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강원포럼]“KTX 타고 사랑의 도시로”

최돈설 강릉문화원장

'고려사'에는 무월랑(無月朗)과 연화부인(蓮花夫人)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 나온다. 조금 각색해 봤다. “신라 중엽 강원도 명주(강릉) 남대천 밑에 서출지(書出池)라는 연못가에 연화라는 예쁜 아가씨가 살고 있었다. 연화는 날마다 못가에 나와 고기에게 밥을 던져줬고, 그때마다 고기 떼는 물 위로 올라와 던져주는 밥을 받아먹곤 했다. 경주에서 온 무월랑은 못가에 나와 고기에게 밥을 던져주는 연화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된다. 연화는 글 공부에 힘써 입신양명을 하면 그때 결혼하자고 편지로 언약했다. 그 말에 무월랑은 경주로 돌아가 열심히 학문에 전념한 끝에 벼슬길에 오른다. 한편, 연화의 집에서는 나이가 과년하므로 혼처를 정하고 날을 받아 성례를 시키려 한다. 연화는 애틋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써 못가에 나와 '내 간절한 사정을 경주로 간 뒤 소식이 없는 낭군에게 전해다오'라며 그 편지를 물 위에 던졌다. 그중에 가장 큰 잉어가 편지를 물고 물속으로 사라졌다. 어느 날 무월랑은 편찮은 어머니를 위해 큰 잉어 한 마리를 사 와 배를 갈랐다. 그 속에 편지가 있어 보니 분명 연화가 보낸 급한 사연이었다. 무월랑은 그 길로 명주로 말을 달려 도착하니 마침 연화의 혼례 날이었다. 무월랑은 혼례를 급히 막고 연화의 부모에게 그들의 진실한 사랑 이야기를 전했다. 이에 감동한 연화의 부모는 하늘이 내린 사랑이라며 무월랑을 사위로 삼았다. 혼인 후 그 못가 큰 바위에 정자를 지어 그 이름을 무월랑의 월(月) 자와 연화의 화(花) 자를 따서 월화정이라고 했다.”

애틋한 감동의 순애보는 또 홍장암으로 전한다. 고려 말 강원도 안림사로 부임하게 된 박신과 절세미인 홍장이 사랑해 정이 깊어졌다. 박신이 여러 날 출장을 갔다 돌아와 홍장을 찾았는데 강릉부사 조운흘이 놀려줄 생각으로 홍장이 밤낮으로 그대를 생각하다 죽었다고 하자 애절함에 몸져눕게 됐다. 조 부사는 측은한 마음에 경포대에 달이 뜨면 선녀들이 내려오니 홍장도 올지 모른다며 호숫가로 데려가 신비스러운 운무 속에서 홍장이 배를 타고 선녀처럼 나타나게 해 극적인 재회를 했다는 이야기 역시 강릉 사랑의 고사가 아닌가. 사랑 이야기는 또 전한다. 신라 성덕왕 시절, 순정공이 강릉태수로 부임해 가던 중 아름다운 아내 수로 부인이 바닷가 천 길 절벽에 핀 철쭉을 갖고 싶어하자 한 노옹이 꽃을 꺾어 바친 1,000년 전 정열의 노래, 헌화가 무대 역시 강릉이 아닌가. 이쯤 되면 강릉은 만인의 공통 정서인 사랑의 도시가 아닐까 싶다.

지난 22일 서울~강릉 KTX가 본격 운행을 시작했다. 한마디로 격세지감이다. 겨울 바다와 강릉 풍광을 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KTX는 어느 때 타든 속도와 도착시간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KTX는 관성 같던 거리감을 지우개처럼 지워버렸다. KTX 개통은 강릉지역의 여행방식을 송두리째 바꿀 것이다. 서울도심에서 1시간대 도착해 강릉 월화거리와 먹자골목을 돌고, 경포대의 홍장암을 감상하고, 헌화로를 걸으면서 정동진 모래톱에서 심호흡 한번 하자. 그리고 정동진에서 사랑의 마음으로 새해를 맞는 것도 근사한 일이 될 것 같다. 이 세모(歲暮)의 맑은 시간, 그간 힘겨웠던 일들을 통해 지식을 넓히기보다 생각을 높이려 함은 내년의 목표가 될 것 같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피플 & 피플

이코노미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