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강원포럼]봉급생활자가 봉인가

온 세상이 '세금폭탄'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번 연말정산 사태는 기획재정부가 엉터리 '세수추계'를 국회에 제출한 데서부터 비롯됐다. 총 급여가 5,500만원 이하인 사람들은 세 부담이 줄어든다는 정부의 당초 주장은 허구임이 드러났다. 특히 세율적용 구간이 상향된 경우는 조세저항이 극렬하다. 여러 가지 경우를 다차원 분석으로 사전에 꼼꼼히 따져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연봉대별 평균값에만 의존한 졸속 세제개편은 '국기 문란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민심 이반에 당황한 여당과 정부가 내놓은 보완대책은 자녀 공제, 독신자 표준세액 공제, 연금보험료 공제, 추가 납부세액 분납 등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소급적용과 빠른 환급이 추가 수습책이다. 이 역시 졸속행정이라 본다. 세제개편은 적어도 3년 이상 충분한 준비를 거쳐 단행해야 한다. 졸속 때문에 생긴 문제를 또다시 졸속으로 해결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땜질식 미봉책은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일단 원점으로 돌려놓고 면밀한 검토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특히 교육비와 의료비는 선택의 여지보다는 필수적으로 우선 지불해야 하는 돈이기에 세액공제보다는 소득공제가 더 합당하다. 세원 투명성을 위해 신용카드 사용액을 대폭 공제해준다 할 때는 언제고, 지금은 체크카드를 더 우대해준다. 원칙 없는 소급적용은 또 다른 소급을 양산한다. 정치적 이유와 금융기관과의 유착 등으로 우리나라의 세금제도는 누더기가 되고 원칙 없이 변질되어 가고 있다.

이번 세제개편으로 인한 세금폭탄을 국민은 증세라 생각하는데, 청와대는 증세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매번 국민이 제기하는 문제점과 의혹을 언제까지 허위라고 억지 주장할지 두고 볼 일이다. 소득 재분배를 위해 고소득 연봉에서는 더 걷고 저소득 연봉에서는 그만큼 덜 걷어 정부 입장에서 볼 때, 세금 수입의 변화가 전혀 없다면 분명 증세가 아니다. 그러나 법인세 감액분을 충당하기 위해 '세액공제로의 전환'이라는 포장 아래 유리지갑 봉급생활자로부터 9천억원을 더 거둘 꼼수였다면, 어찌 이를 증세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증세를 위해 유리지갑을 깨트리는 일보다 검은 커튼에 가려 있는 고소득자의 수입을 밝은 세상 밖으로 이끌어내는 일이 더 정의롭다고 생각한다. 의사와 변호사 같은 직업군에서 횡행하는 현금 거래를 정부는 왜 애써 외면하는 지, 그리고 고소득 자영업자의 가족들은 자동차와 개인소비를 회사비용으로 처리해도 되는지, 서민은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는다. 정부의 묵인아래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들은 수많은 탈세를 하고, 대기업과 부자들도 조세피난처를 통해 역외탈세까지 자행한다. 공항과 항구마다 밀무역이 득실거린다. 이런 지하경제의 양성화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공약은 저버리고,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지갑을 분해하여 티끌까지 과세하겠다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국민 모두가 법인세를 정상화하라고 난리인데, 청와대만 감세된 법인세를 계속 두둔하고 있다. 여전히 국민의 소리와 건의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고리를 꼭꼭 걸어 잠그고 있는 듯하다. 오히려 법인세 '인상'은 없다고 가이드라인만 제시할 뿐이다. 특히 '인상'이라는 단어 선택은 청와대의 그릇된 인식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한시적 감세'라는 사실마저 부정하는 부적절한 언행이다. 이제는 소통 부재의 단계를 넘어, '도덕적 해이'의 심각한 지경에까지 왔다. 이번 세금폭탄 사태에 대해서도 증세가 아니라고 끝까지 주장한다면, '양치기 소년'의 후회를 자초하게 될 것이다.

홍창의 가톨릭관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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