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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막말 전쟁'

베를린 장벽 붕괴는 동독 정부 대변인의 말실수로 시작됐다. 그는“여행 허가에 관한 규제가 완화된다”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한 채 “베를린 장벽을 포함해 모든 국경에서 출경이 인정된다”고 잘못 말했다. “당장 시행된다”고도 했다. 이에 사람들이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들면서 국경이 무너졌다. 말 한마디로 역사를 바꿨다. ▼세상을 변화시킨 말은 또 있다.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의 졸업식 축사다. “포기하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절대 포기하지 마라.” 2차 세계대전 중 국가 위기의 순간에서 나라를 이끌고 갈 젊은이들을 앞에 앉혀 놓고 행한 이 짧은 축사는 강렬하고 도전적이다. 처칠은 어떤 자리에선 이런 말도 했다. “만일 네가 지옥을 통과하고 있다면, 그대로 계속 가라.” 무슨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겨내라는 뜻이리라(김명호, 분노가 에너지, 2019). 자유진영의 선두에 서서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웅의 말답다. ▼스티브 잡스의 미국 스탠퍼드대학 졸업식 축사도 아직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다. 췌장암을 선고받은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시끄러운 타인의 목소리가 여러분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의 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라. … 항상 갈망하라. 그리고 우직하게 나아가라.” 괴짜 영웅의 생각과 갈망은 이미 우리가 사는 세상을 너무 많이 바꿔 놨다. ▼질긴 생명력이다. 바로 정치권에서 터져 나오는 말이다. 상대방의 가슴을 후벼 파는 대한민국 정치권의 특유의 거친 언어다. 그 막말은 지난달 말 국회에서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태에서부터 시작됐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불을 댕겼다. 문재인 정부를 “좌파 독재”라고 비난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를 이어받았다. “도둑놈들한테 국회를 맡길 수 있겠냐”고. “혀엔 뼈가 없지만 심장을 찢어버릴 만큼 힘이 세다”고 했다. 그리고 명심해야 한다. 말은 칼이 될 수 있고 그 칼날은 자신을 향해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권혁순논설실장·hsgweon@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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