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출생 서울대 법대 진학 모의재판서 전두환 무기징역 선고
사시 합격후 檢 요직 거쳐…박근혜 정부 시절 외압폭로 좌천도
문 정부서 검찰총장 화려한 부활…조국 사태 계기로 정치 입문
우리나라의 향후 5년을 책임질 대통령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당선됐다. 지난해 6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정계에 입문한 지 9개월 만이다. 정치가 ‘정치인’들 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입증한 가장 강력한 사례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로써 보수 진영을 재건하면서 한국 정치사상 최초의 ‘0’선 대통령이 된 윤 당선자는 이제 통합정치 완수의 과제까지 떠안게 되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8전 9기’ 늦깎이 검사…대형 사건 도맡으며 승승장구
윤 당선자는 1960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대학교수 부부의 1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한 때 경제학자의 꿈을 꾸기도 했지만 부친의 권유로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어린 시절 외가가 있는 강릉에 자주 놀러갔던 윤 당선자는 5·18 민주화운동 직전 서울대 학생회관에서 열린 교내 모의재판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뒤에도 석달간 강릉으로 피신한 일화는 유명하다.
대학 졸업 후 ‘8전9기’ 끝에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사법연수원 23기 수료후 검사로 임용됐다. 동기로는 주광덕 전 의원, 박범계 법무부장관, 강용석 변호사, 조윤선 전 장관 등이 있다.
1994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대구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1996년에 춘천지검 강릉지청, 1997~1998년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일하다 1999년 김대중 정부 시절 서울 중앙지검으로 자리를 옮겼다.
검사 시절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2002년 한 때 사직 후 대형 로펌인 법무법인 태평양의 변호사로 일하기도 한 윤 당선자는 1년 만에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친정으로 복귀한 뒤 승승장구했다. 2003년 SK 분식회계 사건과 불법 대선자금 사건을 시작으로 현대차그룹 비리 사건,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 BBK 특검, 부산저축은행 사건, 국정원 댓글 사건 등을 맡았다. 모두 우리나라를 뒤 흔든 정재계 비리사건들이다.
매 사건마다 선 굵은 수사 스타일로 전 검찰총장 등 선배들의 총애를 받아 대형 사건 수사마다 차출됐고, 그 덕분에 대검 중수부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요직을 차근차근 거칠 수 있었다.
■ 정권 눈밖에 나 4년간 외곽… 탄핵정국에 화려한 부활
윤 당선자가 국민들에게 각인되며 스타 검사로 이름을 알린 사건은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 댓글 사건이다. 당시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정원 댓글 수사에 외압이 있었다’는 폭로와 함께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면서다. 이 같은 모습에 윤 당선자는 사실상 퇴직 종용 코스로 일컬어지는 지방 고검 검사로 좌천돼 4년여간 외곽을 떠돌았다. 그 기간 윤 당선자는 부당한 압력에 굴하지 않는 ‘강골 검사’ 이미지를 갖게 됐고 2016년 탄핵 정국을 맞아 최순실 특검 수사팀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2017년에는 서울중앙지검 검사장으로 ‘다스(DAS) 의혹과 사법농단 의혹 수사를 하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각각 구속기소해 재판에 넘겼다. 또 삼성 수사를 지휘하며 삼성물산 합병 찬성 압력을 넣은 혐의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도 소환해 3일 만에 구속했다.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일가에는 430억원 상당의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기소하며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이로써 2019년에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까지 이르면서 현 여당(더불어민주당)의 강력한 정권유지 세력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 수많은 구설수 속 ‘당당’… 지지율은 ‘탄탄’
하지만 이른바 ‘조국 사태’는 결과적으로 윤 당선자를 오늘의 대통령 당선자가 되게 한 가장 큰 사건이 됐다.
검찰의 수장으로 취임할 당시 “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정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당부를 자신의 소신대로 행동에 옮기면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밀어붙였다. 여기에 조 전 장관 후임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추·윤 갈등’과, 중대범죄수사청 설립을 시도하는 여권과의 정면충돌 등이 겹치면서 현 정권의 ‘동지’에서 ‘적’으로 순식간에 처지가 바뀌었다. 고심하던 윤 당선자는 임기를 4개월 앞둔 지난해 3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며 사퇴했고, 이후 3개월 뒤인 2021년 6월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정치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었다.
여의도 문법에 익숙하지 않았던 윤 당선자는 힘겨운 시행착오를 거치기도 했다. 과감하지만 자극적인 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하는 윤 당선자는 여러차례 구설에 올랐다.
지난해 7월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한 뒤에는 ‘전두환 옹호’ 논란 발언이나 ‘개 사과’ SNS 논란 등이 연이어 터지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또 이준석 당 대표가 없는 상태에서 입당 발표를 하거나, 캠프 리더를 선임하는 등의 모습은 ‘당대표 패싱’으로 비쳐져 불화설을 부추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당성자는 이어진 당내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 후보등의 집중 공세에 당당하게 맞서면서 탄탄한 지지율을 이끌어내는 저력을 과시했다.
무엇보다도 ‘정권 핵심과 맞서 싸워 지지 않았다’는 이미지는 당원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얻는 핵심 요소가 됐다.
■ “반사체 아닌 발광체” 여론조사 결과 그대로 이끌다
윤 당선자는 대선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반사체’가 아닌 ‘발광체’로서의 역량을 이끌어내는데 집중했다.
선거운동기간 초반 가장 취약하다고 지적받았던 토론 능력은 횟수를 거듭할수록 강한 어조와 함께 자신감 있는 모습을 드러내는데 집중했고, 이는 결국 상대적으로 앞서 있는 여론조사 결과가 그대로 득표에 연결되는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윤 당선자는 52세에 12살 연하인 김건희 씨와 결혼했다. 자녀는 없고 반려견 4마리와 반려묘 3마리를 키우고 있다. 좌우명은 ‘즐겁게 일하고, 재미있게 살자’, 존경하는 인물은 윈스턴 처칠이다. 취미와 특기는 음식 만들기, 별명은 ‘엉덩이탐정’ ‘석열이형’ ‘토리 아빠’다.
이무헌·이하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