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강원포럼]추석과 교황

최돈설 강릉문화원 부원장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구촌 시민을 위해 매일같이 바치는 평화의 기도문이다. 원래 중세 시대 대표적 영성가였던 성(聖) 프란치스코의 세례명을 지금 교황께서 겸손과 청빈의 삶을 살고자 이어받은 것이다. 이 평화의 기도문에는 가냘픈 전설이 깃들어 있다. 중세 시대, 어느 날 저녁 성 프란치스코의 방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나가 보았더니 살이 곪아 터져 흐르는 한 험상궂은 나병 환자가 서 있었는데, 그는 몹시 추우니 잠시 방에서 몸을 녹이면 안 되겠느냐고 간청하였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기꺼이 그의 손을 잡고 방으로 안내해 주었고 그러자 그 환자는 다시 저녁을 함께 먹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식탁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밤이 깊어지자 그 환자는 다시 부탁하기를 자기가 너무 추우니 프란치스코에게 알몸으로 자기를 녹여달라고 애걸하였다. 프란치스코는 입었던 옷을 모두 벗고 자신의 체온으로 그 나병 환자를 온몸으로 녹여주었다. 이튿날 아침 일어나보니 그 환자는 온데간데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왔다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곧 모든 것을 깨닫고는 자신과 같이 비천한 사람을 찾아와 주셨던 주님께 눈물의 감사 기도를 올렸다. 이 기도가 바로 유명한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문'으로, 지금의 교황께서 인류를 위해 바치는 기도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4박5일간의 방문은 갈무리되었지만 그 울림은 끝이 없는 것 같다. 광화문 시복식에서 방탄차 대신 국산 소형차를 탔고, 좁은 방에서 묵으며 직원 식당에서 식사하는 것까지 시종 소탈한 모습으로 국민에게 감동을 주었다. 넝마처럼 낡은 가방을 들고 낡고 해진 옷을 입은 진정 미천한 이들의 아버지, 미약한 이들의 보호자, 가난한 이들의 옹호자, 희망 없는 이들의 구원자였다. 경호상 위험에도 환영 나온 어린이들을 안아 올렸고, 대중과 살을 부대끼며 겸손과 청빈, 소통의 자세는 오히려 교황의 권위를 높여주었다. '자신을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성경 루가복음)'는 진리를 소리 없이 설파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종교 지도자를 넘어 영혼의 스승이자 올곧은 삶의 멘토로 받아들이는 이유이다.

소탈하고 겸손한 언행으로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교황 따라하기가 지구촌에서 대세로 흐르는 것 같다. 미국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교황의 화두를 통해 사회적 약자 보호, 불평등 해소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국내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최명희 시장도 프란치스코 교황을 통해 시청 문턱을 낮추고 당연시되었던 권위를 내려놓았다. 소통의 날을 선포하여 시민과 마음을 교감하고, 체온을 나누는 모습은 신선하기 그지없다. 의전용 관용차량을 소형 전기차로 바꾸고, 시민을 위한 섬김과 소통으로 내일을 만들겠다는 엄숙한 서약을 하였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스스로 더 낮추고, 더 배려하고, 더 아우르는 섬김과 소통이야말로 사랑의 공동체·기쁨의 공동체·희망의 공동체를 만드는 '나비효과'의 원천이 될 것이다. 때이른 민족 최대 명절 한가위가 다가오고 있다. 이번 명절은 '감사하는' 추석이 되었으면 한다. 교황의 가르침처럼 '가난한 사람과 취약계층,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아름다운 추석이 되었으면 한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가장 많이 본 뉴스

    피플 & 피플

    이코노미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