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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포럼]달빛 따라 걷는 강릉 관아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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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항교 강릉문화원 이사 문학박사

강릉부는 본래 예국터다. 한나라에서 4군을 설치하면서 임둔, 고구려에서는 하서랑이라 했다. 신라 때는 명주라 부르다 936년 동원경을 설치하고 별호를 임영(臨瀛)이라 했다. 일찍이 신선이라 불리던 신라화랑이 경포대, 한송정에서 심신을 수련하며 차를 달여 마셨기 때문에 신선이 놀던 고장으로 역사에 남았다. 조선 문신 서거정은 신선이 놀 정도로 뛰어난 풍광을 지녔다 해서 '제일강릉'이라 불렀다. 고려 문신 이인로는 한송정 시에서 “화랑도가 심은 3,000그루 소나무는 마치 구름을 털어 놓은 것 같이 울창하다”고 했다. 역사상 최초로 소나무를 심은 고장이라 솔향강릉이 낯설지 않다. 서거정은 “강릉은 산자수려하기가 천하에 으뜸이다. 또한 민심이 순박하여 정사가 간결하고 관아에서 처리해야 할 문서가 많지 않아 수고로움이 적었다. 그래서 이곳에 부임해 오는 관리들은 자주 풍류를 즐긴다”고 했다. 사림의 영수 김종직도 강릉부사로 부임하는 조숙기에게 “강릉은 예부터 글 읽는 소리가 고을마다 퍼지고 송사가 없는 탓에 형구(形具)가 쓰일 곳 없어 주민 돌봄에 신경 쓸 일 없을 걸세”라 했다. 449년 전 김언침 부사는 대도호부 관아 동헌에서 율곡과 신선이 놀던 고장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홍장 이야기로 익숙한 풍류 부사 조운흘은 청렴결백하고 간결한 일처리로 신망이 두터워 주민들이 생사당(生祠堂)을 짓고 흠모했고, 조선 4대 명필 봉래 양사언 부사는 지역 유생들에게 시문을 가르쳤다. 향교를 넓히고 중앙제도를 받아들여 시행하자 주민들이 사모해 선정비를 세웠다. 부사로 있을 때 허난설헌 스승으로 알려진 이달과도 허물없이 지냈다. 허균의 친구 유인길 부사는 1602년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산삼을 선물했다. 허균은 사사로이 쓸 수 없다고 하며 서울로 가지고 올라갔는데 마침 중국으로 가는 사신 일행이 있어 그것으로 북경 시장에 가서 여러 가지 책을 구해 오라 했다. 구해 온 수많은 전적(典籍)을 경포에 있는 별장에 비치하게 하고 고을 선비들이 읽고 싶으면 빌려 읽고 다 읽으면 반납하게 했다.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우리나라 최초 사설도서관 호서장서각이다. 강릉이 도서관 고을로 유명세를 탄 것도, 인문도시 가운데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까닭도 다 이유가 있었다. 재물을 부정하게 모아 유배를 간 한급이란 부사는 어사가 파직시키려 하자 백발 노모를 앞세워 매일 찾아가 애걸하도록 시키는가 하면 유배를 가서도 찾아온 사람이 입은 비옷을 보고 달라고까지 한 몰염치한 부사도 있었다. 강릉대도호부 관아가 생긴 이래 300여명의 부사가 다녀갔다. 청백리로 선정을 베풀다 자랑스럽게 돌아간 부사도 있었지만 재물을 탐하거나 기생 놀음하다 불미스럽게 파직된 부사도 있었다. 8월과 9월 두 차례 열리는 천년의 관아 강릉대도호부 야행에서는 재미있는 부사 이야기를 비롯해 문서에 사용한 부사들의 사인 등 볼거리, 읽을거리가 수북한 관아 사료관도 문을 연다고 한다. 올해로 네 번째 행차에 나서는 강릉 문화재 야행은 그동안 문화재청으로부터 시민에게 다가가는 야행이라는 우수한 평가를 받고부터 다른 도시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올해도 보다 멋스럽고 감동 넘치는 달빛 따라 함께 걷는 강릉대도호부 관아 산책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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