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음향 유실된 65년 전 영화에 생명력 불어넣은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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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문화재단 기획공연 ‘이국정원'.

한국·홍콩 첫 합작영화 이국정원

춘천서 ‘라이브 더빙쇼''로 선보여

다섯 배우·연주가·폴리아티스트

과묵한 화면 소리 입혀 감동 선사

‘사람의 상상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지난 14일 춘천문화예술회관 무대에 오른 공연을 보면서 불현듯 뇌리를 스친 생각이다. 무대 중앙에 설치된 화면에서는 최초의 한국·홍콩 합작영화이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컬러 영화 ‘이국정원'(1957년 作)이 띄워졌다. 또 무대 왼쪽에는 드럼부터 피아노, 기타, 아코디언, 바이올린 연주가가 앉았다. 스크린 앞에는 다섯 명의 배우가 섰고 무대 오른쪽에는 폴리아티스트가 각종 도구들과 함께 자리했다.

이국정원은 1957년 당시 김진규, 윤일봉, 최무룡 등 당대 최고 배우들이 출연한 멜로 영화로 화제를 모았지만 필름이 소실됐고 수십년이 지나서야 발견됐다. 빛이 바랬고 소리는 유실된 상태였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정교한 리마스터링을 했지만 실제 이날 본 영화는 곳곳이 지직거리는 모습이었고 화질도 나빴다.

하지만 영화를 감상하는 데는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처음에는 화면과 화면 앞 연주자, 뮤지컬 배우, 폴리아티스트를 번갈아 보면서 시선이 분산됐지만 이내 영화와 공연이 결합된 독특한 형태의 예술에 매료됐다. 과묵한 영화에 각종 소리가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원곡을 알 수 없지만 화면과 어울리는 각종 악기들의 연주는 작품에 빠져들게 도왔다. 배우들의 대사도 현대와 어울리게 손 본 듯 익살스러웠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박영수 폴리아티스트의 움직임이었다. 그가 입으로 부는 바람과 밥솥 뚜껑을 닫고 신문을 움직이고 코트를 벗는 손짓에 택시 멈추는 소리, 문을 여닫는 소리, 구두를 신고 걷는 소리, 천둥이 치는 소리가 탄생, 화면과 맞아떨어졌다.

상상력으로 시작된 작품이 65년이 지나 다시 상상력을 덧입고 탄생한 모습에 관객 모두 감동 어린 긴 호흡의 탄성과 함께 뜨거운 박수갈채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현정기자 together@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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