 약 30년 동안 이라크를 철권통치한 사담 후세인의 장남으로 한때 유력한 후계자였던 우다이 후세인은 라티프 야히아라는 사람을 대역으로 뒀다. 야히아는 1987년 대통령궁으로 호출된 뒤 우다이의 대역을 강요받자 거부했지만 4일간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결국 우다이의 얼굴대로 성형수술을 하고 4년 동안 우다이 행세를 했다. 이 일은 2013년 6월 할리우드 영화 ‘데블스 더블'로 각색돼 개봉되기도 했다. ▼최근 일부 외신 등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사망설, 대역설을 보도해 진위 여부에 관심이 집중됐다. 국가정보원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김정은의 신변이상설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북한 최고 권력자의 가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비극이다. 그만큼 숨기고 있거나 피하고 싶은 위협이 많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대역 논란이 나오지 않는 북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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