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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어설픈 정치의 이미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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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권 여성들은 정치적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흰옷을 입곤 한다. 이 패션은 20세기 초 영국과 미국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을 펼친 여성운동가(서프러제트·Suffragette)들이 흰색 옷을 입어 사람들의 주목을 끈 데서 유래됐다. 이들이 입었던 흰옷은 이후 ‘서프러제트 화이트'로 불리며 여성 참정권 운동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서프러제트 화이트처럼 (의도가 있든, 없든) 만들어지거나 형성된 특정한 이미지는 어떠한 정치 구호보다 막강한 힘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손쉽게 각인시키는 역할을 한다.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직을 공식 수락할 때나 미국의 첫 여성 부통령에 오른 카멀라 해리스가 대통령 선거 승리 연설을 할 때 흰색 정장을 입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이미지의 상징화에 성공하게 되면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처럼 어떤 이미지를 볼 때마다 연상(聯想) 기제가 작동하면서 가성비 높은 메시지 전달이 가능하게 된다. 여기에 은유의 격조까지 인정받으면 그럴 듯한 테제로까지 진화될 수 있다. 정치영역에서 이미지를 형성,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홍보수단인 이유다. 하지만 가장 큰 맹점은 자칫 잘못하면 전하려는 메시지는 사라지고 오로지 이미지만 남을 수 있다는 데 있다. 마치 광고음악만 머릿속에서 맴돌고 정작 무엇을 팔려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실패한 CF의 예와 다르지 않다. 어떤 메시지를 간결하고 명징하게 전달하기 위해 이미지가 활용되지만 특정 장면만이 기억되는 꼴이다. ▼청와대 개방 특집으로 마련된 열린음악회의 경우가 그렇다. 그냥 대통령 내외가 출연진과 계단에서 찍은 사진 한 장으로 깔끔하게 수렴됐다. 대통령이 먹는 점심 메뉴는 왜 궁금한지, 영부인의 올림머리와 입고 있는 치마가 왜 이슈의 중심에 서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발 빠르게 낯빛을 바꾸는 언론의 취사선택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메시지가 실종된 어설픈 정치의 이미지화는 서로 다른 해석을 낳게 되고, 추앙과 혐오로 양분돼 대립만 부추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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